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이 넘는 기억이다. 노무현 국회의원 사무실이었다. 거기서 잘 생긴 청년을 처음 만난다. 이름을 대면서 공손히 인사를 한다. 인상이 참 좋다. 헌데 어디선가 본 얼굴 같다. 어디서 보았을까.
기억을 더듬었다. 저 젊은이를 어디서 보았을까. 순간 내 기억은 껑충 세월을 뛰어넘어 30여 년 전 대학시절로 돌아간다. 다시 청년의 얼굴을 뜯어봤다. 청년이 면구스러운 표정이다. 난 확신했다.
“맞아. 틀림없어! 자네 부친 함자가 이러저러한가.”
“아니 어떻게.”
“허허 이제 자네를 자식처럼 이름을 부르겠네.”
그가 바로 지금의 천호선이다. 그의 부친은 나와 대학의 같은 과 동기동창이다. 모두 서울토박이인 우리는 늘 함께 어울렸다. 잘 생긴 그 친구는 나를 따라 음악 감상실에도 같이 다녔고 문인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렇게 절친했던 그는 사업가로 성공했고 나는 방송작가로 살았다. 그리고 30년이 넘어 그의 아들이 준수한 청년이 되어 노무현 후원회장인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 후 천호선은 노무현 의원의 비서가 되고 노무현 의원의 주례로 결혼을 하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청와대 대변인이 된다.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며 학생운동을 하던 천호선은 대기업의 노동자로 노동운동을 하다가 구속도 되고 대학에서도 민주화 운동을 해 부모의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 40이 훌쩍 넘은 천호선은 지금도 나에게는 ‘호선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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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선이는 국민참여당의 서울시당 위원장이다. 이번에 은평을 보선에 출마를 한다고 예비등록을 했다. 이재오가 나온다는 은평을이다.
출마를 한다고 전화가 왔다. 내가 물었다. 열심히 성실하게 하라고. 그리고 누가 후원회장을 하느냐고 물었다. 아직이라고 한다. 내가 해 주면 어떠냐고 했다. 반색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을 했는데 너무 힘드실 것 같아서 말을 못했단다. 내가 하겠다고 자원했다.
나는 정치인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15년여를 후원회장 노릇을 했다. 국민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아픔을 주고 떠난 노무현 대통령. 밤마다 그의 사진을 보며 눈물짓는 늙은이는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지만 가슴은 항상 죄인이다.
강원도지사로 당선된 이광재 지사의 후원회장을 한다. 부천시장으로 당선된 김만수의 후원회장도 한다. 사람들은 혹시 정치인 후원회장이 내 직업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다.
내 직업은 ‘5분 드라마 김삿갓 북한방랑기’를 10여 년 쓴 방송작가이며 우리나라 최고의 정론 정치포탈 ‘서프라이즈’의 회장이며 이명박 정권을 가장 냉정하게 비판하는 칼럼니스트다.
왜 나는 이들의 후원회장을 했는가. 이들이 성공을 하면 그 덕에 벼슬이나 하고 호강을 하기 위해서인가. 남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던 그건 아니다. 남들이 대단한 권력이라도 가진 줄 아는 대통령 후원회장을 했지만 벼슬 한자리 안 했고 남들이 권해도 능력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거절했다.
천호선의 경우는 어떤가. 아무리 친구의 아들이라고 해도 국회의원이 되겠다면 객관적인 평가가 우선이다. 나의 기준이 중요하다.
과연 천호선은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있는가. 따져봤다. 제대로 훈련은 되어 있는가. 총명하다. 청년 시절에 소외된 사람들과 고통도 함께했다. 노동자와 함께 공장에서 일하면서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했다. 인간은 늘 배우며 성장한다.
