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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규와 양상훈의 파격

김포대두 정왕룡 2006. 3. 7. 20:19
이장규와 양상훈의 파격


시시비비(是是非非)라는 말이 있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할 때 이 말을 쓴다. 사회적으로 이런 일을 핵심기능으로 하는 기관이 바로 언론사다. 주요 의제(agenda)에 대해 언론사가 시시비비를 폄으로써 바람직한 공론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른바 메이저 신문은 정부나 여당이 하는 일에 대해 시시비비하기 보다는 비비(非非)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골라 그르다고 소리치는 일에 다투어 떨쳐나선 듯 한 것이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 때도 그랬지만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속마음까지 훤하게 드러내놓고 ‘비비’해왔다.  

주요 신문의 노무현 정부에 대한 태도가 부정 일변도라면 노 정부의 주요 신문에 대한 태도 역시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를 가리는 논쟁이 부질없음을 알고도 남을 터인데 정부와 신문은 원죄가 상대에게 있다고만 손가락질해왔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보기 드문 칭찬 칼럼
 
바로 이런 시대에 눈을 의심하게 할만한 ‘사건’이 며칠 전에 벌어졌다. 지난 3월 1일 <중앙일보>의 <시사미디어> 이장규 대표이사와 <조선일보>의 양상훈 정치부장이 노무현 정부를 칭찬한 칼럼을 쓴 것이다. 두 신문사의 비중 있는 언론인이 같은 날짜 신문에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정부를 칭양(稱揚)한 것은 그야말로 ‘파격’임에 틀림없다.  

이장규 대표는 칼럼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안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매듭짓겠다고 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물론 이 대표의 글은 대통령이 FTA 문제에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하도록 쐐기를 박아두고 싶은 심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어려운 결심에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는 종장(終章)은 메이저 신문에서는 좀체 접하기 어려웠던 수사(修辭)다.  
사주(社主)와는 성만 다른 양상훈 부장은 “노 대통령이 잘 한 일들”이라는 몹시 자극적인 제목의 칼럼에서 노 대통령에 대해 거침없이 '고무 동조'했다. 검찰 통치를 하지 않는 것, 정부와 당의 관계를 새로 정립한 것, 정치판에 재벌 돈을 끌어들이지 않는 것, 지역편중 인사를 해소한 것,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에 성공한 것, 이라크에 파병한 것, 미국과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시작한 것, 대북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지 않는 것 등이 양 부장이 예로 든 선정(善政)이다. <조선일보> 정치부장이 이런 글을 쓴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라 ‘괄목할만한 사건’이다. 양 부장의 말 마따나, 노 대통령이 정치를 잘 한다고 말하려면 주위를 살펴야 할 판인데, 이런 글을 써놓고 얼마나 주변의 눈치를 살폈을지 자못 궁금하다.

잘못한 것이 70이라면, 잘한 것도 30은 있잖는가
 
양 부장은 서두에 “노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 70이라면 잘한 것도 30은 있다”고 밝혀두고 30에 대해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다. 그의 판단대로 노무현 정부가 잘한 것이 30이라면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면의 30%는 정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써야 한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조선일보>가 노 정부에 대해 긍정적으로 쓴 기사의 비율이 30%가 아니라 0에 가깝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런 데 대해 정부 사람들은 신문을 비난할 처지가 아니다. 그들 스스로 “주요 신문이 잘 한 것도 30은 된다”는 생각을 해봤을 성 싶지 않다.          

요즘 세상 살기가 피곤한 것은 상대방의 30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선이 만연한 때문이다. 저 편에서 잘 한 것 30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이 편에서 보인다면 세상은 그래도 조금은 더 살맛이 날 것이다. 그러기에 이 대표와 양 부장이 부른 ‘3·1절 날의 만세’에는 우리 공동체 성원 모두의 화답(和答)이 뒤따라야 한다.

 

글쓴이 / 김민환
· 고려대 교수 (1992-현재)
· 전남대 교수 (1981-1992)
· 고려대 언론대학원 원장
· 한국언론학회 회장 역임
· 저서 : <개화기 민족지의 사회사상><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역)>
           <미군정기 신문의 사회사상><한국언론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