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비단옷'의 민주당, 영혼이 녹스는가? -유시춘

김포대두 정왕룡 2010. 7. 28. 14:39


'비단옷'의 민주당, 영혼이 녹스는가?

(서프라이즈 / 유시춘 / 2010-07-28)


화상을 입은 양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차마 믿고 싶지 않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입 다물고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려고 했다.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이리라’ 하고. 여러 양식 있는 분들의 질책도 있었기에.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잖아!’다.
 
광주의 민주당 의원들이 민노당 후보를 비난한 말을 옮기지 않겠다. 참담하고 부끄럽다.

두 개의 장면이 떠오른다.
 
가난한 한 시인이 있었다. 군사독재를 증오하는 이글거리는 열정이 가득한 채 80년대를 통과했다. 그 시절에 통과의례가 그랬듯이 그 역시 노동현장 몇 곳을 전전했다. 잘난 것도 없고 영악하지도 못했던 그는 그렇게 언제나 눈이 충혈된 채로 청춘을 보냈다.

김영삼의 3당 합당으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지역적, 정치적으로 분열하고 ‘비군사정권’인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더 이상 ‘민주주의여, 만세’를 부르는 것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87년 6월항쟁 이후 스스로 노조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지게 된 노동현장은 더 이상 ‘학출’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가난한 시인은 동가식서가숙하며 낭인처럼 지냈다. 당연히 가족으로부터도 배제되었다. 그는 어느 날, 영등포 시계탑 광장에 지친 걸음으로 섰다. 그가 공장으로 가던 길에 날마다 지나치던 곳이었다.

 

   ‘지금은 눈길 한번 받지 못하는 채로
     멈추어 서서
     발아래 광고 쪼가리나 밟고 있는 시계탑 아래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초침엔 듯 실려 파들 떨고 있는
     살아갈 날들 간신히 바라보면
     거기
     칼끝인 듯 불쑥 외침을 베고 가는 바람
     아아, 마음 속 한나절 불꽃도
     이제는 견디지 못하고
     나무 그림자에나 헛되이 눕히는 그리움 한줄기’

 

그는 여전히 무엇인가 ‘사람사는 세상’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한나절 불꽃’이 꺼진 삶은 그리 길지 아니했다. 그는 90년대 후반에 고단했던 숨을 거두었다. 동료시인들이 사망신고과 장례절차를 위해 그의 도장을 찾았다. 없었다. 평생 지상에 그의 이름으로 된 방 한 칸이 없었던 터라 도장이 필요치 않았으리라.

 

그는 민노당 초기당원이었다.

80년대 학번인 후배가 있었다. 이른바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류대 재학생이었다. 집에서 나와 친구 두엇과 구로공단 인근 쪽방에서 자취생활을 했다. 그녀는 ‘신열’을 앓았다. 살인집단이 권좌에 올라앉아 민주공화국을 조롱하는 현실을 엎어버릴 수 있는 힘은 ‘민중’으로부터 나온다고 굳게 믿었다. ‘앎’과 ‘행동’은 일치해야 가치 있는 삶이라고 그녀는 스스로 채찍질했다. 겨울이면 머리맡의 물그릇이 얼어 터지는 방에서 웅크려 잤다. 서리가 뽀얀 새벽길, 날 선 바람을 헤치며 출근하면서 그녀는 진정 가치 있는 삶에 대해 수백 번 묻고 또 물었다. 
 
그녀의 자취방이 경찰에 급습당하고 그녀가 잠수를 탈 때, 조중동은 그녀를 가리켜 ‘반미분자’ ‘불순세력’이라 몰아붙였다. 나중에 딸이 행한 일련의 ‘사서 하는 고생’의 실체를 안 그녀의 아버지는 경악했다.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생각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정의로운 ‘신열’을 앓았던 청년 학생들의 수는 지금까지도 정확히 그 규모를 알 수 없다. 감히 단언컨대 한국현대사에서 그 영혼이 가장 순정하게 빛나는 연대였다.
 
그 후, 결혼해서 이 땅의 가장 평범한 얼굴의 주부요 어머니가 된 그녀 역시 지금쯤 아마도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의 당원이 아닐까?

나는 언젠가 그녀가 쓴, 구로공단 ‘위장취업일지’를 보고 크게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다. 그리고 잠깐 생각해 보았다. 내가 만약 80년대 학번이었더라면 그녀만 한 용기와 헌신과 순정이 있었을까?하고.
 