천호선은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를 배웠다. 의전비서관을 하면서 세계의 지도자들을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안목을 키웠다. 홍보수석과 대변인을 하면서 소통을 배웠다. 모시던 대통령의 비극적 삶을 지켜보았다. 천호선은 국민을 대변할 자격이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 많은 후보들이 후원회장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거절했다. 왜 거절을 했을까. 내가 판단하는 기준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당선이 최우선의 목표다. 그걸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당선만이 최고의 선일까.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던질 각오와 준비는 되어 있는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는 무엇인가. 얼마나 정직한가. 목적을 위해서는 무슨 거짓말이든지 태연하게 하는 인간은 아닌가. 타인과의 소통은 제대로 할 줄 아는가.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용기는 있는가.
너무 까다로운 조건이라고 할지 모르나 적어도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감수해야 할 잣대라고 생각한다.
내게 후원회장을 부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회장이라는 내 이름을 빌리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앞에 제시한 조건에 맞지 않으면 사양했다.
이 같은 조건에 천호선이 부합된다고 믿기에 나는 스스로 후원회장이 되겠다고 자청을 한 것이다. 거절을 당하지 않아 참 다행이다. 호선이에게 나는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번 실시되는 은평을의 재보선은 단순한 국회의원 한 명을 뽑는 그런 선거가 아니다. 국민이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는 심판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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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가 누군가.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정권의 실세다. 그토록 많은 국민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의 전도사다. 국회부의장에게도 질문을 제대로 하라는 대단한 권익위원장이다. 은평을 출마한다고 사표를 냈다.
7.28 선거는 작은 총선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은평을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지역이다. 이재오가 낙선을 하면 정권심판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뭐라고 변명할 여지조차 사라진다. 그래서 야권은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게 국민의 염원이라고 믿는다.
한나라당은 이재오 하나뿐인데 야권은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참으로 인물이 넘쳐흐르는 모양이다. 민주당은 두 명의 최고위원까지 출사표를 던졌다. 외부인사 영입도 추진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큰 떡이다.
민노당도 후보가 나온다. 여성후보도 두 명이나 된다. 이들이 모두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냥 힘들게 운동할 게 뭐 있나. 그냥 이재오에게 헌납하면 된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연합을 해서 단일후보로 이재오를 눌러야 한다는 것이 민주진영의 한결같은 결의다. 단일화만 되면 당연히 이긴다. 전문가들이 여러모로 분석을 한 결과다. 어떤 방법으로 연합을 할는지는 모른다. 반드시 해야 된다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민주당이 걱정이다. 6.2지방선거는 민주당이 잘나서 승리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민주당 지도층이 뜻밖에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솔직하게 가감 없이 말한다면 민주당의 최대 지원자는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불통과 일방독주 반민주적 정치운영. 이런 것들이 민주당으로 하여금 서울에서 21곳이나 되는 구청장을 당선시켰다.
6·2선거의 특징은 노무현 정신의 구현을 약속한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독하게 비난하던 인물들도 노무현의 그늘을 찾아들었고 당선됐다. 사람들이 노무현 계파라고 확실하게 못 박은 김두관 안희정 이광재가 도지사에 당선되고 청와대 수석을 지낸 차성수 금천구청장과 대변인출신의 김만수는 부천시장에 당선됐다.
이번에 은평을에 출사표를 던진 천호선도 노무현의 최측근이다. 누구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을 최지근에서 학습한 인물이다.
그가 청와대 대변인 시절 입맛 까다로운 기자들과 원만한 사이였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것은 바로 소통의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의 증명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소신이 분명한 천호선을 나는 좋아한다. 흐트러짐 없는 그의 바른 자세를 나는 좋아한다. 이 정도면 내가 왜 천호선의 후원회장을 자청했는지 설명되지 않았을까.
그는 은평을 선거에 정정당당하게 임할 것이다. 야권 연합을 위해서도 역시 바르게 처신할 것이다.
나도 명예를 건다. 비록 정치인의 후원회장이 명예직은 아닐지라도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회장이었음을 자랑으로 알고 살아왔다.
명예가 훼손되는 행동은 절대로 거부할 것이다.
2010년 7월 3일
이 기 명(전 노무현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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