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 이정희, MB정부 김태호, 민주당은?
(창호알지넷 / 김창호 / 2010-08-09)
공식적으로 1969년 12월 22일생이다. 만 나이로 이제 막 40을 넘겼다. 이정희 의원이 지난 30일 공식적으로 민노당의 대표가 되었다. 투쟁과 과격한 구호로 주도되던 민노당의 역사에 비춰보면 이번 선택은 의외이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진다.
이런 느낌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민노당은 투쟁과 남성 중심의 정당이었다. 그 정당에 참여하는 여성들마저 쇳소리를 내는 남성처럼 비춰진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해 이 의원은 여성적이면서도 철저한 자기 소신과 원칙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노당은 왜 이정희 의원을 선택했을까
또 이 의원이 지금까지 보여준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민노당이 보여준 지금까지의 정치적 행동양식은 보수정치인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노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행위에서 시민들은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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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노당은 젊고 신선한 이정희 의원을 대표로 선택함으로써 기존의 이미지에서 과감히 탈피하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
그러나 이 의원의 경우는 달랐다. 이 의원은 정치공학적이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았으며 오만하지도 않다. 대신 그녀는 겸손했고 일관성 있는 행동으로 대중에게 진정성을 갖고 있는 정치인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번 민노당의 선택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같은 이 의원 개인에 대한 평가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민노당이 지금까지 보여준 분파주의, 그리고 민노총에 대한 의존 등을 고려하면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민노당에 대해 분파주의와 민노총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정치적 변화나 선택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안팎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 의원을 대표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분파들의 정치공학으로 인해 이런 결정을 과거에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 의원을 대표로 큰 잡음 없이 합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토니 블레어, 데이비드 캐머런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현대 정치사에서 ‘세대교체’는 집권전략의 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왔다. 대중들의 변화와 개혁의 요구에 부응해 새로운 인적 자원을 충원함으로써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것이다. 국내적으로 40대 기수론이 그랬고, 영국의 토니 블레어, 데이비드 캐머런도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미국의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도 크게 보면 이 범주 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41세로 영국의 노동당 당수에 올라 3년 후인 44세의 나이로 최연소 수상에 취임한 토니 블레어는 세대교체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토니 블레어를 통한 노동당의 집권은 1979년 마거릿 대처에게 정권을 잡은 지 무려 18년 만에 이뤄낸 정권교체였다. 젊은 지도자를 내세운 노동당의 전략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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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니 블레어(왼쪽)와 데이비드 캐머런은 각각 40대의 젊은 나이에 노동당과 보수당의 당수에 올라 당의 변화를 이끌었다. |
영국 노동당은 집권을 위해 젊은 세대를 길러내기 시작했다. 대처 집권 이후 젊은 정치인들을 키워내 나름대로 역할을 부여했다. 그 과정에서 원로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이들이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토니 블레어의 등장은 치열한 정치투쟁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노동당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였다.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44)도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5월6일,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은 13년 만에 노동당을 누르고 제1당이 됐다. 그 결과 캐머런 당수는 지난 200년 역사에서 가장 젊은 총리로 등장했다.
그가 보수당의 새로운 기수로 뽑힌 것은 2005년 12월, 이때 나이가 39세에 불과했다. 당연히 능력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 정권에서만 무려 4명의 당수를 교체할 만큼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었던 보수당의 궁여지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캐머런 총리는 단지 노동당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총리직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과거 대처리즘으로 대변되던 보수당과 달리 스펙트럼을 넓혔다. 아동복지와 노령 은퇴자 빈곤문제 등 복지 문제로 보수의 영역을 넓혔다. 젊은 네티즌들과의 소통을 통해 정치적 힘을 키워나갔다.
그는 자신에 대한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당 지지율을 집권 노동당보다 20% 이상 더 끌어올리면서 5년간 당을 이끌었다. 당수로 선출된 직후 50대의 블레어 총리를 구시대 인물이라고 비판하면서 보수당에 ‘젊고 신선하다’는 새로운 색채를 입혔고, 좌충우돌하던 당을 정비해 집권의 토대를 닦았다.
