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승리의 의미
민주당 지지층의 ‘합리적 배신’ 그것이 승인이다
(서프라이즈 / 서영석 / 2010-05-13)
유시민이 이겼다. 감격적인 승리다. 터무니없이 불리한 여건 속에서 일궈낸 승리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사실 8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로 나섰을 때보다 더 불리한 조건 속에서 단일화 경선을 맞이했다. 한나라당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신생의 국민참여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통야당 민주당에 터무니없이 유리하게 합의된 방식에 따라 단일화 경선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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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경기도지사 단일 후보로 선정된 국민참여당 유시민(왼쪽에서 2번째) 후보가 민주당 손학규(왼쪽) 전 대표와 김진표 후보의 축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
공칭 30만 당원의 민주당과 8천여 명에 불과한 당원의 국민참여당을 놓고, 사실상 동원이 가능한 이른바 국민참여경선에서 유시민이 이긴다는 건 솔직히 기적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단 며칠 만에 수십억을 모으는 가공스런 ‘유시민 펀드’의 힘도, 수십만을 동원하는 조직의 힘을 당하기에는 역부족인 게 상식이었다.
8년 전의 감격을 일궈냈던 국민참여경선도, 지난 대선 직전 정동영의 ‘묻지마 동원’을 거침으로써, 아무리 좋은 방식도 ‘동원’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리의 뇌리에 선명히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역시 동원의 힘은 무서웠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단일화 결과를 봐도 국민참여방식의 경선에서는 유시민이 김진표에 패했다. 1만 5천 명의 국민참여경선 선거인단 투표 결과는 김진표가 상당히 앞섰다. 김진표 6,980표(52.07%), 유시민 6,424표(47.93%)란 결과를 얼핏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양자대결에서 4%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는 건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결과는 사실상 유시민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양당의 동원능력은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동원을 가능케 한 이번 국민참여경선에서는 유시민이 20% 정도, 김진표가 80% 정도 나와야 정상이었다.
물론 유명한 정동영의 대선 경선 멘트 (이해찬에게 “당신도 동원하지 않았느냐”고 했던)처럼, 유시민의 ‘유빠부대’도 동원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인증이 돼야만 가능한 전화 혹은 인터넷을 통한 경선 참여방식은, 유시민 측의 자발적 동원이 김진표 측의 조직적 동원의 힘을 이길 수 없도록 하고 있었다. 결국, 이번 결과는 민주당의 조직적 동원에도 불구하고, 그 동원된 경선인단의 다수가 “김문수를 이기려면 김진표보다는 유시민이 낫다”는 대세를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포인트다.
여론조사 방식도 사실 웃기는 방식이었다. 정상적인 여론조사라면, 이렇게 설문해야 마땅했다. “유시민과 김진표 가운데, 한나라당 김문수 도지사를 이기려면 어느 후보가 더 적합한가”라고. 야권의 단일후보를 결정하는 데는 이런 방식의 설문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문은 김문수를 놓고 유시민과 김진표를 대입시켜, 각기 지지율을 묻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국민경선 결과와 합산하는 복잡한 수순을 강요했던 셈이다.
왜 그랬을까. 유시민 대 김진표의 경쟁력을 묻는 것보다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김문수와의 개별경쟁력을 묻는 방식이 민주당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단일후보가 된다면 유시민이나 김진표나 상관없다는 사람들을 겨냥했던 것이다.
민주당, 엄밀히 얘기하면 어떻게든 유시민을 배제하고 싶어했던 민주당 일부 지도부의 의도는 어느 정도 적중했다. 합산한 결과가 초박빙이었다는 게 그 증명이다. 유시민은 합산한 성적표 점수가 50.48점이었다. 김진표는 49.52점이었다. 불과 0.96점 차이로 유시민은 승리했다. 결국, 민주당이 동원한 국민경선 선거인단 가운데 최소한 3분의 1 이상이 김진표 대신 유시민을 선택한 ‘합리적 배신’이 없었다면 유시민은 대패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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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일 경기 수원 경기도문화의 전당에서 민주당-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단일후보로 선출된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가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 뉴시스 |
민주당 경선인단의 이 ‘합리적 배신’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민주당 지지층의 ‘합리적 배신’은 곧 단일후보 유시민이 단일후보 김진표보다도 상대당 지지층의 흡수율이 더 크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대저 단일화가 의미 있으려면, 지지층의 승복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겠는가. 단일후보를 뽑는데 민주당 지지층의 3분의 1 이상이 유시민을 지지한다면, 김문수와의 대결에서는 민주당 지지층의 90% 이상이 유시민을 지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일 단일부호 김진표였다면 ‘유시민 펀드’를 일궈낸 열렬 지지층의 외면을 불러왔을 게 뻔하다. 이 열렬 지지층은 단순히 경기도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 열렬 지지층은 전국적으로 반한나라당 후보군의 약세를 가져왔을 것이다. 이 지지층은 대략 전체 유권자의 ‘10~15%’ 정도가 된다는 게 정설이다. 유시민이 이번 경선에 패배했더라면, 그래서 이 열렬 지지층이 이번 선거를 외면한다면, 6월2일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광역선거는 사실 민주당 전멸의 결과로 나왔을 게 뻔했다. 유시민이 지면 한명숙도 지고 송영길도 졌을 것이다. 뿐인가? 유시민이 졌더라면 김정길도 지고 김두관도 지고 안희정도 졌을 것이다.
