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살아남은 자의 슬픔.

김포대두 정왕룡 2010. 12. 27. 02:28

올해도 한주 남았다.

어제 오늘 뒹굴면서 밀린 일 목록을 정리하다보니 참 많기도 하다. 12가지 정도 된다.

 

그중 가장 먼저 해야할일 길찾기 도입부 손질을 하다보니 새벽 2시가 되었다.

 

저녁에 시청했던 남자의 자격 송년 프로그램에 신해철이 객석에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신해철과 겹쳐져 2002년 노무현의 얼굴이 스친다.

그를 포함하여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뛰어들었던 이땅의 수많은 사람들.

우리 모두는 '살아남은자의 슬픔'을 안고사는 사람들인가보다.

 

저녁에 아이엄마가 채널을 돌리다 케이불 티비에서 우연히 '화려한 휴가'를 찾아내어 리모콘을 눌렀다.

예전에 누리를 포함해 온가족이 극장에서 봤던 것이기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화면에 다가서게 된다.

 

학교국어숙제 '소설쓰기'에 여념이 없던 아이도 작업을 멈추고 다가선다.

 

내안에 '광주'란 말이 나도 모르는 사이 그간 만성화되었나보다.

그냥 그러려니 했던 장면 하나 하나가 나의 뒷통수를 친다. 아직 눈물이 남았나보다.

코끝이 시큰거린다. 윤상원 박관현등의 이름이 다시 떠오른다.

 

아이는 장면 하나 하나를 유심히 본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질문을 하기도 한다.

남자주인공이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는 절규를 토하며 죽는 장면에서 화면을 껐더니 '아직 중요한 부분이  남았다'며 다시 보잔다.

 

 결혼식 사진 촬영장면이다.

아이는 예전에 극장에서 봤던 끝장면을 잊지않고 있었다.

이요원의  무표정한 얼굴, 먼저 간 사람들의 밝은 표정이 뒤섞여 진한 여운을 남겼나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마음의 빚'의 묵직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아이는 아빠는 그때 몇살이었냐고 묻는다.

고1이었다고 답했다. 그러고보니 남자 주인공 동생나이와 얼추 비슷하다.

나도 그때 광주에 있었다면 어떤 운명에 휩쓸렸을까?

 

아이는 광주에는 참 대단한 분들이 많이 사는 것 같다고 한다.

아이에게 대한민국은 두고두고 잊지못할 큰 빚을 광주에 지고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말미암아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았나 싶었는데 다시 역사의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어

안타깝다했다.

 

낮에 아이엄마와 올한해를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반도에 살아가는 그 어느 사람들이 다사다난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으랴마는 올해는 유달리 크고 많은 일들이 내주변을 스쳐지나갔다.

 

가족에게 미안했다.

나로 인해 겪었을 많은 짐들이었기에, 그렇다고 앞으로도 가벼워질 것 같지 않은 짐들이기에 미안하기만 했다.

 

허나 어쩌랴.

길은 내앞에 놓여있는데.

여기서 네 할일을 하라고 길은 나에게 말하고 있는데....

 

12월 한달...

몸이 말을 안들었다. 아직도 허리와 무릎이 시큰거린다.

예전에는 아무리 탈이나도 일주일 이상 가는 일이 없었는데. 이삼일이면 거뜬했는데...

이리 오래 가는건 처음인것 같다.

 

2012년 대회전을 준비하려면 몸부터 제대로 정비해야할것 같다.

 

속으로 조용히 외쳐본다.

내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먼저 간 이들의 몫까지 함께 감당해야할 몸이다.

아니 그들의 나머지 삶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소중한 그릇이다.

 

조용히 내안의 칼을 벼리면서 새해엔 더욱 정진하는 자세로 한걸음씩 뚜벅 뚜벅 나아가자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