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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동상(서울 광염교회 안수집사·52)씨는 지난 17일 아침 서울온천 인근 건물 공사현장에서 공사 중 발을 헛디뎌 난간에 매달린 동료를 구하려다가 5층 높이에서 추락,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습니다. 매달려 있던 동료는 이씨와 함께 추락했지만, 늑골에 금이 가는 비교적 가벼운 상처만 입고 기적적으로 살았습니다. 고인은 그동안 서울 광염교회 예수봉사단 단장으로서 15년간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형제처럼 돌보는 데 앞장섰습니다. 최근 활동으로는 7월 15일부터 2박 3일간 강원도 인제군 수해현장과 7월 29일부터 이틀간은 경기도 안성 수해지역에 출동해 250여 가정의 수재민을 위로하고 구호품을 전달하는 등 긴급 구호에 남다름을 보였습니다. 고인은 재난이 있는 곳이라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6월에는 지진으로 폐허가 된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지역에 들어가 의료봉사활동팀 일원으로 활동을 펼치는 등 국내외 재난 현장에 가장 빠르고 깊숙이 접근해 지원을 했습니다.
고인의 삶은 한마디로 봉사와 실천이었습니다. 항상 빨간 티셔츠에 노란 조끼를 입은 고인은 '봉사의 달인'이라고 불렸습니다. 고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매달 한 번씩은 봉사단을 이끌고 노원구, 도봉구 지역의 무의탁노인가정, 소년소녀가장가정을 찾아가 집을 수리해줬습니다. 이들 봉사단의 솜씨는 '러브 하우스'급입니다. 도배, 장판, 전기, 보일러, 도색, 싱크대 등 집 한 채를 완전히 탈바꿈시켜 놓습니다. 그 가운데 고인은 항상 겸손하고 묵묵하게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저와는 인연이 남다릅니다. 수마가 강원도를 할퀴고 간 지난 7월 15일 밤 고인은 5톤 탑차를 이끌고 끊어진 31번 국도를 더듬으며 재난 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저는 다른 차를 타고 현장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과 쏟아지는 장대비로 더는 접근이 어려워지자 일행은 어쩔 수 없이 홍천에 숙소를 마련했습니다. 당시 고인은 저와 같은 방을 쓰게 됐는데, 굳이 당신께서 바닥에서 주무신다며 침대를 양보했습니다. 이튿날도 인제면 하추리에서 같은 방을 쓰면서 베풀어 준 작은 배려들이 이제야 조각조각 큰마음으로 다가옵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2박 3일간 수해현장에서 함께 보람을 나눴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자 깊은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17일 저녁 고인의 빈소를 찾았습니다. 찾지 않으면 슬픔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마침 교회 성도들이 나와서 저녁문상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 묻혀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는 가운데 또 한 번 슬픔이 북받쳤습니다. 고인의 온기와 음성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숨죽여 울었습니다. 볼로 번지는 슬픔이 쉬 마르지 않았습니다. 서울의 북쪽 끝 어느 공사현장에서 의로운 한 사람이 의로운 일을 행하다 땅 위에서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처럼 의를 실천하고 세상을 떠난 고 이동상 안수집사의 삶이 고귀합니다. 고인에게 하늘의 상급과 영광이, 유족에겐 위로를 간절히 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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