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참여당의 집권전략, 영세자영업자 복지노조-서프라이즈 e-마당

김포대두 정왕룡 2010. 8. 28. 22:15
참여당의 집권전략, 영세자영업자 복지노조
(서프라이즈 / e-마당 (copu119) / 2010-8-28 18:49)


창당 이후 현재까지 참여당이 표방하고 있는 것은 친노정당이라는 거다. 그러나 참여당이 친노에 국한하는 정당인가 하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친노라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것은 일단 차치하고 얘기를 전개해보자.

참여당의 창당초기에는 구체적으로 친노정당을 표방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약간의 논의가 있었다. 당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당연히 논제가 될 사안이었다. 이런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창당 주역 중 한 사람이며 서울시당 위원장에 당선된 천호선의 경우, 창당무렵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참여당은 친노무현 노선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 발언 내용은 친노정당이 아니라는 거였지만 살펴보면 친노 노선에 국한하지 않는 정당이라는 것이 옳은 표현일거다.

뒤이어 유시민의 경우는 참여당은 노무현의 정치노선을 추종하는 게 아니라 계승하는 정당이라고 규정했다. 추종과 계승이라는 단어의 어의적 차이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참여당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말이라고 보면 될 거다. 이 말을 달리 해석하면 DJ의 국민의 정부의 정체성을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계승발전시켰고, 참여당은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계승발전시키겠다는 의미다. 그것이 한국의 진보정치의 맥락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진짜 진보라고 자처하는 민주노동당 계열 인사들이 반발하겠지만 민주노동당과 같은 이념 정당들은 권력 핵심에 근접했던 적이 아직 한번도 없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점에서 참여당과 민주당의 정체성도 확실히 구분된다.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과 정체성에는 사실 노무현은 없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참여정부와 노무현대통령을 끌어안는 모양새를 취하고, 일부 참여정부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민주당은 노무현 노선이라기보다 노무현 이전 세대의 가치들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판단일 거다. 현재의 민주당이 몇 번의 재창당 과정을 거치면서 과거 열린우리당보다 훨씬 후퇴한 정치의식과,,, 호남 지역기반에 더욱 의존적이게 되었다. 6.2 지방선거를 통해 민주당의 친노인사가 강원도와 충청권에 광역자치단체장에 당선되기는 했지만 친노인사의 호남본토 입성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여전히 민주당의 적자는 친노인사들이 아니다. 민주당의 친노인사들 중 호남출신이 아닌 경우는 호적에만 올라있는 입양아에 불과한 것이다. 시절이 좋으면 혈통은 따지지 않겠지만 하수상한 시절이 오면 여지없이 혈통을 따지게 될거다. 그때는 민주당내 친노인사들 중 호남에 지역적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살펴보면 선거 때 나타나는 노무현대통령 개인 지지성향의 표는 대충 500만표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대선에 나서는 유명 정치인의 경우 개인이 확보하고 있는 표가 1백만에서 1백5십만표 정도인데 비해  노대통령은 압도적으로 많은 개인 표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자료는 명확한 통계적 수치라기 보다 임의적인 추론이다. 그러나 크게 틀리지도 않는다. 사실 참여당과 민주당은 이 표를 두고 서로 가져가겠다며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하게 계산해서 친노의 표를 몽땅 다 가져온다할지라도 정권창출은 어렵다는 거다. 그 표가 민주당으로 가던 참여당으로 가던,,, 상관없이 결과는 꼭 같다. 적어도 집권에 필요한 표는 1천만표 이상이다. 집권에 필요한 나머지 표는 부동표에서 얻어올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부동표 때문에 한국의 대선과 총선은 늘 요지경이 되고 만다. 부동표를 흡수할 목적으로 선거 이슈를 만들어내고, 지키지도 않을 선섬성 헛공약에다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선거공작을 펼치는거다. 6.2 지방선거에서는 천안함 침몰사고와 관련하여 MB청와대의 전쟁불사론은 아마 대표적인 사례가 될거다. 안보불안과 대북강경책은 한나라당이 수구세력을 묶는 데 쓰는 접착제같는 거고, 한편으로는 기득권세력에 우호적인 부동표의 흡수에도 큰 도움이 되어왔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부동표는 어디에 숨어있는 것인가? 어떤 계층의 어떤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이 유동적인지 분석해볼 필요가 있겠다. 이 부분에 있어 보다 전문적이고 세련된 통계자료가 필요하겠지만 잠정적인 결론은 영세 자영업자들일 거라는 거다. 왜 그런가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영세자영업자들의 정치참여는 수동적이다. 예를들면 대기업 노조는 노조운동과정에서 이념화되거나 사회참여와 정치참여가 보다 노골화된다. 이럴테면 민주노총과 같은 노동단체는 당연히 민주노동당 지지그룹으로 이미 특화되어 있다. 이미 민주노동당 대의원의 1/3 정도는 민주노총에 할당되어 있고, 민주노동당의 정당활동비의 상당부분도 민주노총에서 지원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또,,,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당연히 한나라당지지세력이다. 재벌과 부자들, 전문직종사자들과 안정적인 생활기반을 갖춘 계층은 한나라당지지성향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극빈 저소득층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지지성향을 보인다.

