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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 그리고 미국을 떠올리다 -광성보에서(1)-

김포대두 정왕룡 2006. 8. 22. 21:47
신미양요, 그리고 미국을 떠올리다 -광성보에서(1)-

 

정왕룡 시민기자 kd6010@hanmail.net

 

   
‘그때의 미국과 지금의 미국은 어떻게 다를까?’
광성보 입구, 안해루 성문앞에 섰을 때 스쳐지나간 생각이었습니다.
태풍이 멀어져간 주말오후, 김포와 강화사이를 흐르는 염하의 물결은 거침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염하의 물결위로 사라져간 135년전 350여 생명의 원혼들이 오늘도  묻고있는 도전적인 질문은 광성보를 찾은 후인의 마음을 무겁게만 합니다.

 

“왜 이 부근에 오면 괜시리 울고 싶어지는 걸까?”
광성보에 처음오는 아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전생에 조선군이었나 보지?”
역시 무심코 던진 대답이었지만 여운이 길게 남아 주변을 맴돕니다.

강화섬 곳곳이 역사 유적지인지라 어느 곳에 발길을 들여 놓아도 옛 선인들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지만 광성보는 그 중에서도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미국’이란 나라와 맞서 싸운 신미양요 최대 격전지가 바로 광성보이기 때문입니다.

대원군 집권기 한복판이었던 1871년, 미해군 로저스 제독이 이끌던 아시아 함대가 강화해협, 즉 염하에 들어섰습니다. 해안선 수로탐측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조선측의 허가없이 영해안에 무장군함이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명백한 주권침해 행위였습니다. 더구나 염하일대는 조선의 안보와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수로였기 때문에 이곳을 내주는 일은 곧바로 수도를 내주는 것과 별 다를바 없을 정도로 여겨져 조선 조정의 입장은 그 어느때 보다 단호했습니다.

 

일찍이  ‘함포외교’, 즉 군함을 동원한 무력시위로 일본에 대한 문호개방을 성사시켰던 미국에게  극동의 반도나라는 이교도가 거주하는 야만국가에 불과했습니다. 5년전 대동강 기슭에서 일어났던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자체는 자신들의 경제적 침략목적을 달성하려는 구실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해 6월 1일 손돌목 해역에 들어선 미 군함 선발대에게 김포방면의 덕포진과 강화방면의  남장대에서 일제히 포격이 가해집니다. 이른바 ‘손돌목 포격사건’이라 불리는 이 접전이 우리민족과 미국사이에서 벌어진 최초의 군사적 충돌이었습니다. 미국은 평화적 탐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함정에 조선군이 군사적 도발을 했다며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지만 주권침해를 내세운 조선측에 의해 거부당했습니다. 급기야 미국함포가 6월 10일 초지진을 향해 불을 내뿜고 연이어 미해병의 상륙작전이 전개됩니다. 이곳을 초토화시킨 미군은 그 다음날 덕진진을 점령하고 연이어 이곳 광성보를 향해 수륙 양방면에서 공격을 개시, 무력점령하기에 이릅니다. 어재연이 이끄는 600여명의 조선수비병은 화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혈전을 벌이다 350여명의 전사자를 냅니다.

 

미해병은 광성보위에 걸려있던 황포깃발을 전리품으로 수거하고 대신 성조기를 내겁니다.
하지만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조선군의 예상치 못한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던 미군은 조선무력개항을 단념하고 7월 3일 함대를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김포와 강화를 사이에 두고 염하일대에서 벌어진 이 사건들을 우리는 한데 묶어 ‘신미양요’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광성돈대에 들어섰습니다. 원형으로 축조된 성벽에 올라서니 구비치는 염하의 물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로 덕포진을 비롯한 김포의 해안선이 바라다 보입니다. 현재의 광성보는 초기 축조당시와는 달리 광성돈대, 손돌목 돈대, 용두돈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진’이나 ‘보’의 하부단위로서 최전방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 돈대입니다. 당연히 전투가 벌어지면 가장먼저 적과 부딪히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강화도 곳곳에 있는 돈대는 대부분이 원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곳곳마다 대포나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이 나있고 그 방향은 대부분 바다를 향하고 있습니다.
 
광성돈대에는 홍이포, 소포, 불랑기라고 불리는 좀 더 작은 소형포등 3문의 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병인 신미양요 당시엔 이러한 포가 우리가 갖고있는 최신형 포였지만 근대식 화기로 무장한 서양의 화포를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가장 사거리가 길었던 홍이포의 포탄은 날아가 명중한다 하더라도 충격만 주었지 터지지 않는 것이었기에 그리 위력적이지 못했습니다.

주말임에도 그리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단위 나들이를 나온 일행들이 곳곳에서 눈에 띱니다. 요란한 피서보다 조용한 산책길에서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며 가족간의 시간을 나눌 요량으로 이곳을 찾지 않았나 상상을 해봅니다. 잘 가꾸어진 산책로 사이 사이로 염하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줍니다.

너무도 평화로운 정경임에도 전쟁이란 단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곳, 그 위에 겹쳐지는 미국이란 나라의 침략적 이미지는 광성보를 찾는 이들에게 매번 번민의 숙제를 안겨줍니다.
단지 과거의 일로만 치부해 버리기에는 우리의 삶속에 현재 너무도 깊숙히 들어와 있는 존재가 미국이라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美國, 尾國, 米國 ’
미국이란 나라를 가리키는 다양한 한자어 표기에 담겨있는 복잡한 시각이 하루빨리 평화로운 이미지로 세계인의 마음속에 통일되어 자리잡길 빌어봅니다. 그 첫단추는 당연히 미국 자신이 풀어야 할 몫일 것입니다.

광성보 언덕 아래를 흐르는 염하의 물결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입력 : 2006년 08월 22일 19:52:11 / 수정 : 2006년 08월 22일 19: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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