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지금이 어느 때냐구?

김포대두 정왕룡 2008. 8. 8. 22:05
 



 * 지금이 어느 때냐구? *


날씨가 너무 덥다.

온 천지가 한증막 사우나 같다.

그래도 날씨 더운것은 그러려니 할수도 있다. 지구 온난화 어쩌구 저쩌구 하는게 어제 오늘의 일이던가.


진짜 참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지금 어느시기 어느나라에 살고 있는지 도통 헷갈리기만 하다는 거다. 내가 진짜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맞을까?


“아무리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고 하지만 법정 판결이 나왔다고 시청에서 수수방관하고 있다는게 말이 됩니까?”


이미 법정까지 가서 마무리된 한강수영장 사태에 대해 뒤늦게 한 주민이 피해보상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그저께 전화로 목소리를 높였다.


“죄송합니다. 법정 판결까지 나버린 상황에서 이 사안은 시청이나 시의회에서 달리 개입할 방도가 없는 듯 합니다.”

그 주민께서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는데도 ‘법에 대한 존중’을 정중히 말씀드리면서 전화를 종료했다.


“지금이 어느시기인데 이렇게 시청과 의회가 방관하고 있는 겁니까. 이런 식으로 주민위에 군림하려 한다면 가만 안있겠습니다”

그분이 전화를 종료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지금이 어느 시기인데......’

주민들을 만나다보면 참 많이 쓰는 표현이다.

오늘도 고촌지역에 민원처리 하러 나갔다가 나이 지긋하신 지역 어르신으로부터 시청의 탁상행정을 질타하실 때 역시 이 표현을 들었다. 과거 군사독재시절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던 통치행태가 통하는 시대가 아님을 지적하는 말일 터이다.


그런데 오늘 KBS  정연주 사장 불신임안을 결의한 이사회의 행동을 보면서...이를 칭찬하는 한나라당과 청와대 자유선진당의 논평을 보면서....더더욱이 과거 노동운동을 하다가 김문수 따라 한나라당에 들어가 대변인 감투까지 쓴 차명진이라는 사람의 논평을 보면서,, 고시패스까지 했다는 원희룡이라는 친구의 전형적인 양비론적 발언을 보면서...나는 ‘지금이 어느 시기인데’라는 말에 더 이상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게 되었다.


‘지금이 어느 시기인데’라는 말은 결국 그 말의 진위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때 차용해서 쓰는 수사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이 땅에 최소한의 합리성과 양식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시민을 사냥하듯 잡아가는 경찰에게  포상금 제도를 실시하겠다는 해괴망칙한 발상이 어찌나올 수 있단 말인가. 성적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학교를 서열화하여 경쟁력을 자극하면 학업능력이 향상된다는 저들의 의도가 맞다치자. 하지만 적어도 고집스럽게 학원을 안보내며 공교육에 대한 실낱같은 신뢰감 하나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우리 아이같은 경우에도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회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온통 사회가 미친것 같다.

한쪽에서는 촛불을 들고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를 감내하며 날밤을 지새우고 기륭전자  노조원들은 50일이 넘는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올림픽 열기가 뜨겁고 금메달 몇 개를 목에 걸어야 10위권이 가능한지 숫자를 헤아리기에 정신없다.


시청에 출근하다보면 만나는 사람마다 ‘휴가 안가냐’고 물어본다.

‘휴가’라는 두 글자가 나에게는 여전히 사치스러운 두 글자로 버티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길거리에서 감옥에서 투쟁하고 있는 분들 앞에서 ‘휴가’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기가 참 민망하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얼굴을 대할 때 나름대로 자신의 관심사에 맞게 일정을 들이대며 협조해줄 것을 요청해주는 모습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아빠, 이것 좀 봐”

어제 잠자기 전 딸아이가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새로 바꾸었다며 아빠의 칭찬을 기대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한창 일에 몰두하고 있던지라 좀 짜증나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아빠따라 나갔던 촛불집회 때 찍었던 장면을 옮겨놓은 것이다.


‘이 아이가 자랐을 때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


그들만의 대한민국, 당신들만의 대한민국이 아닌 ‘우리들의 대한민국, 서로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을까?


‘역사는 진보한다’는 대명제에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회의와 좌절감속에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절망하는 나는 역사를 사랑할 수 없는 못난 인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