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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벗이여, 순례하라! 찬탄하라!

김포대두 정왕룡 2006. 8. 19. 01:18
무릇 벗이여, 순례하라! 찬탄하라!
번호 1166   글쓴이 초모룽마   점수 246   등록일 2006년8월17일 00시03분 대문추천 0   포탈 1   정책 0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릴때, 사람들은 어디 시원한데 가고 싶어한다. 물 많은 데 가봐야 사람 반, 물 반이니 짜증이 더 붙는다. 더위도 피하고, 거리도 가깝고, 감동도 받고 덤으로 우리민족의 소중함 내지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일석삼조의 여행이 있다.



백제의 미소를 아시는가?

서산 가야산 자락 바위에 계신 세 명의 부처님 말씀이다. 여러분들은 그 분들을 뵈었는가? 인사드렸는가? 거기 바위에 새겨져서[마애] 천여 년 간 미소를 짓고 계신 세분의 부처님[삼존불]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신다. 와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라고, 기다리신다.

국보 84호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유홍준(현 문화재청장-좃선이 거품 무는 '코드'인사!)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때문에 유명해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곳을 물어물어 찾아가 보시라. 그리고 한번만 삼존불의 미소를 보시라. 그러면 왜 이토록 잊지 못해 이렇게 글을 남기는지 절로 알게 될 것이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이다. 유홍준을 흉내 내서, '보면 알게 된다, 그리고 기회 될 때마다 시간 날 때마다 또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날 때면 가급적이면 유홍준의 책을 들고, 그가 다녀갔던, 그리고 찬탄했던[고은은 말한다. "무릇 벗이여, 유홍준과 함께 국토를 순례하라, 찬탄하라"] 문화유산 답사를 흉내 내기 시작한 게 벌써 10여 년 전이다. 애들 교육에도 좋다지만 무엇보다 내 만족을 위해서다. 왠만해선 한번 읽었던 책은 다시 읽지 않는데 이 희대의 답사기는 3번 정도 읽은 것 같다. 가고자 하는 곳이 정해졌으면, 그 주변에 유홍준이 다녀간 유적이 없나 글을 읽어보곤 했으니, 훨씬 더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저 내셔널 베스트셀러에 실렸던 곳 중 불자도 아닌 필자가 유일하게 3번 찾아간 곳이 바로 서산마애삼존불, 하도 그 미소가 아름다워 '백제의 미소'('미스 백제'라고도 불린다)라 불리는 그 바위 부처님 밖에 없다. 3번이 결코 많다 할 수 없으나, 아직 유홍준이 돌아다 본 곳의 1/20도 다니지 못한 필자로서야 아주 많이 다녀간 셈이다.

왜인가? 삼존불의 생성 및 발견에 대한 역사적 사실 및 의의는 유홍준의 책(감히 대한민국이 자랑할만한 '넘버원' 교양서로 꼽고 싶다)에서 살펴보시면 될 것이고, 이것을 찾아가는 길과 삼존불을 뵈러 갈 때, 그리고 그분을 뵈었을 때의 느낌을 생각나는 대로 적는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서산에는 해미라는 '이쁜 이름'(유홍준의 말)을 가진 소읍이 있다. 읍내 한복판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해미읍성이 있다. 의외로 이 조그만 읍내 주변에는 볼 것이 많다. 개심사(너무나 조용하고 아름다운 절집으로 마애삼존불과 함께 반드시 가봐야 되는 곳), 수덕사(중창불사로 비까번쩍하나 '그래도 대웅전 하나는 볼만한'-유홍준), 추사고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살인미소 하나로 압도해 버리는 마애삼존불…….

일단 해미 IC를 나오면 개심사, 마애삼존불이라고 눈에 잘 보이게 씌어진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아름다운 길들이 이어지고 바야흐로 찻길이 저수지를 끼고 달리게 되면 마애삼존불에 가까워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길 잃을 염려가 없다. 마애삼존불 표지판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 쭉 외길을 가시라. 그러면, 너무나 어울리게도, 돈 받지 않는 아담한 주차장이 있다.

급히 올라 갈 필요 없다. 산속 바위에 있다 하니, 귀찮아하실 분 있으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걸어서 5분이면 도착이다. 더구나, 차갑도록 맑은 시냇물 위에 걸쳐진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역시 마애삼존불에 어울리는 아담하고도 소박한 돌계단을 만나게 된다. 숲은 맑은 산소를 내뿜는다. 시원하다. 오는 동안 쌓였을 법한 불만이 자연스레 없어진다. 제법 가파르다고 생각할 즈음이면 이미 도착해 있다. 먼저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물론 입장료는 없다. 

