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끼 마사오, 일그러진 그의 이름 앞에서. -광성보에서(5)-
“미군과 이곳에서 싸우다 전사한 장군의 이름이 뭐지?”
“이순신 장군요!. ”
“으이구, 이순신이 아니라 어재연 장군이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 했어?”
광성보 끝자락 용두돈대로 가는 길에 염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매섭습니다. 태권도장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사범 선생님이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 한토막이 귀에 들려옵니다.
언젠가 건너편 덕포진 손돌무덤을 찾았을 때, 현장에 있던 학생들에게 한참 설명을 하시던 선생님이 마무리를 하시며 아이들과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누가 쳐들어 와서 임금님이 피난갔다구?”
“일본요!”
“이 녀석들아, 일본이 아니라 몽고군이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 했는데 또 일본이야?”
아이들에겐 구국의 영웅하면 이순신이요, 침략자 하면 일본인가 봅니다. 그만큼 우리 역사에 일본이 가져다 준 아픈 흔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육지에서는 끝자락이지만 염하에서 보면 제일 처음 맞닿게 되는 곳, 마치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용두돈대라 이름지은 곳. 광성보 지역의 최전선 전초기지 역할을 한 곳이라 그런지 여기에서 염하를 바라보는 심정이 자못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강화도야 말로 민족시련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용두돈대 한복판에 건립된 ‘전적지 정화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문구를 따라 읽어 내려가니 강화도와 민족사의 시련이 교차되면서 마음속이 숙연해집니다.
몽고군, 후금군사의 침략은 물론이고 근대들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거친 후 ,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을 기점으로 일제침략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비분강개의 감정이 문장 곳곳에 넘쳐납니다. 하지만 그 다음 문구에 난데없이 등장하는 ‘박정희’라는 이름에 씁쓸함이 밀려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강화의 전적지를 돌아보시고 여기는 우리민족의 ‘자주정신’과 호국의 기상을 이어받는 국민교육의 정신적 도장이 될 곳이라 정성들여 복원정화 하라는 ‘분부’를 내리시므로....>
일본육사 출신 장교, ‘다가끼 마사오’로 앞장서 창씨개명하고 일본국왕에게 혈서로 충성을 다짐했던 사람이 바로 박정희 입니다. 해방직후 남로당 간부로 활약하다 여순반란 사건당시동료를 밀고하고 사형의 위기에서 벗어나 운좋게 군에 복귀하여 쿠데타로 집권한 자가 바로 박정희 입니다.
일본과 미국의 침략 현장에서, 일본군 장교출신으로 반민족 행위를 일삼은 그가 ‘자주정신’을 기리라는 ‘분부’를 내렸다는 게 광성보 진지 복원의 기원이라니 허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봉건왕조 시대나 어울림직한 ‘분부’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박정희 미화의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가 보았더니 ‘이은상’이라는 낯익은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시조의 거목이자 수많은 가곡의 작사자로 기억되는 노산 이은상이 박정희의 예찬론자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일의 현장에서 친일파 장교의 이름을 ‘분부’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겹쳐 표현 한 것은 ‘실수중의 실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철학의 빈곤’일지 ‘일신의 영달을 꾀함’일지 그 원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당대 지식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이은상 뿐만 아니라 주변 곳곳에서 목격하게 됩니다.
‘이완용선생은 역사상 가장 억울한 누명을 썼다’
월간조선 대표였던 조갑제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의 제목입니다. 현재 보수우익 진영의 정신적 지도역할을 맡고있는 조갑제씨는 이글에서 한일합방의 불가피성을 언급하면서 ‘굴욕’을 감수하면서도 ‘많은 것을 얻어온 이완용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는 망언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그는 을사오적이 한일합방을 통해 '얻어온 많은 것'의 구체적 예로 "일본 예산의 십분의 1을 한반도에 투입하고 일본과 똑같은 교육 똑같은 행정과 제도를 시행하게 했다"면서 "이완용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근대화를 일본의 열차의 한칸에 얻어타 조선을 개화시키길 원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섰음에도 반민족 행위가 청산되기는커녕, 이제는 이완용을 ‘선생’이라 호칭하며 ‘매국’을 ‘애국’으로 둔갑시키는 궤변이 버젓이 판치는 상황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학계에서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을사오적이 애국자로 미화되는 현실에 참담함이 밀려옵니다.
‘친일 매국노’
누가 써놓았는지 박정희 찬양이 서술되어 있는 윗면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해방 60년이 넘었건만 반외세 구국의 혼을 일깨워야 할 역사의 현장에서 ‘자주’의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다까기 마사오, 박정희에 대한 예찬론을 마주하는 기분이 썩 편치 않습니다.
아직도 우리안의 일제 청산은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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