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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나라, 김구 · 조봉암의 나라

김포대두 정왕룡 2006. 3. 17. 18:55
이승만의 나라, 김구 · 조봉암의 나라
-누리네 동해안 ‘후다닥’ 여행기(6)-

 

정왕룡 시민기자 kd6010@hanmail.net

 

   
화진포는 별장 천지다.
김일성 별장,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
하나같이 권력의 중심에서 한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깊은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화진포에 별장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여 있다.

 

이승만 별장 앞에 섰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안가 언덕에 자리 잡은 김일성 별장에 비해 안쪽에 위치한 이승만 별장은 화진포 호수의 잔잔함을 벗삼아 아늑한 느낌을 던져준다. 한국전쟁 전에는 이곳이 북한 땅이었으니, 이승만이 이곳을 찾았을 때는 휴전부터 4.19혁명으로 쫓겨나기 전 그 사이 어디쯤이었으리라.
‘호수 맞은 편 바닷가에 위치한 김일성 별장을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금강산을 바로 앞에 두고 멈추어버린 북진행렬의 아쉬움을 김일성 별장을 차지했다는 만족감으로 위안을 삼지는 않았을까?’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복원, 1999. 7.15 육군참모총장 대장 김동신’
별장건물 아래부분에  석판으로 새겨져 있는 글귀이다.


‘꼭 저렇게 자기 이름을 새겨 넣어야만 했을까?’
이승만에게 초대 대통령이란 호칭을 붙여준 면은 그렇다 치자. 참모총장 자신의 돈으로 복원한 것도 아닐테고 자신이 직접 돌을 날라 지은것도 아닌게 분명하다. 지시한번 하거나 결재서류에 도장한번 찍었을 뿐일텐데 이름을 새겨놓은 모양새가 4성장군 육참총장이라는 영예에 걸맞지 않게 영 꼴불견이다.

   

‘이박사는 위대했으나 그 주변의 못된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 어른들 사이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그때는 어른들의 말이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 이승만이라는 이름은 나에게 온갖 추잡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전형적인 정치모사꾼으로서 미국을 등에 업은 채 해방정국의 혼란을 뚫고, 초대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그는 오로지 권력을 향한 권모술수형 화신이었다. 전주이씨 가문 왕손의 후예로써, 프린스턴대 출신이라는 엘리트 자부심까지 흡입한 그다. 훗날 탄핵을 받긴 했지만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던 때, 혹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던 날, 그가 꿈꾸던 나라는 주권재민의 나라가 아니라 이승만의 나라였다. ‘권력’이라는 두 글자앞에 걸림돌이 되는 존재라면 그는 민족도, 민주주의도, 반대파의 생명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백범 김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띤다. 옆에는 미군정 사령관 하지중장이 함께 서있다.
이승만과 김구. 그리고 미국.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분단된 조국의 하늘아래 살고 싶지 않다’던 백범 김구의 발언은 그에겐 한낱 감상적 민족주의자의 푸념으로 밖에 안들렸을 것이다. 김일성을 만나러 38선을 넘은 김구의 행동은, 이승만 그에겐 ‘반공 이미지’의 차별화를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별장내부는 굳게 닫혀있다. 유리창문 너머로 여러 가지 소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북진통일’이라는 친필휘호가   그 옆에 ‘우남’이라는 이승만의 아호와 함께 눈에 띤다.
저 네 글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나!

   
‘죽산 조봉암’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는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을 반대해 평화통일론을 진보당의 이념으로 채택했다. 북진통일은 무력통일을 의미하며 또다시 전쟁대결구도로 몰아가자는 것이라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당연히 북진통일은 통일이 아니라 분단을 영구화 하자는 논리다. 그에겐 ‘평화통일’만이 유일한 선택의 길이었다. 이러한 죽산 조봉암이 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216만표를 얻어 선전하자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간첩의 딱지였고 사형집행이었다. 이때 그에게 적용된 것이 지금도 살아있는 희대의 악법, 국가 보안법이었으니 그 원조인 일제시대 치안유지법부터 따져보더라도 참으로 끈질긴 생명력이다.

김구, 여운형, 조봉암, 장준하…….
해방공간에서, 그리고 굴절된 현대사의 격랑속에서 비극적으로 쓰러져간 사람들의 이름이 화진포의 물결위에 투영되어 비친다. 순간의 권력에 집착하여 역사속에 더러운 족적을 남긴 이승만에 비해 민족적 대의앞에 올곧은 삶을 살다간 이들의 삶에 잠시 숙연해진다.
호수위 물결은 이러한 현대사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그네를 향해 그저 잔잔히 웃고만 있다.


 

 

입력 : 2005년 10월 18일 13:18:37 / 수정 : 2005년 10월 18일 13: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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