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유성룡의 고독을 마주대하며...

김포대두 정왕룡 2009. 1. 11. 07:51

*유성룡의 고독을 마주대하며...*


새해 아침 이덕일의 유성룡을 읽었다.

부제로 붙어있는 '설득과 통합의 리더'라는 말이 눈길을 끌었다.

 

책을 덮으면서 들었던 느낌.


'개인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나 군주는 백성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 한목숨 살자고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가서 요동으로 넘어갈 생각에 급급했던 선조앞에서 신하된 자의 도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하고 진관체제의 복귀를 역설하고 대동법의 모태가 된 수미법을 실시하고............하지만 영의정과 체찰사로서 왜란을 정면으로 돌파한 유성룡에게 돌아온 왕의 조치는 '삭탈관직'이었다. 한마디로 토사구팽 당한 것이다. 유성룡 본인이 왕의 신임을 얻거나 공신의 반열에 오르는 것에 얼마나 연연해 했을지는 모르나 적어도 명예와 자존심까지 짓밟아 버리는 상대 붕당의 태도에 동조한 군주의 행동으로 인한 상처는 자못 심각했을 것이다.


유성룡의 실각과 이순신의 노량해전 전사날이 일치한다는 사실이 참 묘한 여운을 남긴다.


'유성룡, 이순신'

이들이 생각한 '대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들이 21세기 한반도에 환생한다면 현재의 국난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떠할까?

유성룡이 적극 추진하였던 수미법이나 속오군 체제등은 한결같이 양반의 기득권을 제한하고 서민중심의 경제, 군사 체제를 만들자는 게 핵심이다.


조선시대 양반들보다 더한 기득권 체제를 구축, 역사의 시계방향을 거꾸로 돌리려 하는 대한민국의 지배층들을 보며, 유성룡이 살아 돌아 온다면 그는 과연 어떤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제 한목숨 살기에 급급하고, 자신보다 민심을 더 얻는 신하들을 제거하기에 여념이 없는 군주 앞에서, 국난극복보다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가 더 우선인 양반들 앞에서, 원군이랍시고 밀고 들어와서 백성들을 강탈하는 명나라 군대앞에서 유성룡은 자신을 어떻게 버티어 나갔을까? 국보로 지정된 '징비록'에 담겨있는 왜란 극복의 기록들 하나 하나에 서려있는 그의 고독의 무게가 가슴을 짓누른다.


4백년을 넘어선 21세기의 오늘.

이땅 대한민국에 유성룡 같은 재상을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가슴을 저민다. 지난 10년동안 자신들이 빼앗겼다고 생각되는 고깃덩어리를 되찾자마자 대통령이란 자를 중심으로 함께 뜯어먹기에 정신없는 저 집단들속에 적어도 유성룡 같은 이 한사람만 있더라도 현재의 대한민국이 이렇게 흘러가지는 않을텐데...........


임진왜란이후 다시 정유재란, 그리고 종전과 함께 찾아든 이순신의 전사소식, 유성룡의 실각.

 임진년이후 다시 정유재란을 맞이한 저들처럼 IMF를 치뤘던 대한민국 역시 조선시대의 역사를 되풀이 하며 정녕 국란의 한복판으로 휘말려 드는 것인가?


2009년 대한민국의 희망은 과연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


많은 이들에게 이순신을 발탁하고 여러차례 정치적 위기에서 그를 엄호해준 든든한 후원자로서만 기억되는 유성룡의 구체적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이 책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