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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땅굴 앞에서

김포대두 정왕룡 2006. 7. 5. 11:26
제2땅굴 앞에서
-양도초 아람단 철원행사 참가기(2)-

 

정왕룡 시민기자 kd6010@hanmail.net

 

   
“서울북방 106km 지점에 위치한 북한의 기습남침용 지하땅굴은......”
제2땅굴로 향하는 지하통로의 안내문 앞에서 자못 긴장감이 찾아든다. 카메라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병사들이 입구에서 수거한다. 아쉬움이 밀려든다. 땅굴이 발견된 지 30년을 넘어섰다. 입구주변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저 군인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땅굴이 발견되어 이미 한 세대가 지났다. 하지만 분단의 장벽은 무너질 듯 하면서도 여전히 굳게 버티어 서있다.

‘언제쯤이 될까? 이곳 땅굴에 자유로이 카메라를 들고 가벼운 맘으로 들어설 날이.....’
땅굴밑에서 밀려오는 공기가 서늘하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하다.
아이들은 나의 이러한 상념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하동굴 탐사라도 떠나는 기분들이다. 그냥 즐겁기만 하다. ‘뫼비우스의 띠’가 어떻고 동굴의 모양이 어떻고 하면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계단을 따라 백미터 넘게 아래로 계속 내려가는가 싶더니 이제는 옆길로 난 길을 따라 어둠침침한 내부를 걷는다.

   
“아저씨 무서워요. 안아주세요”
언니 오빠따라 함께 온 유치원생 진아가 곧잘 혼자서 잘 걷는가 싶었는데 차츰 깊어지는 땅굴내부 풍경이 무서운가 보다.  좁은 통로에서  아이를 안고 걷다가 그만 머리를 천정에 부딪혀버렸다. 다행히도 입구에서 지급해준 헬멧을 쓴 탓에 충격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웃지마. 우리 아저씨보고 놀리지마!”
품에 안긴 진아가 앞뒤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오빠 언니들에게 씩씩거린다. 출발하는 버스안에서 처음 봤으니까 그야말로 사귄지 반나절도 안되었지만 머리 큰 아저씨가 놀림감이 되는게 싫은가보다. 어둠속에 든든한 친구가 있다는게 그냥 훈훈하다. 이래서 나이를 떠나 친구란 좋은가보다. 반만년이나 사귀었는데도 50년 넘게 서로 으르렁대는 남과 북의 어른들이 아이 앞에서 부끄럽기만 하다.

“그냥 땅위로 걸어와 웃으며 악수하면 될 일을 왜 이리 힘들게 땅굴을 팠을까?”
어릴적부터 들어온대로 당연히 남침용이란 생각을 해보면서도 그 무모함이 안타깝기만 하다. 열악한 조건에서 이 공사에 투입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어갔을 것이다. 남한측 역시 땅굴 수색과정에서 8명의 젊은 청춘이 지뢰등으로 세상을 등졌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조국사랑, 애국, 통일, 해방과업’등 거창한 명분아래 자기 삶을 자의나 타의에 의해 내던져 버렸다.

   
‘애국’이란 말은 사람을 참 힘들게 하는 단어인 것 같다. 더구나 그것이 분단된 하늘아래서 동족끼리 총을 겨누고 있는 현실에선 ‘애국의 길’은  먼저 어느 편인지 소속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한다. 저마다 통일을 외치지만 자기방식을 강요한다. 중간이란 없다. 경계선에 서서 화합을 외치는 사람은 양쪽 모두의 적일뿐이다.  해방정국에서 몽양 여운형이 그 길을 가다 총탄에 쓰러졌고 백범 김구 역시 얼마안가 피살되고 말았다. 그리고 장준하가 그 뒤를 이었다. 온몸을 겨레앞에 내던지는 심정으로 북에 다녀온 문익환은 한낱 감상적 민족주의자로 매도될 뿐이었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화합과 통일의 길은 계속되어져야 한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군인이 앞길을 가로막으며 돌아가라고 한다.
북상을 저지하는 군인뒤로 바리케이트가 보이고 그 너머로 어둠이 짙게 도사리고 있다. 그 어둠속 어딘가에 남북을 가로막는 지뢰가 매설되어 있으리라.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아까 들어올 때는 보지 못했던 굴착작업의 흔적이 여기저기 암반사이에서 목격된다.
땅굴을 찾기위해 남한측에서 시도했던 시추작업으로 인해 생겨난 수직구멍도 눈에 띤다.

   

‘정전 19325일’
출구로 나오니 입간판에 써있는 글자가 보인다.
‘종전’이 아닌 ‘정전’이라는 글자가 가슴을 후벼판다. 한 글자 차이가 주는 의미의 간격이 하늘과 땅 사이처럼 멀게 느껴진다. 아직도 19325일이 지났건만  종전이 아니라 정전이란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잠시쉬고 있는 휴전일 뿐이다.

“아빠, 뭘 보았어?” “글쎄,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이 안나. 너는 뭐가 생각나?”
“아빠 공부 제대로 안했구나. 근데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정전, 종전, 휴전’ 이런 낱말들을 그냥 잘 모르는체 무럭무럭 평화롭게 커가길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 너무 낭만적일까?  아이에게 ‘전쟁’이란 단어는 너무 무거운 주제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입력 : 2006년 07월 05일 09:57:41 / 수정 : 2006년 07월 05일 10: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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