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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생명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김포대두 정왕룡 2006. 6. 27. 10:52
‘평화와 생명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양도초교 아람단 철원행사 참가기(1)-

 

정왕룡 시민기자 kd6010@hanmail.net

 

   
‘궁예와 임꺽정의 숨결이 강하게  남아있는 고장’

철원이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미지는 그러했다. 그런데 그 고장을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다니 약간의 설레임이 묻어난다. 중학교 때 교회수련회를 한탄강 유역으로 다녀온 뒤 처음가보는 철원길이다.
 
월드컵 스위스전이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으로 끝나버린 아쉬움은 철원행 버스 안에서도 넘쳐났다. 아이들이나 인솔 선생님들, 그리고 나처럼 후원회 자격으로 동행하는 몇몇 학부모님들 사이에서도 새벽잠을 설치며 응원했던 축구 결과에 대한 안타까움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 노래하면서 가요” “버스 안에서 음주가무 행위는 금지되어 있는거 알지?”
출발 무렵 아이들의 제안에 강명실 지도선생님의 행동지침을 겸한 당부말씀이 이어진다.
자유로를 길게 걸치는가 싶더니 문산, 전곡을 지나며 임진강과 입맞춤하고 포천을 넘어 철원에 들어서니 한탄강이 어느새 포옹을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길다면 긴 두 시간 남짓 차량이동에 멀미 등으로 지쳐있던 표정은 사라지고 다들 금세 주변풍경과 함께 어우러진다.

 

‘태봉 번지점프, 꺽정식당, 한정식 궁예도성’
고석정 휴게소 주변의 간판글씨들이 철원을 상징하는 두 인물의 흔적을 물씬 풍긴다.
‘먼훗날 자신의 이름이 식당 간판에 오르내리고 관광책자에 소개될 줄 그들도 알았을까?’

한 많은 생애를 살다간 비운의 두 인물을 떠올리며  공허한 상상을 해본다.


“임꺽정이 누구지?” “의로운 도적요.”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래도 ‘의적’이라 일컬어지는 임꺽정은 폭군 이미지의 궁예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긴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바꾸어보려다 실패한 역사속의 인물이고 보면 ‘행복’을 비교하는 생각자체가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철의 삼각지대중 하나인 철원은 김일성이 빼앗긴 뒤 일주일동안 밥을 안 먹으며 안타까워했던 곳이란다. 그만큼 맛있는 쌀이 생산되는 곡창지대이기도 하지”

“지금은 민통선을 지나고 있는데 저기 철책들 보이지?”

“북한 사람들이 누가 떠드는지 다 보고 있단 말야. 여기가 38이북이라서 6.25 전에는 북한 땅이었단다. 평소엔 여러분들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야”

 

제2땅굴 견학을 가는 차안에서 아이들의 주의를 모으기 위해 지도 선생님이 문답방식의 설명을 진행하신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6월 24일이다. 예전 같으면 웅변대회, 포스터 그리기 ,글짓기 등 반공을 주제로 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될 시기이기도 하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어린나이에 소화하기엔 너무도 살벌한 노랫말들을 동요처럼 친숙하게 따라 부르며 자랐던 유년기가 떠오른다. 학창시절은 물론 군대시절까지 따라다녔던 각종 6.25 행사덕분에 상도 타고 포상휴가도 다녀왔다. 그렇게 핏빛 붉은색으로 긴장감을 안겨주던 6월이, 80년대엔 민주화 투쟁의 열기로 가득차는가 싶더니, 21세기가 열리면서 월드컵 함성의 붉은색으로 변해버렸다.

 

6월을 대하는 이러한 변화의 바람을 반영이라도 하듯 비무장지대에 들어선 아이들의 표정은 도무지 긴장감이 없다. 나무숲 사이로 오가는 다람쥐를 보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선생님이 말씀 하신 노루가 어디 있을까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다.

 

‘철조망, 총칼, 탱크, 대포......’
주변에 스치는 각종 무기들이 아이들에겐 한낱 쇳덩이로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 좋은 변화겠지?’
지금도 여전한 분단상황이 안겨다주는 긴장감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어른들에 비해, 너무도 홀가분한 아이들의 표정에 나 역시 한순간 낯설어 하다가 자문자답형 질문을 던져본다.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도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나도 모르게 구약성서의 노랫말이 입가에서 흘러나오는데  방금 전 지나온 철새마을의 안내간판 문구가 눈가에 스쳐간다.

 

 ‘평화와 생명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이미 이 소리를  듣고 있는 아이들에겐 그러한 안내문구가 따로 필요 없을 것 같다.

   

 

입력 : 2006년 06월 27일 09:34:16 / 수정 : 2006년 06월 27일 09: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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