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고향마을이 있었네...- 남해 방문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꽃피는 봄이 무르익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 그중에서도 봄은 계절의 여왕답게 화사하기 그지없다.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에서나 흐드러지게 피고지는 봄꽃풍경 속에 자연스레 스며있는 한마디 말이 있다. 바로 ‘고향’이란 단어다. 고향과 봄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다. 왜 그럴까? 바로 ‘따뜻함’이 그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의 봄’ 노래가 우리네 정서속에 깊게 스며드는 것도 바로 이런 배경이 깔려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우리 아이들도 엄마 아빠처럼 고향의 봄 노래를 흥얼거리면 코끝이 시큰거릴까?’
이런 질문을 받게되면 선뜻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확신에 찬 대답이 안나온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가재잡던 이야기는 동화속 저너머로 사라져버리고 ‘고향의 봄’은 엄마 아빠 세대의 흘러간 노래로 치부되는 세상이 도래한 듯 싶다. 더 이상 ‘고향’이란 말 자체가 가져다 주는 아련한 향수와 뿌리의식, 정체감은 갈수록 엷어지는 세태가 짙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이제는 어딘가에 ‘고향 박물관’이 민속촌처럼 조성되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끊고 입장하면 ‘엄마 아빠 세대 어릴적엔....’이란 말로 시작되는 설명을 하며 해설사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풍경아닌 풍경도 그려진다.
‘여기 우리네 고향마을이 있었네’
지난주말 경남 남해군을 다녀왔다. 그곳을 둘러보며 떠오른 단상이다. 스쳐 지나듯이 휙 들러본 곳이지만 그 여운이 지금도 가시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고향이 바로 이런 풍경이었다’고 말하고 싶다면 주저없이 남해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곳은 지금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풍경 3가지가 없거나 찾아보기 힘들다. 공장, 아파트, 묘지 등이 그것이다. 수도권에서 너무 떨어진 오지라서 그런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이곳 역시 현대그룹등에서 대규모 개발제안을 했지만 당시 지방자치 행정당국이 심사숙고 끝에 완곡히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광양제철이 바로 인근에 있어 개발중심 지역발전론의 실체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지역이라 개발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이다.
남해를 둘러보면 시선이 참 편안하다. 아파트와 공장이 존재하지 않다보니 스카이라인이 자연과 그대로 일치한다. 인공 구조물은 자연이 그려놓은 선아래에서 겸손히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마을들은 그안에서 포근히 자리를 잡는다. 공원묘지는 물론이고 마을 뒷동산 명당마다 자리잡기 일쑤인 묘지들이 좀처럼 눈에 띠지 않는다. 지역 화장율 80프로라는 숫자가 말해주듯이 일찍부터 장례문화가 자리 잡았다. 문중묘역 등을 봉안당으로 옮기려 할 때 주민들의 반발이 대단했다한다. 그럼에도 수십차례 지역을 방문,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며 주민 공감대 형성을 이뤄낸 지역행정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남해는 고향마을의 풍경을 그대로 온전히 담아내고 유지하고 있다. 우리네 고향이 옛 모습을 잃어버리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뜸해지는데 반해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꾸준하다. 뿐만 아니라 외지인들이 편안히 정착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딴 까페를 열고 독일 마을엔 연일 방문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독일파견 광부, 간호사들이 귀국할 보금자리를 찾지못해 애를 태울 때 이들에게 장소를 제공해 준 곳이 바로 남해다. 이분들에게는 남해가 제2, 제3의 고향이다. 연간 찾아오는 수십만명의 방문객이 있고 이들과 독일 흑맥주를 나누며 담소를 나눌 수 있으니 외로움은 좀처럼 끼어들 틈이 없다.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겠다’는 말과 함께 일가족을 이끌고 탈북하여 남에 내려온 북한 의사 김만철씨가 정착한 곳도 바로 남해다.
남해하면 많은 사람들이 보리암을 떠올린다. 우리나라 3대 기도처 중의 하나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보리암이 있는 곳이 금산이다. 태조 이성계가 개국의 꿈을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금산에 오르면 남해바다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로 파도를 가르며 위풍당당 전진하는 충무공 이순신을 떠올려본다. 장군께서 생을 마감한 최후의 전장터가 남해군에 있는 노량리 앞바다였음을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않다. 그 또한 눈을 감으며 고향마을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구운몽의 저자로 유명한 서포 김만중이 이곳에 유배를 와서 집필한 한글소설이 ‘사씨남정기’이다. 그러고보니 남해는 수많은 스토리가 쌓여있는 곳이다. 바위, 풀, 나뭇가지 하나라도 툭 건드리면 그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이 와르르 쏟아질 듯 하다. 그러고보니 남해는 숱한 스토리들이 살아 숨쉬는 그들만의 고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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