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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동백섬에…-동백섬 기행(1)-

김포대두 정왕룡 2007. 7. 18. 14:33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떠난 부산항에……’


동백섬에 올라 불러보는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굳이 조용필의 목소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섬을 찾는 이로 하여금 흠뻑 분위기에 젖게 만듭니다. 더구나 오늘같이 안개비가 간간이 흩뿌리고 해안선 곳곳에 운무가 스쳐가는 풍경에선 나 자신이 신라말 비운의 학자였던 최치원이나 된 마냥 제법 운치가 느껴집니다.

사실 오늘 이곳을 찾기 전에 최치원과  동백섬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진성여왕 시절, 도탄에 빠진 신라천년 사직을 구하기 위해 건의했던 자신의 개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속세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가야산으로 들어가 버렸던 이가 최치원이었습니다. 그가 속세를 등지기전 이곳에 들렀다 하여 그의 호를 따서 붙인 지명이 ‘해운대’라 합니다.

 

‘이곳이 무슨 섬이람?’
동백섬에 처음 와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던져 볼 질문이 바로 이 내용일 것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예전에는 섬이었던 곳이 모래가 퇴적되고 토사가 쌓이면서 육지와 연결되어 버린 ‘육계도’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해운대와 동백섬은  뗄레야 뗄 수 없는 한몸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섬을 일주하는 아스팔트 도로는 물론이고 ‘에이펙 회담’이 열렸던 ‘누리마루’라는 대규모 건축물이 자리잡고 있어 ‘섬’이 갖고있는 고적함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어졌습니다.

 

‘해운대와 동백섬 중 누구에게 더 좋은 결합이었을까?’
오래전에 결혼하여 이미 한 몸이 되어버린 부부가 연애시절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가정하듯 부질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습니다. 아마도 최치원이 이곳에 들렀을 당시엔 동백섬은 섬의 모습을 띠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해운대에만 머물렀는지 아니면 이곳 섬에까지 배저어 올라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울한 분위기에 젖어있었던 것만은 틀림없었으리라 상상해 봅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국할 때를 회상하며 삶의 덧없음에 시름의 파편들을 파도에 실어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육지가 된지 오래건만 왜 사람들은 아직도 이곳을 ‘섬’이라 부르는 걸까? ’
운무에 반쯤은 취해버린 듯 안개속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기를 반복하는 해운대 백사장을 건너다보며 스쳐간 생각이었습니다. 아마도 ‘동백섬’이라는 지명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특별한 관심을 갖는 사람을 제외하곤 이곳이 ‘섬’이라는 것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동백은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에 자생하는 식물입니다. 그러기에 무수히 떠있는 남해안 곳곳의 섬에 군락을 이루어 피고지는 동백꽃을 연관시켜 ‘동백섬’이라 불리는 곳이 이곳 해운대 말고도 여러곳 있습니다.

 

조용필의 구성진 가락에 실려오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가, ‘꽃피는 동백섬’으로 시작하는 것도 남해안 곳곳에 널려있는 동백섬의 이미지를 한데모아 사람들에게 고향의 정서를 자극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섬’의 이미지는 고향의 정취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동요 ‘섬집아기’는 물론이고 한때 전 국민에게 애창되던 대중가요 김원중의 ‘바위섬’을 떠올려봅니다. 그 태생이 두메산골이건 혹은 바닷가건간에 ‘섬’이라는 한 글자가 뭇사람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도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근원적 그리움’과 관련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너는 비록 육지에 시집왔지만 너의 태생은 바다였다는 것을 잊지말라’는 사람들의 바램이 ‘동백섬’이라는 어휘에 담겨져 있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뭍에서 떨어져 나간 바닷속의 한 점 눈물방울이 아니라 뭇생명들을 잉태한 만물의 근원인 바다의 자식임을 기억하라는 외침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동백섬은 ‘형제떠난 부산항’을 노래할때 이별의 정서를 담아내는 장소가 아닙니다. 아시아 태평양 각 국가의 정상들이 모여들어 세계의 평화와 협력을 논의했던 곳이고 사시사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이라는 화려함에 묻혀 ‘동백섬’이 갖고있던 ‘근원적 향수’에 대한 빛깔이 엷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파도에 실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