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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담장을 허물다-대화(2)-

김포대두 정왕룡 2010. 8. 10. 07:33

비너스 아줌마가 건네준 사과를 먹고, 고흐 아저씨에게 사이다를 마시게 하고, 자유의 여신상에 주먹한방 먹이고…….

 

누리야.
지난주에 엄마와 함께 갔던 트릭아트 전시회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구나.
네가 인터넷 까페에 오른 소개 글을 읽고 엄마 아빠에게 제안했을 때만해도 아빠는 ‘이게 뭐꼬?’ 라는 생각이 전부였단다.  다만 롯데월드 데려가기로 한 약속대신 네가 역제안한 탓에 아빠는 마지못해 따라갈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입장권 끊는데 한 시간, 행사장에 입장하는데 거의 비슷한 시간을 또 들이면서 짜증이 밀려오더구나. 그러면서도 도대체 비싼 입장료 주고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궁금증이 일기도 했구…….

 

그런데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아빠는 그 궁금증이 풀리더구나.
전시회 이름을 왜 ‘트릭 아트’라 했는지 이해도 되었구.

디지털 영상체험이나 착시효과를 이용한 마술의 세계, 아마존 체험 등 여러 상황을 설정한 내용들이 있었지만 아빠에게는 세계 명화들을 액자 바깥으로 끄집어낸 파격적 기획이 가장 인상적이었단다.

 

   

그곳에서 아빠는 고흐 아저씨의 머리붕대를 싸매주고  신윤복 아저씨 그림의 주인공, 그네 뛰는 아줌마를 한번 껴안아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엄마 눈치를 보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보기도 하고. 에펠탑 아래 주저앉아 지친 몸을 잠시 쉬기도 하고. 누리는 아직 힘이 남아있는지 에펠탑을 오르려 하더구나.

 

누리는 수학교사가 되어 아빠를 손들게 하고 벌주는 장면에서 기분이 어떻던?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주는 수학과목의 선생으로 어른을 혼내주는 기분이 궁금했단다.
재미있는 것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린 꼬마들이 수학교실 앞에서는 학생배역을 맡아 무릎 꿇고 벌서는 장면을 연출하더구나. 아이들에게 교실은 여전히 행복을 꿈꾸는 곳이 아니라 벌 받는 경쟁사회의 한 단면으로 연상이 되는 것 같더구나.

 

원작의 비너스 아줌마는 양 손이 없다보니 원래의 모양이 어땠을까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거 아니? 그런데 그 아줌마가 한손으로는 가슴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 먹다 남은 사과를 정답게 내미니 아빠가 그것을 안 받아먹을 수 있겠니?

   

아빠는 자유의 여신상에게 주먹한방 먹이고 횃불에 음료수를 부어넣을 때 왠지 기분이 통쾌하더라. 아직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들만의 자유, 팍스 아메리카나의 수렁에 빠져있는 것에 대한 반감이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 같더구나.

누리는 엄마와 함께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그림에 올라타 할아버지 상투를 만질 때의 기분이 어땠니? 아빠 어린 시절엔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풍경이었는데 지금은 그림에서나 회상하는 장면이 되었으니 세상변화의 속도가 참 빠르구나.

 

누리야.
미술관하면 무슨 이미지가 떠오르니?
숨소리도 내면 안 될 정도로 조용히 해야 하는 곳, 사진 찍으면 안 되는 곳, 어려운 전시작품들 앞에서 왠지 주눅 들어야 작가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듯한 곳, 그 앞에서 웃거나 떠드는 등 감정 표현을 하면 눈치 보이는 곳, 그리고 어쩐지 교양 있어 보이는 사람들만 드나드는 곳. 그러다보니 장소 또한 그러한 사람들이 잘 갈 수 있는 지역에 자리 잡은 곳. 난해한 작품 앞에서 내용을 몰라도 고개를 갸우뚱하면 안 되는 곳.

이게 아빠의 머릿속에 인식된 미술관의 이미지였단다.


한마디로 고상함속의 엄숙주의 그 자체였지. 미술관은 공간속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참 머나먼 곳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트릭아트의 전시회는 아빠가 갖고 있던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깨뜨려버린 신선한 기획 프로그램이었구나. 한결같이 전시물들은 그림의 액자바깥으로 빠져나와서 사람들과 손을 잡으려 하더구나. 이런 상황에서 관람객이 구경꾼에 머물다보면 그림은 완성이 안 되는 거지. 너도나도 그림 속에 뛰어들어 소통을 시도하고 그림의 한 장면이 되니 비로소  그림들은 숨을 쉬고 활력이 넘치더구나. 이 순간 그림과 현실의 세계는 구분이 없어지고 하나가 되어버렸구…….

