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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아름다운 이름이여! -안면도에서(2)-

김포대두 정왕룡 2006. 11. 7. 13:36
가족, 그 아름다운 이름이여! -안면도에서(2)-

 

정왕룡 시민기자 kd6010@hanmail.net

 

   

저녁노을은 사람을 바깥으로 끌어내는 마력이 있나봅니다.
해변가에 몰려나온 사람들의 시선은 수평선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엷어지기는커녕 수평선과 경주를 하듯 점점 짙어가는 구름띠가 원망스럽기만 한 표정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양은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감췄다 하며 숨바꼭질하듯 애간장을 녹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구름이 사람들과 태양의 만남을 시샘하는 듯 장벽을 둘러친 모양새입니다.

 

수평선 아래로 낙하하기 전에 마지막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는 태양은 ‘오늘만 날이 아닌데 그만 좀 피곤하게 하지말라’며 조용한 헤어짐을 원하는 모습입니다. ‘오늘이 당장 지구최후의 날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 떨지 말고 그저 평소 하던대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점잖게 훈계하는 듯 좀처럼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던 태양이 사람들의 모습이 안스러운지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기 전 잠시 머리를 쑤욱 내밀었습니다. 바로 그순간 바다,하늘 할것없이 주변세계가 온통 주홍빛 천지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때까지 체념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너나 가리지 않고 백사장으로 뛰어나가고, 여기저기서 사진기를 꺼내듭니다.

   
유치원을 갓 들어갔음직한 어떤 아이가 아빠와 함께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백사장 모래가 아이에게는 아직 힘에 겨운 듯 아빠곁에 서있는 모습이 조금은 벅차 보입니다. 그래도 아빠는 든든한 벽인가봅니다. 밀려오는 바닷물을 바라보는 모습이 제법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아빠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며 파도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아이아빠는 무슨 말을 해주기보다 그냥 아이와 함께 물끄러미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서 이미 유년기 감정을 상실해버린 아빠보다 , 아직 그것을 듬뿍  갖고 있는 아이가 저녁노을 풍경에 대해 아빠에게 전해줄 말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이 순간만은 아이가 아빠의 선생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로 보이는 한쌍의 남녀가 해변가 계단에 앉아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노을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평선에 짙게 깔려있는 핑크빛 색채에 사랑의 감정을 섞어 담아가려는 듯, 앉은 모습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입으로 나누는 대화보다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가 훨씬 더 정감이 있는지 그냥 아무말 없이 두손을 꼬옥 잡고 바다를 응시합니다.

   
‘백일이 갓 지났을까?’
젊은 부부가 아기를 보듬고 백사장으로 내려오더니 수평선을 향해 번쩍들어 올립니다. 햇님이 자러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뿜어내는 행복의 기운을, 몽땅이라도 아이에게 안겨주고 싶은 표정입니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아기, 그 아기를 들어올린 채 활짝 웃는 엄마, 그 장면을 사진기에 담아내기에 바쁜 젊은 아빠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합니다.

 

   
“아빠, 이게 뭐야?”
딸아이가 백사장에서 무엇을 주운 채 달려오며 물어봅니다. 놀이용도로 쓰인 듯, 철사로 만들어진 하트장식품 입니다. 그중 하나를 받아든 아이엄마가 하늘의 구름을 담아보자며 공중을 향해 팔을 뻗자 아이도 함께 따라합니다.

 

“이번에는 태양을 담아볼거야”
구름의 크기가 일정치 않아 어려움을 느꼈는지 딸아이가 관심의 소재를 수평선 쪽으로 가져갑니다.
“아빠ㅡ, 빨리 사진찍어. 태양이 내 하트안에 들어왔어. 내가 햇님을 잡았단 말야.”
아이의 소리에 눈을 가져가보니 석류알이라도 열린 듯 하트 안쪽이 온통 빨갛습니다.

   
“이건 어때?”
이번에는 아이엄마가 나서더니 하트 두개를 약간 엇갈리게 겹쳐서 태양을 담아봅니다. 그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태양의 모습이 참 편안해 보입니다.  완전히 하나로 일치하는 것보다 서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공통영역을 가꾸어나가는 사랑이, 진정한 것임을 가르쳐 주려는 듯  햇님은 겹쳐진 하트안에서 잔잔히 웃고 있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백사장 곳곳에서  우리뿐만 아니라 여러 ‘가족’들이 연출가, 주연배우, 액스트러등 배역을 서로 서로 바꿔가면서 석양이 만들어놓은 무대를 배경삼아 축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당신도 가족이 있나요?’
순식간에 해변가 백사장을 온통 가족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버린 마법사 햇님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더니 수평선 가까이 구름에 안겨 그냥 빙그레 웃습니다. 구름도, 하늘도, 바다도, 대지도, 백사장도 이 모두가 자신의 벗이요 가족인 것을 아직도 모르느냐는 투입니다. 핏줄에만 얽매여 제 울타리를 굳건히 쳐놓고, 이웃과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는 인간세계의 협소함을 점잖게 꾸짖고 있는 듯 합니다. 아니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안면도 해변 가족축제의 참여자들마저 가족이라는 품으로 넉넉히 끌어안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듯 합니다.

‘우리가 햇님을 보고 있는 걸까? 햇님이 우리를 보고 있는 걸까?’
하트안에 자리잡은 햇님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한가지 질문이 머리를 스칩니다.
저녁노을 지는 안면도 해변가는 자연과 인간이 한 가족으로 합쳐진 잔치마당이었습니다.

 

입력 : 2006년 11월 07일 09:56:26 / 수정 : 2006년 11월 07일 09: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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