자 그렇다면 부동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계층은 대충 파악이 된다. 우리의 중산층 절대다수, 즉 소득 수준이 그만그만한 영세 자영업자들대부분이 부동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사람들은 사회적 이슈와 선거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표를 행사한다고 보면 된다. 살펴보면, MB정부가 뜬금없이 중도실용정부를 표방하고 나설 때가 있다. 이것은 MB정부의 정책기조와 맞지 않는 립서비스에 불과하지만 그런 립서비스의 이면에는 부동층이 가지고 있는 여론을 호도하려는 목적이 숨어있다고 보면 될거다.

자, 그렇다면... 지금까지 필자가 전제한 내용들이 사실과 부합한다면,,, 국민참여당의 진로와 집권을 위한 밑그림이 대충 그려진다.

한나라당은 영남이라는 지역기반에 더하여 기득권층과 극빈보호계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에 민주당은 현재로서는 호남이라는 지역기반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이기는 하지만 민주화운동 세력으로 불리는 전통적 지지기반도 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사표심리와 노동운동단체의 양분화로 일방적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노조원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세력이라는 지지기반이 있다.

그렇다면 국민참여당은? 국민참여당은 지지기반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참여당은 기득권세력에 포함되지 않는 양심적인 화이트칼라계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계층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 승리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던 핵심 운동세력이자,,, 유시민 지지기반이기도 하다. 이 세력은 여론 형성과 주도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숫적으로는 그리 대단한 편은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정치적 활동범위가 넓고 크며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름으로 정치에 대한 안목이 있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이라는 것도 큰 장점이다.

그런데,,, 국민참여당이 이 정도의 지지기반으로 총선과 대선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냉엄한 현실정치에서 상처받고 아픔만 키우기에 딱 좋은 수준이라는 거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보았듯, 물론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바람에 밀려 선거 참여가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참여당이 얻은 성적표가 그게 진짜 참여당의 진면목일 수밖에 없는거다. 기초 광역을 통털어서 30여명의 당선자와 6.8%의 정당지지도가 전부인 거다. 마찬가지로 7.28 재보선에서는 8곳 중 한 곳에는 후보를 내었지만 그나마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현재 참여당의 모습이라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될 거다. 참여당 지도부의 인사들이 참여당은 멀리 보고 천천히 가겠다고 말하는 것은 엄밀히 얘기하면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자위적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참여당은 희망이 없는걸까? 그렇지 않다. 절대 그렇지 않다. 참여당은 개척해야 할 넓고 기름진 약속의 땅 신대륙으로 가면 된다. 이 글은 바로 그 축복이 넘치는 약속의 땅으로 함께 가자는 권유문인 셈이다.