나는 지금도 그 수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80년대 그녀들을 경배한다. 광주의 민주당의원들이 경쟁자인 민노당후보를 두고 한 비난은 현재의 민주당 현주소를 웅변한다. 또한 앞으로의 민주세력의 진로를 두고 고심하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연대와 연합의 정신과 기술이 부족했던 민주세력은 지난번 6.2선거에서 국민의 여론에 쫓기듯이 불완전하나마 선거연합을 실현했다. 국민들은 갈채로 화답했다. 눈물겨운 일이다. 속속들이 완전하지도 않은 채 시늉만 보이고 국민께 잘 보이려고 약간 화장만 했을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6.2선거 압승에 도취한 ‘부잣집 맏도령’ 민주당은 비단옷을 입게 되었다. 곳간도 넉넉하다. 그러나 언찌된 영문인지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도 민주당에겐 비껴간다. ‘광주의 한나라당’이라는 비아냥도 아랑곳없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우군인 민노당에 한 석 내주는 일은 결코 민주당의 패배가 아니다. 지역독점에 균열을 내는 건 자랑스런 일이다. 모든 독점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비단옷’은 영혼을 녹슬게 한다는 선인의 경고를 되새겨 주고 싶다.

 

민주당은 정녕 2012년의 전략을 고심하는가?

민주주의, 민생경제, 남북평화의 급속한 퇴행을 몰고 오는 이명박 정부로부터 국가경영의 핸들을 다시 돌려받을 어떤 책략을 고민하는가?

김대중 대통령의 유언처럼 된 야권연대의 당위성을 어떻게 실천할지 조금이나마 고민한다면 광주의 망언은 결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을 두고 개략적으로 간추리면 이러하다.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구해 민주개혁 진보세력이 세우고자 하는 국가의 비젼은 복지민주주의와 초록 민주주의, 그리고 남북평화의 정착으로 요약된다. 세계 여러 정치적 후진국이 모델로 삼고있는 유럽민주주의 200년사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의 제도적 확보를 이루는 ‘자유권중심민주주의’에서 보편적 복지와 교육기회평등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권리 중심의 복지민주주의. 나아가 삶의 질로서의 생태와 환경의 가치가 중심인 ‘초록민주주의’로의 발전모델이다.

 

우리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제1단계인 자유권중심민주주의를 얼마간 성취했다. 다시는 뒤돌아갈 수 없다고 믿었는데 그것이 순진한 망상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각종 사찰과 권력을 사유화하는 기구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통탄할 노릇이다.

그러면 이러한 우리의 소망과 국가발전의 경로를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해답은 자명하다. 삼척동자도 안다.

그것은 통합적 리더쉽에 의한 연대와 연합에 있다.

 

지난 10여 년간의 여러 선거에서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민주개혁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 세력은 각각 13% 정도로 삼분되어 있다.  2004년 총선에서 민노당은 13% 지지를 확보했다. 이것이 08년 선거에서 민노당 6%, 창조한국당4%, 진보신당 3%로 분화했지만 역시 합산은 13%이다. 진보의 분열은 제로섬게임임을 입증한다.

연대와 연합의 기초는 상호신뢰로부터 출발한다.

 

민주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당은 역사와 정통성, 그리고 굳건한 지지층을 가진 부러운 정당이다. 마땅히 민주세력의 맏형이다. 그래서 지난 30년 내내 재야의 어르신과 활동가들은 부단히 민주당을 격려하고 걱정해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계실 때는 그래서 아무 의심 없이 수혈하고 의지하고 무조건 지지했다. 신용거래가 빈번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모든 것은 영고성쇠하는가?

오늘, 민주당의 현실은 참담하다. 비단옷에 곳간도 넉넉한데 놀부 짓을 서슴없이 자행한다. 영혼이 녹슬려고 한다. 민주당은 단순히 일개 정당이 아니다. 독재정권 30여 년 동안 국민의 가슴에 서린 한과 꿈이 집적된 집결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자당인 것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눈앞의 작은 이익 하나에 산산이 조각내버리다니! 안타깝고 슬프다.

 

절대다수 보수의 땅에서 지난 민주정부 10년을 탄생시킨 국민을 소중히 여기고, 온갖 신산고초를 감내하면서 진보개혁정당의 싹을 가꾸어온 우군을 자신들의 보물 같은 자산으로 여길 줄 알라!

이 지엄한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놀부 짓을 계속한다면 그때, 민심의 쓰나미는 한순간에 덮쳐들 것이다.

이번 민주당 광주의원들의 망언은 크게는 광주민주화정신과 진보개혁의 연대정신을 가차없이 모독하는 행위이다.

당사자들의 행보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


유 시 춘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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