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계절 가을에 인문학 위기론이 다시 제기됐다. 5년 주기다. 1996년 전국 국공립대 인문대학장들이 제주에서 ‘인문학 제주선언’을 했고, 2001년 전국 국공립대 인문대학협의회에서 인문학 기반의 붕괴를 우려하는 ‘2001 인문학 선언’을 발표했다. 5년이 지난 올해 9월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이 ‘인문학 선언’을 한데 이어, 9월 마지막주에 침체에 빠진 인문학의 부흥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인문주간’행사가 열렸고 그 개막식에서 전국 인문대학장단이 다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인문대학과 인문학자의 위기 아닌가? 인문학 위기론이 제기됐지만 인문학이 왜, 누구에게, 어떻게 위기인지 그 진단은 다양하다. 현상적으로는 인문학과 지원자가 급감하고, 교양과목이 축소되고, 인문대 졸업생들의 취업이 어려운 상황, 그리고 인문학 분야의 박사학위 수여자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점을 위기로 꼽고 있다. 인문대학장들은 정부의 재정지원 부족을 지적했고, 양심적인 인문학 교수와 비판적 재야지식인들은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기득권과 구태에 안주하는 인문학자, 구체적으로 인문대학교수들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설득력이 있는 위기진단은 급변하는 세상에서 인문학 또는 인문학자들이 사회적 의제를 제시하는 능력을 상실했고, 사회와 함께 호흡하려는 노력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복되는 인문학 위기론의 근본을 살펴보면, 인문학 자체의 위기라기보다는 한국의 인문대학의 위기이며, 대학의 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취업난과 청년실업의 문제는 비단 인문대학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일본의 대학 진학률이 49.1%이고 미국이 63.3%인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81.3%에 달한다. 청년실업자는 곧 대졸실업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이다. 얼마 전까지는 이공계 위기론이 제기됐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인문학 전공자와 이공계 전공자가 부족해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넘쳐서 위기다. 이공계를 예로 들면 OECD 국가 평균 이공계 전공학생 비율은 25.8%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41.6%에 달하고 있다. 결국 이공계 위기, 인문학 위기론이 제기된 핵심 원인은 80년대 대학정원 증대 조치로 대학과 대학생이 너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조금 혹독하게 말하면, 칠판과 분필만 있으면 돈 안들이고 증설할 수 있는 게 인문학과였고, 공급과잉이었던 인문학과들을 비롯해 지원자가 부족한 학과는 물론 대학들까지도 구조조정의 과정에 있는 것이 현실의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의 압력을 받고 있는 인문대학들이 그 대응책으로 최소전공인원 보장이나 인문학의 진흥을 위한 국가적 투자 증대 등의 수세적 주장만을 계속 내세울 경우 인문학을 살리는 길은 매우 요원해 보인다. 또한 인문학이야말로 창의성이 중요한 지식정보사회에 적합한 전공이며 막말로 돈이 된다는 일부의 주장이나, 학문이 시장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고고한, 그러나 일부는 여전히 과거에 안주하는 태도 또한 진정한 인문학 부흥의 길은 아니라고 본다.
시대와 삶의 위기, 인문학이 답변 내놓아야 인문학이 살 길은 인문학의 정수로서 급변하는 현실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과 아젠다를 제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문학만이 위기가 아니라 대학이 위기이고, 시대가 위기이고, 삶이 위기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고 즐겁기 위해 존재하지만, 현실의 삶은 전쟁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밖으로는 세계화와 지식기반 사회의 도래, 중국과 인도의 급부상, 불안한 한반도 주변정세, 안으로는 양극화와 실업의 문제, 경쟁의 격화와 상시적인 고용불안, 급속한 고령사회의 진전 등 다양하고 많은 문제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IMF를 겪고 아직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데 IMF문학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직업의 전환주기가 평균 5년 수준이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가 진전되고 있으나 직업의 가치와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가에 대한 철학적 답변은 너무도 부족하다. 인터넷 확산과 디지털 기술의 혁명적 발달, 배아줄기세포 논쟁을 비롯해 생명공학과 우주론, 양자역학 등 과학기술분야의 폭발적인 지식증가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인문학계는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경제주의가 과도한 우위를 차지할수록,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대다수 인간의 삶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 초라해지고, 왜소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인문학계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가 더욱 열리고 있다. 다만, 인문학계의 과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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