한나라당은 아바타 총리를 통해 ‘세대교체’ 중
이런 흐름에 영향을 받아서일까. 최근 이명박 정부가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총리로 내정함으로써 ‘세대교체’의 바람을 몰아가고 있다. 이번 개각은 총리 이외에는 결코 새롭고 젊은 인물이라 평가할 수 없는 인선이다. 특히 인턴 아바타 총리를 배후조종할 이재오 특임장관의 임명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이 ‘젊은 보수’로의 세대교체로 몰고 가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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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정부는 40대의 김태호 예비총리를 내세워 세대교체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
이들의 문제의식은 여러 곳에서 노정되고 있다. 여의도 연구소가 내놓은 관악구청장 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을 분석한 보고서가 의미심장하다. 과거 아파트를 많이 지어 분양하면 그만큼 보수가 늘어난다는 가정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이다. 오히려 원룸의 증가가 전통적 보수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밑바탕에 청년실업와 양극화, 주택문제가 깔려있는 이들의 삶에서 전통적 보수의 동원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재오 특임장관의 재수생과 취업생에 대한 발언도 우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전체 맥락에서 심상치 않다. ‘재수생은 농촌이나 공장으로 가라’, ‘대졸 취업생은 중소기업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홍위병식 발언은 청년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보수적 맥락에서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극우적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문제를 보수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세대교체가 이 같은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주는 필요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보수세력, 좁게는 이명박 정부는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려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어떤 준비를 하나
그러면 민주당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지난 지자체 선거 중에 어느 언론사 간부가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당은 이미 노쇠해 보인다.”
그것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은평을 보궐선거였다.
분명, 민주당에는 386 세력도 있고, 연령대로 보면 한나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정치인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민주당을 ‘고리타분하거나 노쇠하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얘기하자. 국민들은 민주당에서 새로운 대안 엘리트가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비정규직과 양극화, 청년실업에 대해 고민하거나 서민문제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찾으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처럼 원룸세대들이 바로 그 핵심이라고 짚어내어 그들의 고민과 문화를 진보적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것도 아니며, 새로운 소통과 삶의 양식과 문제상황을 정치적으로 의제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4대강이나 미디어 악법 반대나 정권심판과 같은 거대 의제를 만병통치약으로 써먹고 있을 따름이다. 당연히 4대강과 미디어 악법을 반대해야 하고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자칫 이런 의제의 뒤에 숨어 해결해야 할 수많은 생활정치적 의제를 외면하려는 무사안일함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억울한 일일까.
그렇다고 영국의 노동당이나 보수당처럼 새로운 대안 엘리트 세력을 키워내기 위한 합리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번 은평을의 경우처럼 새로운 엘리트 충원을 의도적으로 가로막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 시민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바보야, 문제는 세력교체야!!
세대교체가 요즘의 젊은 세대의 문제를 자동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세대의 문제가 계층의 갈등과 깊숙이 착종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구조적 문제가 이들 세대에게 집중되어 있을 뿐,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문제가 과거처럼 단순히 문화나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적 생존과 사회적 존립의 문제(청년실업, 비정규직, 주택문제 등)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 만큼 이들 세대는 스스로 세력화하고 있고, 우리 사회의 세력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세력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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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정부가 개각을 통해 세대교체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와중에도 민주당은 이렇다 할 대안이나 새 인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이들은 나이로 자신들을 대변할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달리 한 두 사람의 얼굴마담 교체로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상관없다.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라는 조건에서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삶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력교체를 통해 요구되는 새로운 대안적 엘리트들은 과거 진보개혁 세력과 동일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하게 인정하자. 우리는 오랜 민주화 운동을 거쳤다. 그러나 억울하지만 반독재 투쟁이라는 낡은 형식에 길들여진 정치행위로는 현재의 삶의 문제를 정치화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자. 투쟁을 중심가치에 놓았던 방식으로는 이제 대안을 요구하는 가치에 부응할 수 없음을 인정하자. 보수 언론들은 이를 의제화해 ‘젊은 세대의 보수화’로 몰아갔다. 물론 보수화는 아니라 하더라도, 진보의 양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주변에 있는 정치인, 혹은 정치 예비군들이 이런 새로운 대안 엘리트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민주화 운동을 해왔고 또 정치를 이끌어온 사람들로서야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스스로 과연 미래 대안 엘리트가 될 수 있는지 고민해보기를 권유한다.
최근 야권통합과 개혁의 문제가 정당 외부에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 어떤 경우는 직접 그것을 추진하기 위한 조직적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그것이 과연 새로운 대안 엘리트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김창호 / 전 국정홍보처장
출처 : http://changhorg.net/think/newsletter_R.asp?kcat=01&knum=00015&hpag=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