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을 연주한다구요? - 김포 에세이(16)
‘어? 노젓는 소리가 들리네?’
김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조강’을 주제로 한 창작곡 연주회자리.
일요 오후라서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았지만 나에겐 특별한 감회가 다가오는 자리였다.
1부 ‘조강환상곡’ 서두에 현악기 주자들이 이리저리 어깨를 덩실거리며 현을 비트는가 싶더니 분명 내귀엔 노젓는 소리가 들린다.
‘조강’
10년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을 이 두 글자에 매달려왔다.
‘조강에 미친 사람’ 혹은 ‘조강 전도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여전히 ‘조강’은 나에게 건너야 할 강이고 넘어야 할 산이다.
‘조강물을 팔고 다니는 21세기 봉이 김선달’
언젠가는 명함에 이런 설명을 달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김포거주 사할린 어르신들이 이 명함문구를 갖고 다투신 적이 있었다.
‘봉이 김선달은 사기꾼’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누군가가 설명해줬더니
‘그럴 리가 없다. 왕룡님은 절대 사기꾼이 아니다’라며
서로 다투시는 것을 말린 기억도 난다.
많이 외로웠다. 예전에는..
김포 현실과 무관한 낭만적 사고에 사로잡혀 떠도는 나그네 같았다.
“어떻게 김포에 태어났으면서, 혹은 김포에 살면서 조강을 모를 수 있죠?”
김포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던진 질문이었다.
‘조강 올레길’ 동호회를 만들어 한달에 한번씩 ‘조강걷기’ 행사를 4년간 하다가
힘에 부쳐 지금은 쉬는 상태다.
조강은 나에게 풍경이자 그림이자 글로 다가왔다.
그런데 음악의 영역은 아직 나에게 생소했다.
그런데 조강을 음악으로 담아낸다니...
아! 그런데 노젓는 소리가 들린다.
물새 소리가 들린다. 급류가 출렁이고 뱃꾼들이 오가고
그리고 전쟁, 분단...강물이 얼어붙고...
음악에 문외한인 나에게 조강음악은 그렇게 울컥이는 감동의 물결로 다가왔다.
현과 관이 어울리고 팀파니 등의 타악기가 가세하고 하프의 선율이 공간을 울리며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고요하게 조강은 나에게 그렇게 울림으로 다가왔다.
‘조강은 만물을 껴안는 강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품처럼!’
누군가가 나에게 조강을 한마디로 설명하라면 답하고 싶은 말이다. 껴안는다는 것은 공감이고 소통이다.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릇 안에 하나로 담아내는 것이다.
50여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각자의 악기로 자기의 기량을 실어 빚어내는 절제와 어울림의 공간 자체가 조강의 정체성과 그대로 닮아있다.
그래..조강은 나 혼자만의 노래가 아니었어 !
이렇게 함께 어깨를 맞대고 흥에 겨워 덩실 덩실 춤을 추면서 물결에 몸을 싣고 하나가 되는 거였어..
예나 지금이나 조강은 그대로였는데 사람들이 경계선을 긋고 싸우고 다투고 피를 흘리고...그러면서 조강을 잊어버렸느니 기억해야 하느니 외치고 있었으니...
안타깝게도 다른 일정 탓에 조강의 과거 현재 미래를 3부로 나뉘어 연주한 곡들 중 ‘미래’ 파트는 듣지 못하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래도 발걸음을 옮기기전 무대 바깥에서 모니터를 통해 ‘조강의 미래’를 설명하는 작곡가의 설명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이렇게 김포인들의 가슴에 조강은 스토리의 원류가 되어 흐르기 시작했구나.
언젠가는 조강포구 유허지 벌판에서 조강 환상곡을 연주할 날이 오겠지?
그리고..그리고...조강에 배띄울 날이 오겠지?’
김포 아트홀을 빠져나오며 조강포 쪽으로 어둠속 허공을 응시해보며 여러 상념에 젖어본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나의 몸은 어느새 황포돛배에 몸을 싣고 마포나루를 출발해 조강포에 이르렀다.
벽란도에서 만나기로 한 아라비아 상인들과 나눌 이야기로 설레임이 넘쳐난다.
천년전 현실이었던 벽란도 르네상스의 꿈...
다시 꿈이 아닌 현실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