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祖江)! 나의 할머니. 김포의 할머니.
-풍무고 1학년 정누리 -
17년전.
태어나면서부터 저는 김포와 함께 성장해왔습니다.
김포.
이 두 글자를 입에 되뇌이면 머릿속에선 홍도평의 파릇파릇 새싹들의 꿈이 보이고, 억새풀같이 꺾이지 않는 열정이 넘쳐나고, 재두루미의 깃털같이 포근한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그 따스함은 곧 갓난 아기 시절 이유 없이 엉엉 울던 나를 포근히 잠들게 했던 할머니의 주름 진 손이 생각나게 합니다. 김포의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자장가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따스함만 느꼈지, 우리 김포에 이 땅을 묵묵히 보듬어 주신 대자연의 할머니가 있어서 그렇다는 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제가 오늘 김포의 변함 없는 할머니, ‘조강’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나온 이유입니다.
조강(祖江).
말 그대로 ‘조상의 강’이라는 뜻입니다. 김포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켜 온 강이지요. 사람들은 이 강변에서 빨래도 했을 것이고, 물장구를 치기도 했을 것이며, 고기도 잡았을 것입니다. 때로는 뱃사공들이 배를 띄울 수 없을 때 한참 쉬었다 가는 그런 곳이기도 했지요. 이 강은 그렇게 옛날부터 우리 김포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 할머니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가장 잦은 지역. 그 곳이 김포의 할머니, 조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곳이 어느 순간부터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 합니다. 어느 곳에선 총성이 울리고, 잔잔하던 강이 거세게 요동치는 모습도 보입니다. 김포를 보듬어 주던 조강은, 어느새 철조망이라는 분단의 장애물로 인해 금단의 지역이 되고 한반도는 허리가 끊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강을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강은 그 후 김포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조강은 말없이 흐르는 하나의 강인데 강물 한복판엔 넘을 수 없는 경계선이 있어 뱃길이 끊긴지 수십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느 하나의 강이 남과 북, 두 개의 지역으로 절단된 일일 뿐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조상님의 시대로부터 쌓여져 온 수많은 역사와 김포의 아름다움이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한반도의 기운이 흐르는 혈맥이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조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대자연의 할머니는 지금도 이산가족이고, 6.25 전쟁의 아픔을 깊게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TV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눈물을 흘리시면서, 떠나는 버스를 쫒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버스 안에서는 또 다른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창문 너머로 손을 뻗고 계셨습니다. 그때는 생각했지요. ‘왜 버스를 잡으려 하실까? 다른 버스를 타면 되지….’ 하지만 그 버스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버스 였다는 걸, 철이 든 다음에서야 알았습니다. 그것은 이산가족 상봉 버스였습니다.
저는 조강의 허리가 다시 이어질 때, 그 버스도 다시 운행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옛날엔 뱃사공이 눈을 붙이고 간 쉼터였으니, 이제는 그 차가 쉬고 갈 수 있는 쉼터가 되어 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조강은 나에게 조화의 상징이고, 김포의 상징이며 한반도가 하나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나는 김포에서 17년을 자라오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껴왔습니다. 시골의 정겨움과 도시의 문명을 함께 가지고 있는 곳이 김포라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이 곳을 소개하라하면 정말 3일 밤낮을 거쳐야 이야기가 끝날 것 같습니다. 김포에는 이렇게 많은 스토리가 스며있음에도 그 누구에게 김포를 이야기 하는 자리가 있다면 나는 조강의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소개 할 것입니다. 그 유명한 김포 쌀도, 천연 기념물인 재두루미도, 흔들리는 억새갈대도 결국 모두 이 강에서 이루어진 아름다움이라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곡식을 키울 용수를 공급해주고, 새들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갈대의 고향이 되어준 이 곳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요?
많은 강들이 메워지고, 도시화가 되어 가는 요즈음. 꿋꿋이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우리 김포의 영원한 할머니 강, 조강. 저는 이 강이 우리 김포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중에 많은 시간이 흘러 내가 쭈글쭈글 할머니가 되어있을 땐, 아마 지금보다 더 큰 할머니가 되어 우리 땅을 보듬어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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