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내안의 정치, 바깥의 정치

김포대두 정왕룡 2009. 1. 6. 10:24

*내안의 정치, 바깥의 정치*


새해 벽두부터 나의 몸이 반란을 일으켰다.

지난 연말 '친구와 배겟머리 잠자리'를 갖고 싶다는 아이에게 집을 빼앗기고 모처럼 부부 단둘이서 온천욕을 겸해 포천에 다녀온게 화근이었던 듯 싶다.

몸에서 자꾸 경고음이 울리는데 1월 1일 학원에 출근했다. 그리고 그 후.....


1월 2일 충현탑 참배에 결국 참석 못하고 말았다.

어찌 어찌 하여 시무식에는 몸을 이끌고 가긴 갔는데 다른 분들이 보기에도 몰골이 안돼 보였나 보다. 만나뵙는 분들마다 염려하신다.


"의원님도 아플때가 있네요?"

"............"

한 직원이 던지는 말에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


토요일, 하루종일 집에서 이불 뒤집어쓴 채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씨름했다.


"아빠가 누워 있으니까 모든게 다 정지되어 버린것 같아!"

꼬마가 엄마에게 던지는 말이 귓가에 들려온다. 병원에 가라는 데도 안가고 혼자서 땀만 뻘뻘 흘리는 나를 보고 아이엄마는 진짜 답답해 못보겠다는 투다. 그냥 오기인 것 같다. 아직은 맨몸으로 이깟 몸살정도는 이겨낼 수 있다는 오기가 발동하는 것 같다.


이불 뒤집어쓰고 하루종일 누워있으니 과거 비슷하게 아팠던 경험들이 스쳐지나간다.

연탄불 꺼진 흑석동 자취방, 그리고 총학생회 사무실, 군시절 동해안 해안초소, 의왕시 청계 구치소 8중 6방..


한결같이 닫힌 공간에서 일년에 한두번씩은 찾아오는 감기몸살과 맨몸으로 부대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들은 나의 사진첩 한 공간을 차지하면서 아스라이 잊혀져갔다. 나의 몸은 그때마다 나에게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미소를 지어줬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몸이 나의 말을 따라주지 않는다.

번번이 딴지를 건다. 계속 말을 안들으면 가만 안있겠다고 경고를 한다.


그리고 40대 후반으로 넘어가는 새해 길목에 찾아 온 몸살 감기는 나에게 예전과는 다른 차원의 적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제발 인생을 좀 쉬어가면서 즐기면서 살자고 말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나도 그러고 싶다고 몸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몸은 이말에 더 이상 반응이 없다. 침묵에 담긴 메시지가 무겁게 느껴진다. 불신이 깔려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한다.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라'

태아시절부터 나를 감염시켜버린 예수의 이 말씀을 비추어보면 나처럼 몸을 혹사시키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도 없는 것일까?


나는 배짱이과일까? 개미 과일까?

따지고 보니 양쪽 다 어떤 과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에게 맞는 과는 도대체 어떤 부류일까?


"도대체 인생 뭔 재미로 살아요?"

예전부터 많이 듣던 소리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버렸던 말들이 요즘와서 나에게 도전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그만큼 소심해진 것일까?


몸이 나에게 꾸지람을 하고 있다.

몸이 나에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고 있다. 안그런다면 파업이라도 할 태세다.


그래도 이번만은 봐주려나보다. 며칠 지나니 약한번 안먹고 버틴 오기가 기특했는지 다시 새록 새록 기운이 차려진다.


어떤 방법이 과연 현실적일까? 몸과 타협하는 방법은?

그런데 타협이 가능하기나 한걸까?

내안의 또다른 무서운 상대인 '열정'이란 놈이 화산활동을 멈추지 않는한 답이 없을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그만 활동을 멈추고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낼법도 한데 이 놈은 퍼내도 퍼내도 마르질 않으니 감당하기가 벅차다.

할수없다.

몸과 열정...이 두녀석을 조화시키는 최고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때인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정치는 다른데서가 아닌 내안에서 이뤄져야 할 분야다. 내안의 정치를 성공적으로 이뤄낸다면 바깥일 들이야 까짓것 그게 뭐 대수라고......


09년 한해는 내안의 두 이질적 요소를 조화시키는데서 정치의 오묘함을 먼저 터득해야할 것 같다.

 

 정왕룡, 너는 언제까지 이리 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