민주당과 참여당의 단일화에서 유시민이 이겼다는 것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민주당은 너무나 유약하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더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우리는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의 그 ‘독기’를 기억한다. 야당은 합리보다는, 정서에 더 의존하는 바가 크다. 국정의 주도권은 어차피 여당이 쥐고 있기 때문에 정책대결에서는 지극히 불리하다. 결국, 야당에는 투사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권의 그 혹독한 철권통치에 과감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상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유시민의 강인함은 한명숙과 송영길의 유약함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극언한다면, 단일후보 유시민이 설사 김문수에 패배한다 하더라도, 이 바람은 한명숙에게, 송영길에게, 김정길에게, 김두관에게, 안희정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번 결과는 그러한 가능성을 열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민주당 지도부의 어이없는 고집이 결국 유시민에게 박빙의 승리, 감격의 승리를 안김으로써, 노무현 대통령 이후 우리 사회에 존재해 있는 열렬 개혁세력들의 ‘준동’을 불러일으켰으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여하튼 한명숙과 송영길, 김정길과 김두관, 안희정은 결과적으로 유시민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유시민 개인에게도 이번 승리는 의미가 깊다. 유시민의 약점은 이른바 ‘호남의 비토’였다. 즉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유시민 비토’는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토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유시민은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을 물려받았으나, 그 비토마저 함께 물려받았다. “우리 덕에 대통령이 됐으면서 우릴 박대했다”는 다소 터무니없는 이 ‘정서’는 수구언론과 호남지역 ‘토호 언론’ 탓이긴 하나,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지지율을 떨어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심으로써, 이 비토는 없어졌으나, 실상 이것은 유시민에게 이전된 것에 불과했다.
비록 경기도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 민주당이 선택한 김진표를 외면하고 유시민을 선택했다는 것은 유시민의 이 같은 약점이 서서히 희석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어차피 유시민이 경기도지사로 끝날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앞으로 3년 후 박근혜와 대적할 강력한 카드 가운데 하나인 유시민이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를 통해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흡수한다는 것은 그만큼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자, 그렇다면 단일후보 유시민은 과연 김문수를 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번 단일화에서 채택한 터무니 없는 방식의 여론조사를 보면 확실히 청신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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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일 오전 경기도 수원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6.2 지방선거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실천 협약식에 참가한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들이 정책선거를 약속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보신당 심상정, 민주당 김진표, 한나라당 김문수, 국민참여당 유시민, 민주노동당 안동섭 예비후보 ⓒ 연합뉴스 |
한국리서치 결과를 보면 김문수 44.7%, 유시민 39.1%로 나왔다. 차이는 5.6%포인트다. 동서리서치 결과는 김문수 45.9%, 유시민 39.7%였다. 차이는 6.3%포인트다. 단일후보로 상정한 여론조사였지만, 실제 단일후보가 된 뒤에 같은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하면 최소한 2~3%의 승수효과는 나온다. 즉 김문수와 유시민의 현재 차이는 3~4%밖에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때 김문수가 60~70%의 지지율을 보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약진이다.
작년 10월28일 치러진 수원 장안의 재보선 결과는 유시민 대 김문수 간의 대결결과에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이명박 지지율이 50%에 달하는 상황 속에서, 사전 여론조사에서는 최대 20% 이상 차이가 났던 속에서 치러졌던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무려 6.5%포인트 차이로 대승한 바 있다.
물론 앞으로 남은 선거기간 동안 여러 가지 변수, 수많은 지뢰가 널려 있다. 지금 단계에서 결과를 예단하기란 정말 어렵다. 천안함을 어떻게 이용해먹을지 알 수는 없다. 물론 지금은 대략 그 효험이 떨어져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보통제를 통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여권이다.
또한, 증권시장에서 나도는 루머처럼 선거일 직전 이명박 대통령이 수십억 배럴의 유전을 획득하는 ‘쾌거’를 보여줘 또다시 유권자들을 혼란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지난번 원전 수주 ‘사기’가 통했으니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장악한 방송과 수구언론들을 동원하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오판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일주기도 큰 변수다. 냄비가 다시 끓어오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을 상대로 ‘촛불 반성’을 하지 않는다고 호통친 것도 역풍으로 변할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유시민의 단일화 승리는 이 판에 ‘메가톤급’ 바람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여권이 머리를 쥐어짜 내 잔머리를 굴려봐도, 결정적인 순간에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한 전례가 많이 있다는 게, 현재 야당에게 불리하기 짝이 없이 전개되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덧붙임
이번 단일화에 손학규가 많은 역할을 했다는 게 숨어 있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수원 장안의 재보선에서도 손학규의 역할이 컸었다.
경기도 지사를 역임했던 손학규의 영향력은 최소한 경기도에서는 어느 정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손학규가 열심히 도운다면 유시민이 승리할 가능성은 조금이라도 더 높아진다. 손학규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출신이란 게 결정적 약점이었다. 하지만, 정동영이 대선 패배 이후 ‘작은 이득’에 팔려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데 반해 손학규는 마음을 비움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조금씩 마련하고 있다.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한명숙이 등장하면서 정동영은 거의 소멸의 길을 걷고 있는데 반해 손학규의 지지율은 6~8%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손학규의 재기 가능성도 주목된다. 사실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한명숙, 유시민, 손학규가 의미 있는 지지율 마지노선인 5% 이상을 기록하면서 나란히 달린다는 건 다음 대선에서 야당의 승리가능성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 또 덧붙임
유시민에 관한 책 쓴다고 두문불출 중인 상태지만, 이번 건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써봤습니다. 현재 책 진척도는 여전히 70% 선에서 헤매고 있는 중(T_T)
서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