근데, 이 관리사무소를 무심코 지나치면 안 된다! 후회하게 된다. 여기에 계시는 분(공무원이다)한테 꼭 부탁해라. 안내 좀 부탁한다고, 그리고 "이거 보려고 일부러 서울서 왔는데……."를 꼭 강조하시라. 무뚝뚝한 공무원이지만 대개 2팀 이상이면 쪽수가 안차더라도 기다리는 사람 생각해서, 먼 길 온 사람 생각해서 안내해 준다.

따라 올라가시라. 곧 도착한다. 전각이다. 실망할 것이다. 햇빛을 차단하여 보호한답시고 설치한 전각이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의 모습을 가리고 있다(다행히, 곧 없앤다고 한다).그러나 그 안내원의 손을 주목하라. 전각 안에서 나무에 매단 등불을 들어 마애불을 비출 것이다.

그 등불 따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라. 판에 박은 듯한 설명은 두 귀로 흘려도 된다. 그 등불에 따라 마애불의 살인 미소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시라. 여기서는 말로 설명 못한다. 사진으로도 안 된다.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환하게 그 미소가 빛의 각도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 감탄이 나온다.

유적 답사에 흥미를 잃고 불국사 석가탑을 앞에 놓고도 고개 처박고 흙장난이나 하는 장난꾸러기 꼬마들도 백이면 백 그 미소(의 변화) 앞에서는 "와~"하고 감탄한다. 이것은 유홍준도 언급하지 않은 사실이다.

내려오시라. 더 이상 볼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아마 사람들은 그 미소를 본 사람하고 보지 않은 사람,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어떤 산악인이 말했다던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인수봉에 오른 사람과 오르지 않은 사람.] 그만큼 감동이다. 이것을 보자고 이 먼 곳까지(의외로 오지다) 왔냐고 투덜대던 사람도, 그 미소를 보고난 후 표정이 싹 바뀐다. 마음의 평화가 온다. 거짓말 아니다.

그런데 마애불을 보고도 별로인 듯한 표정의 사람들도 있다. 필시 안내를 받지 못해 등불에 따른 미소의 변화를 보지 못한 사람이다(그래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아직은 전각에 가려 햇빛이 들지 않으므로, 그 등불이 없으면 진짜 '미소'를 보지 못한다. 희미한 미소밖에 보지 못한다. 명심해야 한다. 그 공무원 아저씨한테 떼를 써서라도 꼭 안내를 받아야 한다.

△ 살인미소 : 등불에 비춰보는 것보다, 이렇게 햇빛에 노출되었을 때 더 아름답다. 햇빛의 각도가 변할 때마다 미소가 변한다. 필자가 찍어온 사진과 동영상도 많은데 전각에 덮여 화질도 안 좋고 흥미반감할까봐 올리지 않는다.


유홍준은 전각이 없을 때 태양에 노출되는 정도와 각도에 따라 그 변화되는 미소를 직접 봤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오전 10시경 미소를 그 중 제일로 쳤다. 우리도 곧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그 미소는 절대 잊지 못한다. 답사 갔다와서 어저께 본 것도 곧잘 잊어버리는 우리 아이들도 '그 미소' 얘기하면 1년, 2년이 지나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것도 유홍준이 언급하지 않은 사실이다.

꼭 강추하고 싶다. 거리도 멀지 않다. 또 영 섭섭하다면 개심사(유홍준도 그랬고 필자도 꼭 권하는, 유홍준 말대로 '아는 사람'만 오는 그 개심사-사람들은 대개 수덕사를 찾는다)를 들러 보시라. 거리로 채 30분이 안된다. 그리고 마애삼존불에서 걸어서 5분이 안되는 보원사지도 있다. 그 옛날 꽤 컸던, 전통을 가진 큰 절집이었다 한다. 역시 가볼만하다. 무더위가 짓누르는 이번 주말, 백제의 미소를 만나 보시길 권한다.

* 덧붙여 : 문화예술방에 처음 글을 올린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노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는다. 수구들이 거품 물 일인데, 수구들도 이 책은 읽어서인지 유홍준의 전문성과 문화재 사랑 앞에서는 그저 꼬리를 내린다. 그가 노짱과 임기를 같이하여, 자리에서 물러난 후 꼭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를 써주기를 바란다. 문화유산 답사에 관심을 갖게 해준 유홍준님께 감사드린다. 문화유산답사에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덤이다. 애국이 뭐 별건가? 이런 것 아녀, 수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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