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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그 안에서 대한민국을 보다 -영화관람기<정누리>

김포대두 정왕룡 2014. 1. 10. 11:46

*변호인, 그 안에서 대한민국을 보다


요즘 대한민국은 무언가로 떠들썩하다. 송강호가 연기를 그렇게 잘한다느니, 임시완이 정말 연기자인줄 알았다느니…. 다들 이것에 대해 한 마디씩 툭툭 던지곤 한다. 언론이고, SNS고 말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변호인, 127분의 영화 한 편이 있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보고자 한 이유는 단지 ‘송강호’ 때문이었다. JSA 공동경비구역, 살인의 추억, 괴물부터 시작해서 설국열차, 관상까지…. 그가 출연한 작품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다 챙겨보기 마련이었다. 그만큼 이 배우에 대한 나의 기대는 엄청났고, 이번 변호인도 그런 의미에서 개봉 전부터 기다려지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변호인은 평소와는 좀 더 다른 의미의 영화였다. 송강호가 연기한 캐릭터는 대한민국의 한 역사를 쓴 실존 인물이었고, 아직도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리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이 영화를 기다렸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영화는 영화로만 보아야 한다. 그 안에 사회적 메시지가 들어가면 더 이상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주어야 하며, 그것으로 감동을 주어야만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예술이다. 도가니, 부러진 화살, 7번방의 선물 등등의 영화들이 그래왔고, 이런 작품들은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나는 변호인도 그런 의미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비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빨갱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온갖 고문과 압박을 당하는 진우(임시완)은 재판장에서 송변(송강호)의 변호하에 재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공정하고 깨끗해야하는 재판은 무조건 진실을 은폐하기 마련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자꾸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첫째는 눈 뜨고는 차마 보지 못 할 진우의 고문 장면 때문이었고, 둘째는 그것을 덮기만 하는 고위 관료들 때문이었고, 셋째는 그들의 말도 안 되는 논리에 반박을 못 하는 나 자신 때문이었다. 비록 영화지만 이 스토리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쓴 것이고, 또 현재도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송변의 거침없는 변호에 더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법을 알아야 한다. 법을 알아야 법과 싸울 수 있다. 영화를 보고 깨달은 한 부분이었다.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은 대사가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바위는 죽은 것이지만,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 데모 같은거 하면 천벌 받는다는 송변(송강호)의 말에 던진 진우(임시완)의 반박이었다. 그야말로 정문일침이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업적들은 살아있는 수많은 계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백인 정권을 넘어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가 그랬을 것이고, 8·15 광복까지 있었던 우리 민족의 끝없는 독립 투쟁이 그랬을 것이다. 전세계의 역사 속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사건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압축해낸 한 마디. 그것이 바로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가 아닐까 싶다.


이 변호인의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송 변호사(송강호)는 재판장에서 99명의 변호사를 뒤로 한 채 입에 미소를 머금는다. 카메라를 향해 웃는 그 모습은 왠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리고는 화면은 어두워지고, 영화는 막을 내렸다. 나는 이걸 보고 나서 감히 ‘재미있다’라는 평을 내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재미있기보단 분노와 안타까움이 일었다. 그것은 어떠한 정치적 사상을 떠나서 이 영화 자체가 주는 깊은 여운 때문이었으리라. 나를 포함한 몇몇 관객들은 영화가 끝났는데도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여운이 도통 가시지 않아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한 인물을 미화하지도 않았으며, 주관적인 정치사상을 내비치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실제 있었던 사건을 읊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런 점이 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보다 결말이 너무 미적지근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말을 딱 맺지 못 하고 너무 열린 결말로 끝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열린 결말일 수밖에 없다고. 이 이야기는 현재 지금도 쓰여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작품이 담은 시대와 아주 밀접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정부패, 언론탄압, 수많은 비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변호인을 보고나서 ‘정말 저 사람들 못 됐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뛰어 넘어서 현 대한민국의 현실에 주목해야한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계란이 되어야한다. 결국 이 열린 결말을 어떻게 끝맺느냐는 우리들의 몫이다.


영화가 천만관객을 향해 달리고 있는 지금, 나는 많은 사람들이 늦게라도 이것을 보았으면 한다. 분명 각자 느끼는 소감은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127분이라는 시간이 아깝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간으로써의 면모를 훌륭하게 보여준 배우들에게, 그리고 대한민국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어준 이 영화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