정치행위라는 것은 인류가 추구해온 어떤 이상과 욕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 행위일거다. 이상과 욕망이 없다면 정치행위의 동기는 소멸될 것이고, 이상과 욕망만 있고 실현의지가 없다거나 실현방법을 강구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에 참여당에 집권의지와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면 그런 당에 누가 충성을 바칠 것이며, 시간과 노력 및 돈을 투자하겠는가? 참여당은 구체적인 집권청사진이 있어야 하는 거다. 이 글은 그런 청사진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어느 정당이던 적극적 지지기반이 있어야 한다. 기존의 정당들 중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그 크기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적극적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생정당인 국민참여당의 경우 아름다운 이상은 가지고 있지만 든든한 적극적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제 적극적 지지기반을 구체적으로 확보하자는 거다. 따라서 자영업자들이 중심이 된 '자영업자 복지노조'를 건설하여 동력으로 삼자는 거다. 적어도 법적인 지위를 획득한 복지노조 건설까지는 어렵다 할지라도 이들을 위한 정책개발과 유대의 강화는 반드시 필요한 일일거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선진국에 비해 자영업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은 이유는 1997년 IMF 이후 고용유연화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기업의 수지타산을 고려해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취해진 많은 조치들이 빚어낸 결과이다. 이에 더하여 기술발전과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된 반면 퇴직연령은 오히려 둘어든 결과 노동가능한 연령대에 벌써 산업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정년퇴직 이후 많은 사람들이 생계수단으로 택하는 길이 자영업이고, 기업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퇴사한 사람들의 생계수단 역시 자영업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득의 크기와 사업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생계수단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영업인 것이다. 협소한 재취업의 기회와 재취업시 전 직장에 비해 크게 소득이 줄어드는 비정규직일 경우도 많고, 인격적으로 우대받지 못하는 사회환경도 자영업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셈이다. 과거 1970년대의 사회적 성공과 더 많은 부의 축적을 위해 자영업을 선택하던 것과는 양상이 매우 다르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균적으로 연간 40여만개의 자영업이 폐업과 창업을 반복하고 있다. 더구나 2010년 올해의 경우 폐업 자영업의 수가 100만에 이를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 이런 자영업자의 수가 거의 450만에 이르고, 이 중 약 40%는 월평균 사업소득이 100만원에도 이르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이 빠른 속도로 중산층에서 극빈 계층으로 몰락하고 있는거다. 이런 문제에 대한 정부의 각종 정책적 대응은 소극적이거나 면피성 임시방편에 머물고 있는데 특히 MB 정부에 들어와서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런 소득양극화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이런 자영업자들은 조직화와 정치세력화에도 어려움이 있어서 정치소외계층이 될수밖에 없고, 그 결과 자구책을 강구할 수도 없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사실은 자영업자는 정책소외계층이면서, 정치소외계층이고, 복지소외계층이기도 한 거다.

따지고보면 한국에서 정치소외계층이 경험해야하는 사회적 불이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예를들면 정치적 수단을 가진 오늘날의 대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간의 임금격차, 그리고 조직결성에 어려움이 있는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 내지는 프리랜스 근로자의 임금수준을 비교해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1986년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격차는 단지 9%에 불과했다. 그랬던 것이 2001년에는 그 격차가 46%까지 벌어졌고,,, 2010년 현재는 그 격차가 더 벌어져 있다. 이런 임금격차가 벌어진 이유는 기업환경의 변화와 투자액의 규모에 따라 창출되는 기업이윤의 크기도 이유가 되겠지만 노동조합을 통한 정치행위의 부재를 큰 이유로 꼽아도 된다. 이런테면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한 관심과 대책을 요구할 만한 정치력 부재가 큰 이유라는 거다. 한국 사회에서 대마불사론은 어느 정도 신빙성있는 결론일거다.

현재로서는 한국사회의 자영업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법적 권리를 요구하거나 정당한 처우를 요구할 수단이 없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다. 사회발전과 사회정의 실현은 가진자와 힘있는 자의 선의와 도덕성에 기대어서는 안된다. 역사적으로 민중의 복리는 투쟁의 결과로 쟁취한 것이지 권력자들의 특별한 시혜와 배려로 얻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면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 역시 민중의 피흘림의 대가로 쟁취한 것이지 권력자들이 국리민복을 위해 나누어준게 아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해서 볼 때 투쟁할 수단과 파워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인 것이다.

참여당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정치세력화에 기여해야 한다. 또 그것이 참여당의 지지기반을 확충하는 길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접근해가야 한다.

참여당의 과업은 바로 민중의 요구를 결속하는 것, 즉 자영업자들을 정치세력화함으로써 그들의 복지와행복과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거다. 참여당은 바로 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창당된 정당이 되어야 한다.

