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야. 안녕? 다행히도(?) 아빠가 지난 선거에 실패하면서 비교적 한가해지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많아 그간 소홀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구나.
누리도 벌써 중학교 2학년.
누리와 첫 대화는 영화 이야기로 풀어야겠구나.
“그거 반공영화 아냐?”
“아빠, 반공영화라는 게 뭔데?” 그리고 누리가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온 다음에 첫마디는 이거였지?
음. 누리야……. 6.25 발발 60주년인 올해에 맞춰 개봉된 ‘포화 속으로’ 라는 영화는 이런 점에서 아빠에게는 ‘학도병’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어떻게 묘사했을지 조심스럽게 다가설 수밖에 없었단다. 다만 누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전쟁의 포화 속에 피어난 따뜻한 인간애의 표현이라는 말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영화관에 들어서게 되었지.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난 뒤 아빠의 마음은 허전했단다. 똑같은 영화를 보고난 뒤 누리와 아빠가 가졌던 느낌의 차이에 대해 굳이 어떤 게 옳다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구나. 하지만 누리가 크게 되면 이때를 회상하면서 왜 아빠가 이 영화를 보면서 씁쓸해 했는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이해의 폭을 넓히길 기대해본다.
소나무만 보면 숲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단다. 영화에 부분적으로 보이는 인간적 요소가 그 소나무에 해당되는 거지. 그럼 숲은 뭐냐고? 비록 예쁘게 포장하려 애썼지만 아빠의 눈에는 ‘반공, 냉전’이라는 숲으로 관객을 유도하려는 연출의도가 확연히 눈에 들어왔단다.
“아빠. 요즘 TV에 전쟁 드라마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 왜 그런 거지?”
누리야.
“ 반공이라는 게 무언데 아빠는 그렇게 문제를 삼는 거야?”
우리민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잔인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지혜는 ‘공존 공생의 해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포화 속으로’가 아닌 ‘평화 속으로’ 우리 남북민족이 함께 손 맞잡고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누리야. 벌써 8월이 되었구나. 8월은 우리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지 백년이 되는 때이기도 하고 나라를 되찾은 지 65주년이 되는 달이기도 하다. 이속에서 우리가 되돌아보아야 할 지혜는 7.4 남북공동성명, 6.15 남북정상회담, 10.4 남북정상 합의문에 이미 충실히 담겨져 있단다.
세계가 탈냉전 글로벌 시대로 접어든 지가 십년도 훌쩍 넘겼는데 지구상에 유일한 냉전분단 국가로 한반도가 남아있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란다. 이제 우리 한반도에도 하루빨리 평화시대가 정착되어 전쟁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때가 오길 바란다. 그것이 한쪽이 한쪽을 완전히 제압하거나 흡수하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증명될 대로 증명된 지금, 우리는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서로의 공통점을 확인, 확장시켜나가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구나.
역사라는 게 일직선모양으로 쭉 발전하는 게 아니라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지만 커다랗게 보면 강물처럼 희망의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흘러간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우리 누리가 성장하여 사회인이 되었을 때는 이미 한반도에 평화의 물결이 완전히 뿌리내리는 때가 되기를 아빠는 소망한다. 그래서 임진각 너머 도라산역에서 파리행 열차를 타고 누리와 함께 북녘 땅을 지나 만주벌판,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여행을 함께 하자꾸나. 아빠는 이 시대를 준비하는데 자그마한 벽돌 한 장을 얹을 수 있다면 그 이상의 행복이 없을 것 같구나.
오늘은 이만 줄이마. 안녕.
8월 첫날에 아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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