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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망앞에서-누리네 동해안 ‘후다닥’ 여행기(5)-

김포대두 정왕룡 2006. 3. 15. 14:01
철망앞에서-누리네 동해안 ‘후다닥’ 여행기(5)-

 

정왕룡 시민기자 kd6010@hanmail.net

 

   
‘김일성 그는 누구인가?’
화진포 김일성 별장내부 전시실에서 대하는 김일성에 관한 자료가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위대하신 어버이 수령’으로 떠받드는 북한의 분위기와 달리 ‘한국전쟁의 원흉’이자 ‘빨갱이 괴수’로 간주되는 남한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1994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갑자기 사망한 지 10년의 세월이 넘었건만 그는 여전히 양 극단의 끝자락에서  우리 현대사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김일성은 항일 무장투쟁투쟁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 무시할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지만 한국전쟁을 도발하였으며 권력을 세습시키는등........’

“아! 여기에 이런 구절이 써있네? 이거  국가보안법 위반사항 아닌가?”
나도 모르게 가벼운 소리를 지르게 만든 구절은 김일성을 설명하던 도입부의 항일무장투쟁에 관한 설명이다. 전시관내에 판넬로 제작되어 있는 게시물엔 김일성의 항일무장 투쟁을 설명하면서 ‘현대사에 무시할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고 설명하고 있다.

 

   
‘원래의 독립 운동가였던 김일성과 북한의 김일성은 다른 인물로서 자신의 독립운동을 과장하기 위해 이름을 빌려서 날조한 것에 불과하다’
그간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가짜 김일성설’의 내용이 떠오른다.
일본 총독부 자료에도 엄연히 나와 있는 게 그의 항일투쟁 기록이다. 일본군 장교출신이었던 박정희 정권이 5.16 집권 후 퍼뜨린 내용이 ‘가짜 김일성설’이었다는 논문내용이 떠오른다.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에 비록 이름은 빠져 있지만 그가 주역이었던 ‘보천보 전투’가 언급되고 있는 사실도 함께 떠오른다. 동아일보는 1998년 취재단이 방북할 때 1936년 당시 보천보 전투 호외기사를 순금으로 떠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선물까지 하지 않았던가.

 

‘만일 통일이 된다면 그에 관한 평가는 어떻게 달라질까?’
통일은 정치적 영토적 통합만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경제 사상 문화등 다양한 방면의 이질감 해소라는 과제가 놓여있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김춘추나 김옥균을 사대주의 매국노로 바라보는 게 북한의 시각이다. 반면에 신라의 삼국통일을 민족문화 정립기로 바라보는 게 남한의  주류적 시각이다. 그 사이에 놓인 격차를 해소하는 일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6.15 남북 정상회담 사진자료를 보았다. 그때의 감격과 흥분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는데 벌써 5년의 세월이 지났다.

 

‘한반도는 세계를 향해 평화의 신호를 발신하는 평화지대로 바뀌어야 합니다.
부산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사서 평양, 신의주, 중국 러시아를 거쳐 유럽의 한복판에 도착하는 날을 앞당겨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중 한 구절이 올라 있다. ‘부산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끊는다?’ 상상만해도 흥분이 된다.

 

전시관을 빠져 나왔다.
화진포 언덕 계단길을 내려오는데 해안가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는다. 여기부터는 해안으로 내려갈 수 없는 민간인 출입통제지역이다. 아예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던 옛시절에 비해 많은 개방이 이루어졌지만 해안가 철책은 여전히 방문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철망사이 틈새로 바다를 내다 보았다.


촘촘히 얽혀있는 마름모꼴 사이의 공간으로 넘실거리는 파도가 나를 향해 손짓한다. 하지만  더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군시절 작업부대의 일원으로 투입돼 함께 만들었던 이 철조망이 이제 나를 가로막고 있다. 그림같은 화진포 해안의 절경에 해안철책은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이곳 화진포뿐만 아니라 전국의 주요해안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해안철책이 걷혀지는 날이 빨리 오길 기도해본다.

 

하얗게 칠해진 돌멩이 하나가 철망사이의 마름모꼴 공간에 끼워져 있다. 수상한 자가  이곳을 넘거나 건드릴 시 떨어지도록 살짝 붙어있다. 해안 초병들은 순찰될때마다 이것이 제대로 원래의 위치에 놓여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매번 확인할 것이다. 저 돌맹이가 원래 있던 자리에 제대로 놓여져 자연의 한 자리를 채우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날이 빨리 와야 할 것이다. 김민기의 ‘철망앞에서’ 란 노랫말 한구절이 눈가를 스친다.

 

<이렇게 가까이에 이렇게 나뉘어서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쳐다만 보네
빗방울이 떨어지려나 들어봐 저 소리
아이들이 울고 서 있어 먹구름도 몰려와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입력 : 2005년 10월 11일 16:07:34 / 수정 : 2005년 10월 11일 1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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