이 세력을 정치조직화하는데 있어 그 구심점이 왜 참여당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이미 대기업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다. 대기업노조의 이익과 자영업자의 이익은 동질적인 경우보다 상충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이익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익이 충돌하는 양상인 것만 봐도 민주노당이 자영업자의 이익을 대변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직 우리 노조가 산별노조에 이르지 못하고 기업별 노조수준이어서 더욱 그렇다. 산별노조로 간다고 해도 사회적 요구보다는 해당 노조의 노조원의 실직적 이해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크게 변화할 가능성은 없다. 민주당의 경우는 중산층을 대변하는 정당을 표방하고 있지만 혈연 학연 지연에 의한 득표를 우선시하는 지역정당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특화된 사회계층이나 세대나 이해집단을 대변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한나라당은 기득권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므로 사회 소외계층의 이익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한나라당이 자영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어불성설이고 모순된거다. 따라서 자영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에는 참여당이 가장 적당한 거다. 또 참여당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살펴보면 자영업자들을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정되고 합리적이다.

참여당은 궁극적으로 참여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창당된 당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은 궁극적으로 사회복지다. 복지의 내용과 규모면에서 민주노동당처럼 이념적으로 크기와 분량을 정하는식으로 완고하지 아니하며, 참여당은 상대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매우 소프트한 복지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계층인 자영업자 계층을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고 이들의 복지혜택을 추구한다는 자체가 몰락해가는 중산층을 살리는 것이며 이것은 곧 대한민국 전체를 건전한 방향으로 선순환의 단계로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다. 또한 이 자체가 사회 양극화문제를 해소하는 일이고, 내수경기를 활성화하여 산업 전체에 활력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앞으로 자영업자들을 어떻게 조직하여 정치세력화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실현가능한 방향으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자영업자 복지노조 건설에 있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 노조 조직율도 20%가 채 안되는 상황이며 기업별 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은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자영업자 복지노조 건설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은 당연한 의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사람이 노력해서 안되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수의 꿈은 현실이 된다는 신념과 불굴의 의지가 있다면,,,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참여당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시대적 사명은 학생운동의 부활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생운동은 급속히 퇴조했다. 그 까닭은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 개인적 이유로는 협소해진 취업의 문제와 사회적 성공을 준비하기에도 지나칠만큼의 개인적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 시대적 상황탓이다. 그리고 부모 세대들의 이기적인 보수적 태도도 학생운동의 장애요인이다. 그러나 학생운동을 통하여 미래 한국사회의 지도자들을 양성해야 할 필요성은 절실하다. 틀에 박힌 강단 교육만으로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훌륭한 지도자 배출은 사실상 어렵다. 민주화된 선진국들의 정치지도자와 사회지도자들의 상당수가 학생시절부터 학생운동과 시민단체활동 정당활동을 통해 단련되고 세련되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학생운동은 그 자체의 성과보다 미래사회에 대비한 토양으로서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학생운동은 사회를 개조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현실에서도 학생운동을 통해 형성된 가치관을 가지고 현실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지도층급의 정치인들을 우리는 많이 보고 있다. 학생운동은  짧게는 10년이며 그 결실을 맺는다. 참여당이 주도하는 학생운동은 새로운 방향이어야 한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의 학생운동은 이념적인 성향이 아니라 환경과 생명운동, 인간성회복, 정직과 배려같은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어젠다로 삼아 부활해야 한다. 참여당은 학생운동의 어젠다를 제공하고 지도하며,,, 그들과 함께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미래지향적인 정당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또 하나 참여당이 해야 할 일은 '국민기업'의 창업과 육성 전략이다. 한국 사회가 빠른 속도로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많은 문제점에 직면해 있다. 이미 부를 확보한 일부 계층은 완고한 방법으로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사회발전과 공익질서를 저해하며,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의 질과 양을 왜곡하고 축소시키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이들은 강력한 조세저항의 방법으로 사회복지를 가로막고 있다. 몇몇 사례에서 왜곡된 경제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재벌개혁의 시도가 있었지만 이들 세력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들은 사회, 문화, 경제, 법조, 언론 등,,, 각 분야를 장악하고 민주주의의 실질적 가치인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이념적 접근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틀안에서 이 세력들과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주체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곧 '국민기업'이다. 경제적 평등을 달성하지 않고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급선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기업의 주체는 그야말로 국민이다. 이 국민기업의 내용과 전략에 있어 진지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

아무튼,,, 국민참여당은 실현가능한 전략으로 한국 사회의 정치 주체로 성장해야 한다. 국민참여당의 성장 자체가 민주주의의 발전이며, 국리민복의 첩경이 되어야 하다. 곧 참여당은 곧 정치개혁과 경제개혁, 사회개혁의 주체이자 동력이 되어야 하는 거다. 그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전략은 계속해서 참여당이 연구하고 모색해야 할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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