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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소장의 글을 읽고, 참여정치는 죽었나 살았나. -서프라이즈 격암님

김포대두 정왕룡 2009. 9. 11. 10:24
김대호 소장의 글을 읽고, 참여정치는 죽었나 살았나.
(서프라이즈 / 격암 / 2009-9-10 10:46)



김대호 소장의 글을 읽고, 참여정치는 죽었나 살았나

(서프라이즈 / 격암 / 2009-09-10)


머릿말

김대호 소장의 글을 대문에서 읽고 매우 훌룡한 분석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분석에 대해 신당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기분이 나쁘다는 식으로 받아들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이글은 신당의 구조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과연 참여정치라는 아이디어가 종말해 버렸는가 하는 점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김대호 소장의 글에 대한 공감이 매우 크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그러면서도 몇 가지 지적할 점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겠습니다.

 

세상을 바꿔가는 것은 무엇인가

대개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 자신과 관련된 것의 중요성을 크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왕들은 왕들의 판단에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자들, 인문학자들은 사상에 따라 세상이 변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공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세상이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사서들은 왕의 명령을 따르는 신하나 당대의 지식인에 의해 씌여졌기에 왕의 영향력을 크게 쓰고 지식인의 영향력을 크게 쓴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논쟁은 결론이 쉽게 나지 않아서 일종의 신념처럼 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제적 발전은 과연 박정희나 정주영, 이병철같은 유명인들의 힘으로 이뤄졌는가 아니면 한국민중의 문화, 한민족의 역사가 그것을 만들어냈는가 하는 것은 결론 나지 않은 신념의 문제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념의 차이가 국가정책에 대한 중대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데 엘리트주의를 표방하는 쪽은 가능한 자원을 엘리트에게 몰아줘야 하며 그렇게 이뤄진 성과의 분배도 당연히 엘리트가 독차지 하다시피해야 한다고 말하고 대중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쪽은 대중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대중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쪽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게 됩니

다.

 

사상과 철학이 죽은 시대

저는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철학과 사상의 중요성을 굉장히 많이 느끼고 말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인문학이나 사상의 영향력은 전 세계에서는 물론 심지어 한국에서도 찻잔 속의 태풍같은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점이 있습니다.

이는 역으로 개인주의와 개인주의를 옹호하는 철학적 논리의 과도한 남용이 빚어낸 일이지만 사람들은 이제 누가 자신의 머리에 철학과 사상을 집어넣는 것에 대해 질겁을 하고 있습니다. 괴상하게, 독창적으로 독자적으로 한마디로 이기적이고 내맘대로 살겠다는 라이프 스타일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가장 덜 느끼는 사람들은 물론 인문학을 공부하는 분들이지요. 왜냐면 그분들은 그분들 주위에 비슷한 사람과 뭉쳐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재벌들은 둘러보면 사방에 재벌밖에 없고 박사들은 둘러보면 주변에 박사밖에 없으며 농부는 둘러보면 주변에 농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심하지 않으면 세상이 다 그렇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나라와는 크게 차이가 있다고 느끼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대중들도 활자화된 철학과 사상에 단어에 큰 매력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상과 가치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 그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사회의 정체성을 확실히 세워줄 가치관을 가진 정당이 출현하기 바랍니다.

 

단지 김대호 소장님의 글을 읽으면 사상과 가치가 몸통이고 형식이나 구조는 잔가지 처럼 느껴지는데 저는 그렇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사상과 가치의 실체화

글을 쓰는 분들은 사상이나 가치관이란 글을 통해 전해지고 설명되어진다는 점을 너무 과도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가치관이나 사상은 그렇게만 전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치관을 쉽게 전달하는 매체에는 우선 인간이 있습니다. 한 인간이 개혁의 심볼이 될때 그의 삶은 전체적로 해석되고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가치와 사상의 교과서로 등장합니다. 유명인사의 중요성을 무시할수 없는 이유입니다. 백번 천번 말한 사람보다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 더 확실하게 그게 뭔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매체에는 문화가 있습니다. 글도 문화입니다만 음악과 예술과 춤과 건축과 삶의 방식 모든 것이 문화죠. 히피들의 복음은 록큰롤이 아니었겠습니까. 김대호 소장님이 작은 실천을 강조하신 것은 이런 점을 알고 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글자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 즉 어떻게 사는가를 실제로 행함으로서 전체 집단의 정신적 핵심을 점검하고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매체에는 기술이 있습니다. 기술도 물론 문화입니다만 여기서는 특히 강조하기 위해 떼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직접 만나서 토론을 하고 강연회를 열고 질의 문답을 하는 식으로 하는가 아니면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인터넷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가 그 자체가 하나의 사상과 가치의 실체화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식이 대화나 사상의 내용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얼굴 보면서 이야기할 때와 전화통화를 할 때 글로 논쟁할 때 인터넷 채팅으로 논쟁을 할 때 익명성을 가지고 말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다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노풍과 개혁당의 열풍은 사실상 이점에 열광한 바가 컷습니다. 참여정치라는 것을 글로 설명한 것 이전에 새로운 형식의 접촉방식이 새로운 사상을 근거로하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실 사상과 구조를 구분해서 말하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우리의 옷과 집과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과 당내의 직함들같은 것이 모두 사상의 실체화입니다.

 

맺는말

제가 여태까지 쓴 것을 보면 신당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김대호 소장님을 어느 정도 반박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김대호 소장님이 우려하는 바는 모두 옳다고 생각합니다. 즉 기술과 구조가 사상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새로운 당이 사상을 그 구조 안에 잘 표현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리개념이 없는 인터넷 시대에 지구당 개념으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미덕이 투명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투명하면 당원의 권리따위 별로 필요없습니다. 중앙에서 맘대로 의사결정이 일어나도 그게 어떤 절차에 따라 누가 어떤 주장을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만 확실하면 대부분의 경우 아무도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은 모두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시스템은 정말 최악입니다. 모두가 너무 힘듭니다.

 

그런데 신당의 설계자들은 투명성에 강조를 두기보다는 권력의 분점에 강조를 두는 것같습니다. 그러므로 일종의 강제된 평등주의로 가진 것이 많은 유명인사들이 신당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는 환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당에 대한 분석은 제가 여기서 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참여정치의 이상은 참여라는 정신을 아무 내용없는 미덕으로 생각할 일은 아닌것 같습니다. 김대호 소장님은 참여정치의 사상에 사망신고를 내리는 면이 있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참여정치는 아직 살아있다!

 

(cL) 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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