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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장의 전시행정과 공무원의 무비판적 사업 순응

김포대두 정왕룡 2010. 8. 24. 11:02

   

‘그 후 인공펌프 시설은 어떻게 되었을까?’
광복절날 문수산 산림욕장 계곡을 오르면서 작년 12월 행정사무감사가 떠올랐다.

 

시민들에게 김포의 명산을 꼽으라면 한결같이 손꼽는 게 문수산일 것이다. 그만큼 문수산은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역사성, 지리적, 문화적 상징성으로 시민들의 가슴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문수산 하면 문수산성을 빼놓을 수 없다.


갑곶진과 함께 강화의 입구를 지키던 조선시대의 성이다. 조선 숙종 20년(1694)에 돌을 이용해 쌓은 석축산성으로 순조 12년(1812)에 고쳐 쌓았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병자호란을 치른 후 축성된 시기적 특성을 보니 아마도 도성방어의 전략적 중요성을 염두에 둔 듯싶다. 산성에는 보통 산성마을이 있다. 절을 두어 승군을 양성하기도 한다. 이래야만 안정적 방어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문수산성은 산성마을 형성에 실패한 듯싶다. 그 이유를  따져보니 물 부족 때문이라는 해설이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문수산 계곡에 물을 흐르게 하자는 야심찬 계획이 민선 4기 때 추진되었다. 지하수를 뽑아 올려 이 물을 계곡에 안정적으로 흘려보내 시민들의 쾌적한 휴식공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김포시청 홈페이지 공원녹화사업소에 지금도 올라 있는 내용을 보자. 월곶면 성동리 문수산 일대 220미터 구간에 ‘계류시설’을 정비한다고 되어있다. ‘계류’라는 말은 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을 말한다. 연이어 기대되는 효과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보자.

 

<아름다운 산림휴양림을 조성하여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면서 산림욕을 즐길 수 있으며 물놀이 공간을 아름다운 조경이 가미되어 주변 산림과 어울리는 공간으로 재탄생>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2010년 예산확정 후 자세한 내용을 기재하겠습니다.> 고 되어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그 후 진행결과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예산확정 후 자세한 내용 기재’라고 언급한 부분은 아마도 예산규모가 확정되어야 사업집행 내역에 대한 산출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된다. 하지만 이 기록은 2010년 8월 현 시점에도 그대로 올라 있다. 이유가 짐작된다. 작년 말 시의회에서 예산이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시의회 홈페이지 의정소식란 관련 기록으로 가보자.
2009년 12월 행정감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장시찰 목록에 문수산 계류시설이 올라와 있었다. 당시의 내용을 기록한 의정소식란을 그대로 옮겨보자.

 

<이어서 사전 승인 없이 조성한 조각공원 인공폭포 및 문수산 계류시설 지하수 수질문제로 인한 시설물 변색에 관해, 불법 부당하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집행기관 관계 공무원을 질타하고, 계류시설 세척과 같은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최초 계획안 입안시 지하수 철분 함유량 과다 문제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용역사에서 전문연구 결과 문제없다는 답변이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인공펌프 등 관련시설작업이 진행되고 드디어 계곡에 물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 바위들이 빨갛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주민들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 시청에서 사람을 동원하여 빨간 바위를 닦아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행감에서 공원녹화 사업소를 대상으로 이 사안에 대해 질문을 했다.
“당초 예측이 빗나갔다. 시범추출 할 때는 별문제가 없었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게 담당 소장의 답변이었다. “용역결과가 빗나갔다면 용역사에 책임을 물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당초 사업제안시 주민들의 찬성요구가 많았다는 재답변에 “가급적 사람의 손길을 안대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시대의 흐름이 아니냐”고 반문했던 일이 떠오른다. 의원들은 그곳을 현장답사한 후 관련예산 2억 4,200만원 전액을 삭감했다. 이미 들어간 예산까지 합한다면 4억 가까운 규모로 기억된다.

 

8개월이 지난 시점에 다시 찾은 현장은 전날 비가 쏟아진 관계로 계곡에 물이 불어나 있었다. 계곡 여기저기에서 비교적 많은 피서객들이 가족단위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계류시설의 출발지라 할 수 있는 지하수를 뽑아 올리는 인공펌프 설치장소에 가까이 오자 궁금증이 일었다. 올 봄에 왔을 때에는 시설가동이 중단된 채 그대로였는데 지금은 변화가 있을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현장은 그대로였다. 불어난 계곡물로 인해 바위의 빨간 녹이 다소 엷어졌을 뿐 주변의 산림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삭막한 인공 시설물 그대로였다.

 

   
“아빠, 무슨 로봇 같아”
동행한 딸아이가 펌프 시설물을 보며 한마디 툭 던진다.

어제 내린 폭우로 인해 계곡에 쉬지 않고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들이 시원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작년에 지하수로 인해 빨갛게 변색된 바위들은 그날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꼭 물이 흘러야만 계곡다운 계곡일까?
이렇게 우기에 쏟아지는 물줄기를 새롭게 느끼는 것도 문수산 계곡이 건천이기 때문에 맛보는 독특한 효과가 아닐까? 만에 하나 철분함유량이 적다하더라도 굳이 수억원의 돈을 들여 물을 흐르게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 유지비는 또 어떻게 감당할 건가?

 

그간 내부에 잠복되어 있던 질문들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인공 어항’으로 전락한 채 매년 수십억의 혈세를 잡아먹는 청계천이 떠오른다. 시장이 전시행정에 집착한 결과다. 담당 공무원들이 시장의 지시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한 결과다. 아예 사업이 최초 시작될 때 제동을 걸지 못하고 중도에 개입을 한 의회의 책임도 크다 할 것이다.

 

문수산 계류시설은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흉물스런 모습으로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 족쇄를 민선 5기가 풀어줘야 한다. 지금처럼 어정쩡한 모습으로 남아 있느니 눈을 질끈 감고 철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니면 대표적 예산낭비의 상징으로 후세들에게 산교육을 시킬 의도라면 시청 홈페이지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바꿔야 한다.

 

‘예산확정 후 자세한 내용 기재’가 아니라 ‘예산낭비의 사례로 중단된 채 교훈을 삼고자 잔존시설 전시중’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