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람들은 토론을 좋아한다. 친구들과 만나서
맥주 한 잔을 앞에 놓고 두 세 시간씩 토론하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는 처음 인사를 나눈 자리에서도 토론을 벌이는 것을 예의로 알고 있다.
그러니 텔레비전의 황금시간대에 토론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집과 승부욕만이 판을 치는 말꼬리 잡기 토론회
실망 독일인들의 높은 정치의식과 참여정신이 생활화된 토론문화에서
나온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듯 80년대 이후 청문회나 심야토론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청문회에서의 날카로운 추궁과 토론에서의 순발력 있는 대응으로 인기를 끈 스타들이 개혁을 표방하는 현 정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나도 심야토론의 애청자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지난 번 대선과 탄핵사태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토론에 귀를 기울였고,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펴는 수구 꼴통들을 나 같으면 이런 명쾌한 논리로 한방에 날려버릴 텐데, 하고 아쉬워하곤 하였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토론 프로그램이 시들해져서 예전처럼 찾아서 보지 않게 되었다. 우선 토론에 의해 뭔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진 탓이고, 토론
자체가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말싸움 이상이 아니라는 느낌 때문이다. 논리나 상식보다는 아집과 승부욕만이 판을 치는 말꼬리 잡기 토론은,
상대방이 공을 잡으면 무조건 거친 태클로 쓰러뜨리는 축구 경기를 보는 것처럼 재미가 없다.
경험에 따르면 노사협상이나 등록금
협의회는 물론이고, 무슨 설명회, 간담회, 총회 같은 데서도 미리 결론은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다반사다.
이의가 제기되지 않고 넘어가거나 상대방의 주장을 제압해서 이쪽 주장을 관철시키면 주최측은 성공이고 승리라고 흐뭇해한다.
토론을
논리적 설득과정으로 보지 않고 승부로 보는 까닭에 토론자들은 제한된 발언시간을 넘겨서라도 상대방보다 더 많은 발언을 하려고 기를 쓴다. 공의
점유시간을 늘리면 그만큼 득점기회가 많아진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나는 토론이나 회의에서 고위직이나 힘 있는 사람은 발언 시간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같은 발언시간을 책정해도 결국은 힘 있는 사람은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여 자기 주장을 펴기 마련인데,
그래야 상대방을 제압하고 설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승부 아닌 타협을 위해 따지고보면 토론의 궁극적 목적은 승부나 설득이 아니라 타협이라고 할 수 있다. 명쾌한 논리적 설파나 재치있는
논박은 시청자나 방청객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책임 있는 정책결정권자나 고위 관리는 ‘어, 그 사람 똑똑하고 말 잘 하네‘ 라는
평가보다는 ’아, 저렇게 남의 말을 경청하는 걸 보니 겸손하고 성실한 믿을 만한 사람이구나‘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심야토론에 출연한다고 한다. 일방적인 자기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기를 기대한다. 특히 한미 FTA
협상을 불한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자신이 없어요?’라는 질책보다는 ‘아, 그렇게 힘드신줄
몰랐습니다’라는 위로의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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