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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손’ 앞에 서서 -호미곶에서(2)-

김포대두 정왕룡 2007. 1. 15. 17:10
‘상생의 손’ 앞에 서서 -호미곶에서(2)-

 

정왕룡 시민기자 kd6010@hanmail.net

 

   
‘저 손들은 절망의 상징일까? 희망의 상징일까?’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사람의 눈길을 끄는 게 ‘상생의 손’입니다.
이 조형물 앞에 섰을 때 처음 밀려든 생각은 바다위로 ‘솟구치는 희망’의 형상인지 아니면 그 아래로 ‘가라앉는 절망의 형상’인지 그 손들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청동거인이 땅속이나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전, 마지막으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형상이라면 그것은 모든 희망이 사그라드는 절망의 상징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호미곶의 지형적 특징을 생각한다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안겨주는 모습이 일반적 현상일 것입니다. 특히 새아침에 손가락 사이로 해가 떠오를 때면 마치 손안에서 태양이 품어져 나오는 형상을 연출하여 뭇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고 합니다.

 

‘상생과 희망은 어떤 관계일까? 차라리 희망의 손이라고 명명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상생’이라는 명칭을 떠올리며 스쳐지나간 생각입니다. 해돋이 현장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새로운 희망이 불타오르는 생동감 넘치는 현장의 상징물에 ‘상생’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인 제작진의 의도가 궁금해졌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사회에 희망을 심는 작업은 상생의 정신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화해와 관용’을 전제로 하는 이 말을 현실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사회의 희망은 멀기만 하다는 뜻이 이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새천년을 맞이할 준비에 바쁘던 1999년 말,  희망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제작하여 설치된 이 조형물은 바다위에 오른 손, 육지에 왼손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입니다. 밀레니엄 새천년을 맞이하여 ‘상생’이라는 말을 갖다 붙였지만 2007년을 맞닥뜨린 지금, 우리의 현실에 이 말을 적용해보면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남북화해는 커녕 지역주의 장벽 앞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하고 있지 못하는 이땅의 상황은  ‘상생’이란 말의 존재여부를 의심케 하기 때문입니다.

 

단어의 생성은 문화의 반영이라고 합니다. 상생이라는 말이 여전히 우리사회의 화두가 되고있는 것은 상대에 대한 부정과 다툼의 혼란에서 헤어 나오고 있지 못한 현실의 반영일 것입니다. 입으로는 저마다 상생을 외치면서도 상대를 짓밟고 올라서려는 부정의 논리가 판치는 상황에서 그 본래의 뜻이 굴절, 훼손되어 껍데기만 남은 상태는 아닌지 반성해 볼일입니다.

   
육지에 설치된 왼손 앞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불꽃이 세군데 지점에서 타오르고 있습니다. 1999년 12월 31일 변산반도와 2000년 1월 1일 독도및 남태평양의 피지섬, 그리고 이곳 호미곶등의 햇빛으로 채화된 불꽃들입니다. 반면에 바다에 설치된 오른손에는 아무런 설치조형물이 없습니다. 그저 푸른파도와 갈매기들이 오갈 뿐입니다. 하지만 바다의 손에는 자연이 만들어놓은 손금들이 무수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가다 손가락 끝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갈매기들이 뿌려놓은 배설물 자국이 빚어놓은 자연의 형상입니다. 지금도 역시 갈매기 두 마리가 손 끝에 앉아 이곳을 바라다 보고 있습니다.

 

문득 ‘새는 좌우의 양날개로 난다’ 는 말이 떠오릅니다.
왼쪽날개 오른쪽 날개가 각각 서로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해 줄때만 새는 비상할 수 있다는 뜻일 겁니다. 해맞이 광장 육지편에 왼손을 설치해놓고 바다 한복판에 오른손을 마주보게 설치해 놓은 뜻도 ‘손뼉도 마주쳐야만 소리가 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르쳐주기 위함인지도 모릅니다.

 

해방이후 분단과 전쟁을 거쳐오면서 극심한 이념대립의 터널을 거쳐 온 우리 사회에 오른편과 왼편이라는 단어는 조화의 의미보다 대립과 분열의 이미지가 강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북쪽에서는 오른편이라는 단어는 ‘반동’을 상징하는 말이었던 반면 남쪽에서는 왼편이라는 말이 ‘빨갱이’라는 단어로 덧칠해져 터부시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말로만 외치는 상생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실재적인 상생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호미곶 상생의 손들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그 어느 한쪽만으로는 상생의 지혜를 담아낼 수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입력 : 2007년 01월 12일 16:17:17 / 수정 : 2007년 01월 12일 16: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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