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포님 안녕하세요.
흐드러지게 피어나 온 산야를 화려함으로 수놓던 꽃잎들이 지더니만 어느새 초록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4월의 끝자락입니다. 저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던 T. S. 엘리엇의 말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한순간 피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초록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멀리 사라져간 꽃잎들이 잔인하다 못해 야속하기만 합니다. 애초부터 자신의 운명이 그러하기에 서러움을 쏟아놓으며 바람결에 흩날려간 꽃잎들의 운명이 잔인한 걸 까요? 아니면 그들의 삶을 알면서도 잠시 후 초록의 물결에 심취해 꽃잎들에 대한 기억을 망각의 창고에 집어넣어버릴 인간들이 잔인한 것일까요? 아니면 이 상황을 유유히 즐길 자연이 그러한 것일까요.
김포대교 초입에 올라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휴일 오후에 내려다보는 굴포천 일대의 풍경은 나그네의 마음을 상념에 젖게 합니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건설기계 장비주변으로 누런 황토색 벌판이 시선을 아프게 합니다. 초록물결로 넘실거려야 할 자리들이 가을 들녘 추수가 끝난 벌판처럼 누렇게 맨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후면 저 일대는 ‘운하’라는 두 글자에 자기 자리를 넘겨주고 콘크리트와 포크레인, 덤프차량들이 주인 행세를 하게 될것입니다.
초록과 황토색이 범벅이 된 채 뒤섞여 있는 흙더미사이로 구불 구불 흘러가는 굴포천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인천 부평 철마산에서 발원하여 부천을 거쳐 김포들녘 전호리에 자리를 잡나 싶더니 결국 한강하구에 자신의 삶을 건네주는 굴포천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운명처럼 기구하기만 합니다. 고려 무신정권 때부터 조선조 중종, 영조대에 이르기까지 굴포천은 ‘운하’ 라는 두 글자와 끈질긴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공사의 어려움으로 결국은 번번이 좌절됐지만 이제 그 논란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나 봅니다. 6월 경인운하 본격 착공이 이 일대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공사를 앞두고 최종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김포들녘 전호리 일대는 그래서인지 봄날의 정취를 맛볼 여유도 없이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 |
||
‘운하추진’을 자연의 악조건을 이겨낸 인간 승리로 봐야 할지, 바벨탑을 쌓다가 끝내는 멸망의 길에 들어선 불행함의 시작으로 봐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김포님.
한강하구 들녘에 서서 수천년 동안 자리를 지켜오신 님께서는 경인운하로 인한 김포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요. 많은 분들이 ‘천지개벽’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환상적 변화를 기대하고 계시는데 과연 님께서도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 분명 ‘천지개벽’할 변화는 맞는 것 같은데 그게 기대대로 환상적인 기대치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자연을 가리켜 ‘어머니의 품’이라고 이야기 하곤 합니다. 동양에서는 자연을 ‘대지모(大地母)’라 일컬으며 ‘어머니’라는 숭고한 이름을 붙여주기까지 하였습니다. 김포들녘에서 자연이라는 말은 곧 한강을 가리키는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김포는 바로 한강하구가 빚어낸 예술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강은 어울림의 미학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끌어안고 품어 안고 그 어느 것에라도 자리를 내주는 따스한 누이의 숨결과도 같은 곳입니다. 굳이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를 읊조리지 않아도, 박목월의 ‘나그네’에 담겨있는 ‘강나루’를 떠올리지 않아도, 강변은 선인들의 삶의 애환과 정취가 스며든 우리네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한강하구와 함께 수천년 이어져온 김포의 역사가 송두리째 뒤바뀌려 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결과가 김포의 앞날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때 그 후과가 당대를 넘어 후대에까지 치명적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교과서에 이러한 이야기가 언급될 때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작 내 앞의 현실에 일이 벌어지면 이해득실의 주판알을 굴리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에 자연은 어떤 느낌을 가질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김포님.
님께 전하는 첫 편지부터 무거운 이야기로 끝맺게 되어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올 4월이 지나가더라도 내년 4월이 있기에 봄의 추억은 사람들의 가슴에 한가닥 위안을 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눈에 비쳐진 굴포천 일대의 모습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별의 모습이 될 것 같기에 가슴 한켠이 더욱 아려옵니다. 그래서인지 김포 전호리 일대를 스쳐지나가는 올 4월의 시간들에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을 붙여도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 같습니다. 지금 김포님에게 자꾸만 되묻는 나의 질문들이 한낱 기우에 불과한 소심함의 표현이었다는 평가를 훗날 받기를 바래보며 가던 길을 다시 재촉해봅니다.
![]() |
||
![]() |
||
'기고,나눔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쿠가와 이에야스 유언, 유훈 (0) | 2009.05.11 |
---|---|
노력이란 재능을 가진 사람이 이 세상을 가지는 사람이다. 정누리-김포뉴스- (0) | 2009.05.05 |
도미노-누리의 시 (0) | 2009.03.10 |
함께하는 졸업식의 한 장면 "엄마 되는게 꿈"-커널뉴스 (0) | 2009.02.21 |
꿈의 해답-초등학교를 졸업하며 <김포뉴스 기고> (0) | 2009.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