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두 박물관

누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

김포대두 정왕룡 2008. 12. 16. 08:16

*누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


누리야. 안녕.

어제 아빠가 일을 나갔다 오니 누리가 쓴 글을 엄마가 읽어주더구나.


아빠는 '누리가 또 예쁜 글을 썼나보다' 했는데, 그래서 담담하게 들으려고 했는데 엄마가 글을 읽어내려 갈수록 그게 아니었단다. '시험'에 대해 쓴 글이 누리 나이답지 않게 참 무거웠단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런 무거운 글이 나왔을까?'

 엄마가 글을 다 읽었을 때 누리를 안아주면서 아빠의 마음에 밀려든 생각이었단다.


이제 초등학교 시절을 끝마쳐가는 시점이 되었구나.

아빠 엄마와 할머니 손을 잡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졸업이라니.....


고집스럽게 유치원도 안보내고 학원 한번 안보내고 여기까지 버텨왔는데, 누리가 맘껏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받지말고 자신의 꿈나래를 펼쳐보라고 내버려 두었는데 사실은 누리에게도 '시험'이라는 두 글자는 언젠가부터 물음표 그 자체였구나. 이 물음표에 담긴 의문이 풀리고 마음속에 느낌표가 넘쳐나는 날이 누리가 어른되기 전에 과연 다가올 수 있을런지....


누리 친구들의 세계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친구들에게 '학원 안가고 시험 성적 잘 안나와도 걱정 안하는 친구'로 비쳐지는게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이번 기말고사 성적이 생각보다 안나오니 많이 속상했지? 아빠의 표정을 살피는 누리의 모습에 아빠도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단다. 그래도 아빠는 누리가 이번 시험을 준비하면서 '한번 해보겠다'고 책상앞에 달려들어서 책과 씨름하는 모습에 많이 놀랐단다. 나름대로 이제는 학습에 대한 성취욕구가 발동하는 듯 해서 말이야. 그래도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는 속담 기억나니? 아니면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격언도 아는지 모르겠다.


"아빠. 또 유식한 척 하는거야? 그냥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면 되는거지. 웬 속담, 격언?"

아마도 누리가 아빠 답장을 읽는다면 또 이런 말 안할런지 모르겠다.


일제고사를 치르게 하지않고 현장학습을 시켰다고 선생님들을 파면 해임시키는 뉴스를 접한 누리가 '시험'이란 것을 주제로 한번 글을 써보겠다고 했을 때 아빠는 그냥 무심코 '응. 그래 한번 써봐" 했는데 누리는 벌써 그에 관한 해답을 알고 있었더구나.


갈수록 황폐해지는 이땅의 교육현실 속에서, 어른들의 닫혀진 사고와 경쟁 만능주의 풍토속에서 누리같은 친구들의 소박한 꿈이 부서지지 않고 알알이 영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노래가 불려진지 십년도 훨씬 넘었는데  이제는 '행복은 성적순이다'라는 말이 진리로 통하는 사회현실이 되어버렸으니....과연 우리는 그때에 비해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한 채 오히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리와 누리 친구들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데 말이야.....

누리는 글을 쓸 때 마다 아빠를 여러모로 부끄럽게 만드는 특이한 재주를 가진 것 같다. 그래도 아빠는 기분이 좋다. 커가면서 하나 하나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눈을 뜨고 자신의 사고체계를 엮어나가는 누리의 모습에 뜨거운 성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여전히 아빠는 어릴때 처럼 누리의 손을 이끌고 다닌다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사실은 그 반대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누리가 아빠를 이끌어주는 손에 에너지가 느껴지니 힘이 절로 난다.


아빠는 여전히 남을 짓밟아야 일어설 수 있는 사회가 아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향한 꿈을 결코 버릴 수 없단다. 그러면서도 걸핏하면 좌절하고 의기소침해하는 소심형 아빠의 손을 이제는 누리가 맞잡아 준다고 생각하니 든든하기 짝이 없다. 이번에 누리가 아빠에게 듬뿍 힘을 주었으니 이제는 아빠가 누리에게 보답을 해야 할 차례인거 같구나. 더욱 더 강건하고 웃는 모습으로 하루 하루를 힘차게 살아야겠지? 내년에는 희망찬 일이 많이 일어 날거야. 누리가 중학생 되는 때 새로운 꿈나래가 한껏 펼쳐지길 바라며 오늘 이만 줄인다.


안뇽.............아빠가.... 08년 12월 14일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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