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회의, 만남, 행사....그리고 불씨 꺼뜨리지 않기.*

김포대두 정왕룡 2007. 5. 11. 05:55
 

*회의, 만남, 행사....그리고 불씨 꺼뜨리지 않기.*


회기가 열리는 때보다 안 열리는 때가 더 바쁜게 의정활동의 특징인가 봅니다.

특히 김포의 5월은 지역이나 단체의 각종행사가 집중되어 있는 때입니다. 아직까지도 농촌문화의 정서가 깊게 배어있는 김포지역사회에서  지역구에 아파트 단지가 몰려있는 제 경우엔 상대적으로 행사가 적어 그나마 부담이 덜할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울반대방향인 강화쪽으로 들어갈수록 행사가 겹쳐져 연일연야 술과 벗삼아야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계신 동료의원님들을 보면 좀 안쓰럽기도 합니다.


귀가하여 10일 하루의 일정을 체크해 보니 오늘 역시 정신없는 하루였습니다.


*신도시 연합 간부들 면담 (9시 반)

*의원단 주례회의(10시 10분)

*의정자문회의(11시 10분)

*사우동 재개발 주민 면담 (오후 2시)

*시민단체 간부 면담.(오후 3시)

*사우동 통장 면담(오후 3시 40분)

*농협중앙회 김포지부 간부들 만남.(오후 6시)

*그외 전화통화 다수.............


의정자문위와 시간이 겹쳐 풍무동 지역단체장 모임에는 결국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따라 각각 만남의 내용이나 비중이 자못 무거운 것들이어서 그만큼 신경이 집중되었던 탓에 진짜 ‘체력은 국력’이란 말의 의미가 다시 생각나는 하루였습니다.


저녁에 농협중앙회 김포지부 간부님들과 시의회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는 ‘김포출신’ 분들의 연고 따져보기 대화를 듣는 기분이 제법 흥미진진했습니다.


행사때마다 자신을 소개할 때 ‘고촌 영사정 은행나무집 셋째아들’이란 멘트를 날리는 농협 임지부장님이 ‘고향’에 대한 추억을 걸쭉한 입담에 섞어 풀어내자 여기저기서 유년기와,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여럿이 모여 대화를 나누다 보면 동네, 집안, 학교 선후배로 엮여버리는 모습이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저같이 김포출신이 아닌 사람도 그속에서 쏟아지는 추억담을 듣는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어? 그때 나도 그 현장에 있었는데?”

대화 후반부에 농협중앙회에 대한 추억 한자락이 생각나 옛 이야기를 꺼냈더니 맞은편에 계신 출장소장님이 신기함과 반가움이 뒤섞인 표정을 합니다.


사연인즉 이십여년 세월이 지나간 89년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농민들 고추파동이 심했던 89년도에 충주 중원, 경북 봉화, 영양농민분들 다수가 서대문에 있는 농협중앙회 본관건물앞에 고추를 쌓아놓고 농성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충주 중원지방으로 농활을 다녀왔던 연고탓에 농민분들을 지원하기 위해 농성현장에 후배들과 합류해서 몇날밤을 같이 한적이 있었습니다. 중앙회 본관 건너편 강당건물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유인물 초안도 작성해 드리고 시민들 홍보때는 따라다니기도 하고 농협중앙회 본관 진입시도때는 옆에서 거들어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그게 계기가 되어 그해 총학생회 농민분과장을 맡아 충주 중원지방을 사시사철 누비고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당시 농민들의 본관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상당수의 농협중앙회 직원들이 비상대기하다가 농민들과 몸싸움을 하기도 하고 실랑이도 벌이곤 했는데 그 현장에 계셨던 분들을 오늘 저녁식사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농민들이 쌓아놓은 고추를 젖지않게 하기위해 노심초사하던 일’ ‘본관전산실을 방어하기 위해 잔뜩 긴장하던 일’ ‘자신들도 농촌가족인데 거부감을 표하는 농민들에게 야속해 하던 일’

등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지 않을세라 ‘말로만 농민편이라고 했지 실제로는 위편 눈치만 보는 농협에 대해 당시 농민들이 얼마나 서운해 했는지 아냐’는 말로 대꾸를 하다보니 어느새 우리의 기억은 이십여년 전으로 옮겨가 있었습니다.


농민들 농성장 주변을 둘러싸고 검문검색을 하던 전경들이 다른 후배들은 제지하던 반면에 저는 아무런 제지없이 그냥 출입을 시켜서 ‘학생보다 농민의 이미지’가 더 강해보이던 모습에 웬지 모르는 자부심을 가졌던 일도 생각났습니다.


그때보다 더욱 열악해져가기만 하는 농촌, 농민의 현실이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면서도 ‘지난날의 꿈과 열망’을 잊지말자는 다짐을 하면서 자리를 떠나왔습니다.


80년대의 치열했던 현장의 이야기들은 분명 ‘추억남기기’ 이벤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고간다’라고 감히 단언은 못하더라도 불씨 한자락만은 꺼뜨리지 않고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모닥불을 지피자고 오늘 다시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