 

이것이 두 시간 이상 기다려 사람들이 줄지어 입장하고 특히나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나들이 행렬이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고……. 카메라는 필수 소품이 된 이유이기도 하고…….

 

아빠는 그날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을 보면서 소통과 참여가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단다. 어찌 보면 가장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미술 전시 프로그램에서 이러한 흐름을 꿰뚫어 보고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큐레이터의 안목이 돋보이더구나.

 

미켈란젤로, 밀레, 고흐, 앵그르, 보티첼리, 로댕…….
아빠는 고등학교 시절이후 거의 잊고 있던 미술의 거장들을 만나면서 잠시 감흥에 젖었단다. 고등학교 때 미술부 활동하면서 한때는 화가를 꿈꾸기도 했고 서양미술사 도록을 탐독하면서 그림에 담겨져 있던 화가들의 인생관 , 삶의 굴곡들을 들여다보기도 했던 일들이 떠오르더구나.

 

중세시대 종교의 엄숙주의에 반발하여 그리스 신화의 세계로 과감한 소통을 시도했던 르네상스기 화가들, 강렬한 붓 터치로 세상만물에 담겨있는 자연의 역동성을 캔버스에 담아냈던 고흐란 사나이.  당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농부들의 미천한 삶을 소재로 삼아 미술의 영역을 확장시켰던 밀레 등 청소년기에 아빠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화가들의 영상이 눈앞을 스쳐가더구나.

 

미술사 관련 책들을 읽다보면 하나의 흐름을 알 수 있단다. 화가들이 권위주의에 갇힌 기존의 형식과 틀을 깨트리면서 인간세계 속으로 예술의 영역을 옮겨오려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거지. 그들이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면 시간이 흐르면서 후세사람들은 다시 어떤 권위의 틀 속에 가두어 그들을 해석하려 하고 이에 다시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서 그 권위를 깨뜨리고. 그러면 그 위에 새로운 틀이 덧칠해지고……. 하긴 비단 예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우리네 인간사가 기존의 권위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이 거듭되면서 흘러온 역사의 물줄기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어려운 환경 탓에 미술학도의 꿈을 접어버렸던 아빠는 그와 함께 청소년기의 상상력도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더구나. 비록 모작인데다 원래의 틀을 깨버린 파격의 모습이었음에도 아빠는 고흐 아저씨에게 사이다를 먹이고 붕대를 감아주면서 그의 불행을 아파하고 그 아저씨의 동생과 나눈 편지내용을 떠올리기도 했단다. 밀레 아저씨의 만종 앞에서는 바르비종의 들녘을 떠올리고 그 너머로 이삭줍기 하는 여인네들을 생각하면서 삶의 고단함을 연상하기도 하고.......

 

그림들과 대화를 나누며 화가의 삶을 떠올리고 그들의 불행에 안쓰러워했는데 그러다보니  아빠 마음속의 아쉬움, 좌절, 회한 등이 잠시나마 씻기는 것이 느껴졌다면 누리는 아빠의 심정을 이해하겠니? 알고 봤더니 아빠는 그림을 들여다 본 게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아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구나. 그림을 보면서 화가를 생각한 게 아니라 화가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아빠의 삶을 생각하고 있었더구나.

 

누리야.
누리는 그 그림과 사진, 전시물들 속에서 무엇을 느꼈니?
전시장 안에서 누리 표정을 보니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더구나.  오히려 아빠가 더 호들갑을 떨었는지도 모르겠다. 누리 세대는 이러한 것들을 이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느낌의 한 영역으로 담담히 소화해내는 환경으로 진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빅뱅 콘서트 실황음악을 들으면서 아빠가 물은 적이 있지?
“왜 음악을 조용히 들으면 되지 굳이 소리를 지르면서 함께 뛰느냐.”고.
그때 누리가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아빠, 음악은 듣는 게 아니라 즐기면서 하나가 되는 거야.”

 

그래. 너희 세대는 마음껏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발산하렴. 그 속에서 자신의 끼를 분출하고 삶을 즐길 수 있다면 아빠는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염려되는 것은 아빠세대가 부딪혔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도전과제가 너희 세대 앞에 놓여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부디 이 과제 앞에서 좌절하지 말고 미술관 담장을 허물어뜨리듯 주변의 벽을 허물고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소통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오늘은 이만 줄이마.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