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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녀상에 담긴 목수의 아픔을 떠올리다

김포대두 정왕룡 2007. 4. 18. 11:33
나녀상에 담긴 목수의 아픔을 떠올리다
전등사엔 전등사만 있는게 아니다(3)
2007년 04월 18일 (수) 09:31:38 정왕룡 시민기자 kd6010@hanmail.net

   
   
 
“그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어떠세요?”

전등사 대웅보전앞 귀퉁이에서 처마쪽을 올려다 보며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아마도 이곳 대웅보전에 얽힌 전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제가 허공을 향해 혼자서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전등사 대웅보전은 그 자체로  문화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 우리나라 목조건축의 걸작품입니다. 하지만 저같은 뜨내기 나그네에게는 전문가적 소양으로 대웅보전의 건축학적 가치를 깊이있게 감상할 심미안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를 포함하여 이곳을 찾는 세인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바로  건물의 네 귀퉁이 처마를 떠받치고 있는 나녀상(裸女像) 일 것입니다. 이 기이한 조각상에 대해선 나녀상이 아니라 불가의 수호상징중 하나인 원숭이상이라는 의견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인들은 원숭이상이라는 의견보다는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나녀상쪽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고 전등사쪽의 의견도 이쪽에 무게를 더 싣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연이 얽혀있는 전설을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600 여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전등사는 목조건축물이라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간간이  화재를 겪었고 이때마다 솜씨있는 목수를 불러 중건을 하였습니다. 대웅보전 역시 17세기경 중건하면서 이 작업을 담당한 도편수가 근처 주막의 여인과 눈이 맞았나 봅니다. 이 두사람은 건축물이 완공되는 대로 살림을 차리기로 약조를 하였고 도편수는 갖고있는 돈을 여인에게 맡겼지만 공사가 끝나갈 즈음 그 여인은 맡긴 돈을 갖고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이때 깊이 상심한 도편수는 처마 끝 네 귀퉁이에 발가벗은 여인네의 몸체를 조각하여 올려놓아 그 여인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참회하며 살기를 염원하였다고 합니다.

 

네 군데의 나녀상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두손을 들고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한손으로 지붕을 떠받치거나 옷을 살짝 거친 경우도 있습니다. 신성한 법당에 벌거벗은 나녀상을 올려놓은 목수의 행동은 가슴아픈 전설 내용과 달리 살짝 웃음을 풍기는 재치가 묻어납니다. 비록 애써모은 돈을 송두리째 빼앗겼지만  한 남자의 순정을 농락한  여인의 악행은 전등사가 존재하는 한 두고두고 세인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나녀상을 볼때마다 살벌한 상황을 살짝 비틀어 미소를 짓게 만드는 우리민족 특유의  해학적 정서가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경우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건축당시 목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웅보전의 처마를 나녀상으로 장식하도록 허용한 사찰측의 넉넉한 포용력도 느껴지면서 신앙의 경건함이란 경직된 권위속에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녀상을 바라보며, 배신당한 사랑의 아픔에다 애써모은 재산마저 송두리째 날려버린 상황에서 대웅보전 마무리 작업에 나섰을 목수의 심정을 그려보았습니다. 저같은 경우라면 대웅보전의 완공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뒤로 나자빠져 버리거나 여인의 뒤를 쫓아 땅끝까지라도 내달렸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시금 마음을 추스르고 마무리 작업에 나서면서 오히려 여인의 참회를 바라는 상징으로 나녀상을 조각했을 목수의 심정을 그려보니 고개가 숙여집니다.

 

저 나녀상은 조각된 이후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나녀상의 주인공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그후 참회의 길을 걸어갔을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 조각물을 바라보는 뭇사람들에게 자기 각성과 교훈을 전해주는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목수는 자기의 꿈을 그 이상 이루고도 남음이 있었으리라 상상해봅니다.

 

“춥진 않으세요? 언제쯤  옷을 입을 건가요?”

“추위보다 외로움의 무게가 나를 더 짓누르는구려. 이 허공에서 벗어나 하루만이라도 땅을 밟아보고 싶구려. 흙내음이 그립다오.”

나녀상에게 던진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이 마음 한구석을 안쓰럽게 합니다. 세파에 시달리더라도 두발을 딛고 사는 세상이 그녀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