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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 -안면도에서(1)-

김포대두 정왕룡 2006. 10. 29. 18:30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 -안면도에서(1)-

 

정왕룡 시민기자 kd6010@hanmail.net

 

   
‘누워쉬는 서해의 섬들사이로 해가질 때
눈앞이 아득해 오는 밤
해 지는 풍경으론 상처받지 않으리
별빛에 눈이 부셔 기댈 곳 찾아 서성이다
서성이다 떠나는 나의 그림자 ’

 

안치환의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 노랫말을 읇조리며 노을지는 안면도 해변가에 섰습니다. 밀물의 최대치 시간인지 발밑까지 밀고 들어 온 바닷물이 발가락을 간지럽힙니다.
오랜만에 나온 가족 나들이에 딸아이와 엄마는 그저 좋은가 봅니다. 도착하자마자 조개줍기에 빠져든 딸아이를 바라보며 포근한 미소를 짓는 아이엄마의 모습이 평온해 보입니다.

 

군대시절을 동해안에서 파도를 벗삼아 보냈던 저에게, 서해는 한동안 다가서기 낯선 존재였습니다. 모름지기 바다하면 푸른물결 흰파도를 연상하며 웅장함과 씩씩함을 뽐내는 존재로 인식된 저에게 서해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러던 서해가 언젠가부터 동해와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갯벌속에 숨쉬는 수많은 생명들의 소리가 느껴졌습니다. 조금만 발을 들여놓아도 위압적인 자세로 사람의 접근을 경계하는 동해안과 달리  다가서려는 사람, 멀어지려는 사람, 그 누구하나 꺼려함 없이 그저 넉넉히 웃고 있을 따름입니다.

서해는 해안선이 따로 없습니다. 다만 쉬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밀물과 썰물의 흐름이 있을 뿐입니다.

 

  언젠가부터 인간세계에 소유개념이 등장하면서 사람이 사는 곳이면  그 어디나 수많은 경계선이 그어졌습니다.  힘의 변동에 따라 경계선은 수시로 변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초래되었습니다. 경계선은 뭇사람들에게 이쪽 편과 저쪽편중에 어느 편에 속할 것인지 끊임없이 물어봅니다. 중간지대는 기회주의 영역으로 치부되어 버릴 뿐입니다. 소유와 편가르기에 익숙한 인간세계에 서해바다는 그러한 모습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깨우쳐 주는 선생과도 같습니다. 밀물과 썰물의 끊임없는 움직임속에 변화무쌍한 해안선을 바라보며, 인간세계에 익숙한 경계선이 자연세계에선 따로 필요 없다는 가르침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해돋이의 웅장함만 최고로 여기던 저에게 해진 뒤에도 기다랗게 남아있는 석양의 여운은 ‘삶의 의미’를 다시 들여다보게 해주었습니다. ‘해지는 풍경으론 상처받지 않겠다’던 안치환의 노랫말이 가슴 저미도록 와닿은 것도 서해를 새로이 발견하지 않았다면 느낄수 없었던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동해가 남성적이라면 서해는 포근한 어머니의 품과 같다’
그래도 바다하면 정동진을 비롯한 동해안 바닷가를 최고로 여기는 아이엄마에게 늘상 해주는 ‘서해예찬론’의 한 대목입니다.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달려나온 안면도 해변가는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은 사람들이 듬성듬성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곧 전개될 석양의 아름다움을 기다리는 모습들입니다. 아기를 업고나온 젊은 부부들, 두손을 맞잡은 연인들,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등 다양한 연령층이 섞여있는데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해변가로 내려오십니다.

 

다른 젊은 사람들이 수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감상에 젖고 있을 때 이 분들은 곧바로 백사장에 내려가더니 여기저기 조개찾기에 몰두하십니다. 석양은 예전에 볼만큼 봤기 때문에 식상하다는 듯 감상 따위는 걷어치우고, 몸으로 부딪히는 ‘체험 삶의 현장’이 최고라고 여기시는 듯 합니다. 그분들에게도 어찌 젊은 날, 감상의 자락이 없겠습니까마는 인생의 황혼기에 바라보는 석양의 쓸쓸함은 그리 반가운 대상이 아닌 듯, 애써 외면하고픈 심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굳이 1박 2일의 짧은 가족여행이라는 이름아래 안면도에 철새처럼 하룻밤 둥지를 틀었지만 기다리던 오랜 벗을 만난 것처럼 서해는 그렇게 포근하게 안아줍니다.

 

입력 : 2006년 10월 25일 11:45:31 / 수정 : 2006년 10월 25일 11: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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