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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그 외로움 앞에서...- 호미곶에서(3)

김포대두 정왕룡 2007. 1. 17. 13:19
등대지기, 그 외로움 앞에서...- 호미곶에서(3)

 

정왕룡 시민기자 kd6010@hanmail.net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파도 모으는 작은 섬.....’

어렸을 때 애창곡으로 많이 불렀던 ‘등대지기’ 노래를 호미곶 등대앞에 서서 불러보았습니다.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하여 1908년에 완공하였다는 ‘호미곶 등대’는 철근을 사용안하고 벽돌로만 건축한 독특한 양식입니다. 내부에는 각층 천장마다 대한제국 황실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 합니다. 출입이 금지되어 들어가 볼 수 없는게 무척이나 아쉬움을 남겨줍니다.

 

 ‘1901년 인근 대보리 앞바다에 일본선박이 암초에 부딪혀 좌초한 사건을 계기로 건립되었다’는 기록을 보면서 등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도 ‘1901년’ 이라는 연대와 ‘일본선박’이라는 말이 뒤엉키면서 뒷맛이 개운치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청일전쟁이 종료된 후 일본의 세상이 되는가 싶었는데 청나라 대신에 한반도에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나라가 바로 러시아입니다. 이 러시아와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이 일어나기까지 한반도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 시기가 바로 이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대한해협을 통과하여 동해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호미곶 해안은 일반선박의 항로뿐 아니라 군사전략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러일전쟁당시 대한해협에서 일본함대에 패한 러시아 발틱함대가 울릉도 인근까지 쫓겨갔다 동해상에서 최후를 맞이한 기억을 떠올려 보면 호미곶 등대 건립시기의 민감성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등대가 완공된 1908년은  대한제국이 침몰 일보직전에 있던 시기입니다. 건축당시 내부천장에 대한제국의 황실문양을 새겨넣던 제작자는 어떤 심정에 잠겼을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이 그려 넣은 상징문양이 얼마 안가 사라져버릴 몰락왕조의 흔적으로 전락해버릴지도 모르는 시점에서 작업하는 손끝마디에 얼마나 신명이 실렸을지 의문입니다. 제국과 황실의 운명에 대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당시 상황이었습니다.

   
호미곶 등대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바다의 어둠을 향해 내뿜는 불빛 색깔은 아마도 짙은 회색이 아니었을까  잠시 상상해 봅니다. 미처 친숙할 사이도 없이 완공 얼마 후 ‘조선의 바다’는 역사속 어둠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대신 이 호미곶 등대앞을 오가는 선박위에 나부끼는 낯선 일장기 앞에서 일본제국주의에 강제 입양된 자식처럼 서럽게 흐느꼈을 등대의 외로움이 가슴을 저며 옵니다. 

 

등대의 소중함은 정작 육지에서보다 바다에서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낮보다 밤에 그 존재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 어둠속에서 수평선을 응시하며 밤바다를 항해하는 선박들과 불빛을 통한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등대지기의 생활을 그려보았습니다. 이러한 등대지기의 생활상을 잘 알려주는 곳이 바로 호미곶에 위치한 ‘국립 등대박물관’입니다.

 

1985년 1차 개관 했다가 2002년 ‘국립’으로 승격되면서 현재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1903년 인천항 팔미도에 최초의 근대식 등대가 세워지면서 시작된 우리나라 등대의 역사와
생활전반에 대해 한눈에 알아보게끔 많은 장비와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등대는 해상교통 안전과 근대화 산업발전에 기여하였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등대관련시설과 용품들이 사라져 가고 있어 이를 유물로 영구보존하여 항로표지 역사발전과 국민들에게 바다사랑을 함양하기 위하여 1985년에....>

 


입구에 있는 등대박물관 건립취지문을 단숨에 읽어내려간 뒤 들어선 박물관 내부엔 그 취지에 걸맞게 다양한 유물들과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교통부 장관이 발행한 등대원 수료증서, 봉급명세서, 육필로 쓰여진 근무일지, 등대원 일기등의 자료는 진하디 진한 소금기 섞인 짠내음을 발산합니다. 해변가 가장 높은 곳에서 ‘외로움’이라는 녀석과 싸우다 싸우다 그마저 벗을 삼아 머리가 희어져 갔을 등대지기의 삶이 그속에서 느껴져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습니다.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등대지기 노래 끝구절을 읇조리며 박물관을 나서는데 호미곶 등대위로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갑니다. 자신들이 있어 등대지기의 삶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입력 : 2007년 01월 12일 16:21:33 / 수정 : 2007년 01월 12일 16: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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