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희망제작소에서 간판, 거리정비사업, 옥상녹화 등을 주제로 한 공공디자인 학교가 개최됐으며, 이번 교육에 정왕룡 김포시의원이 참여했다.
본지는 이번 교육이 김포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풍무동 거리정비사업, 사우동 시청부터 보건소에 이르는 거리의 간판정비사업과 관련해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정 의원에게 교육후기 성격의 참가기를 기고로 의뢰했다.
이번 기고는 지난 주에 이은 두번째 기고다. - 편집자 주
옥수역에서
▲ 옥수역 입구의 모습.
‘공공디자인 학교’ 셋째날 프로그램이 옥수역에서 시작되었다. 의회 연찬회 일정에 참가하느라 둘째날 안양탐방 프로그램을 놓쳐버린 아쉬움 탓인지 옥수역을 향하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는 않다.
서울 중구의회 이혜경, 고문식, 김기래 의원이 먼저 도착해있다. 첫날 프로그램때 만난 사이인데도 오랜 지인을 대하는 기분처럼 낯설지가 않다. 둘째날 안양프로그램이 괜찮았다며 나중에라도 동료의원과 함께 꼭 찾아가보란다.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옥수역 주변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각 기둥마다 색동저고리마냥 아기자기하게 단장된 색상이 회색이미지를 쫓아버렸다. 노란 화분위에 국자모양의 장식품이 계단 여기저기에서 주민들을 맞는다.
드디어 희망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서 다른 일행들이 쏟아져 내려온다.
“그동안 디자인분야는 개인적 창작의 세계를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대중의 영역에 다가가기 보다 전문가들의 입맛위주로 흐르다보니 공공의 관점을 불어넣는다는 게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공공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지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옥수역 곳곳을 둘러보며 강사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가슴에 콕콕 박힌다. 예술적 완성도만을 추구했던 개인영역의 미술이나, 이익만을 쫓아가는 상업미술 사이에서 ‘공공미술’이라는 분야는 이제야 자기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한다.
▲ 옥수역 입구 계단의 화분과 꽃 조형물. | ||
옥수역 입구 계단을 오르내리면 노란색 화분이 따뜻하게 사람을 맞이한다. 그런데 그 화분위에 피어있는 꽃모양이 특이하다. 주방의 국자를 거꾸로 엎어놓은 모습이다. 아마도 가정에서 가장 쉽게 대하는 주방용품으로 소통의 의미를 부각시키려 한 듯하다.
한남동 단국대 부지앞에서
시간에 쫓겨 역구내에 들어가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희망버스에 올라탔다. 목적지인 정동을 향해 가던 길에 한남동 단국대 부지앞에 잠시 머물렀다. 용인으로 이전을 한 단국대 부지는 지금 다른 건축물 공사가 한창이다.
▲ 구단국대부지 공사장의 펜스. 양주혜 교수의 작품으로 색동옷 색채는 바코드를 형상화 한 것이고 그 사이사이에 있는 숫자는 주소를 나타낸 것이다. | ||
그간 ‘공사장 풍경’은 회색빛 삭막함 그 자체인게 우리 머리속에 고정된 이미지였다. 초기에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주변에 그물이나 담장을 치는게 일반화되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펜스위에, 혹은 그 주변에 색채와 그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잡하기 그지없던 그림등에 따뜻한 숨결이 배어나오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길거리 풍경을 바꾸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이른바 ‘아트펜스’ 영역의 출현이다. 아직 공사장에 와서, 혹은 그곳을 무심결에 지나면서 공공 설치미술 작품을 즐긴다는 게 낯설기만 하다.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아트펜스 작품들이 도시 곳곳에서 웃음짓는 날이 와야 할 것이다.
근대시대의 현장, 정동길에서
정동길에 들어섰다.
배재학당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시립미술관 앞을 스쳐지나갔다. 점심식사를 하러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로 길거리에 생기가 넘친다. 일행 중 한분이 보도블럭을 내려다보며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호기심이 발동해 다가가보니 군데군데 보도블록에 그림이나 사진이 예쁘게 새겨져있다. 근대의 물결이 태동하던 조선후기 김홍도의 서당도도 보이고 개화기 당시 각종 자료사진을 새겨놓은 것도 보인다. 독립신문도 보이고 YMCA 야구단으로 짐작이 되는 사진도 보이고 외국인 선교사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 정동거리의 예술적인 보도블록. | ||
▲ 정동 거리풍경 | ||
앞서가던 일행들이 철제벤치에 자유롭게 앉아서 강사의 설명도 듣고 고개도 숙여본다. 몇몇 사람은 벤치에 귀를 갖다대기도 한다. 무언가 하고 다가가 봤더니 철제벤치에 위와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고 자그마한 구멍이 있어 거기에서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온다. ‘라디오 정동’이라 써있다. 옛시절 방송을 실제 듣도록 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정동극장 근처의 녹색기둥에 설치된 장식물의 안을 들여다보면 근대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각종 영상이 떠오른다.
아! 이곳이 말로만 듣던 그 중명전?
사람들이 중명전이라 하면 잘 모른다. 하지만 을사조약이 체결된 장소라고 하면 얼굴 표정이 대번 바뀐다. 아직 내부공개가 되지 않아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방문객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입구기둥에 렌즈를 설치해서 당시의 화면사진을 볼수있게 해놓았다.
▲ 중명전과 구러시아공사관 | ||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구러시아 공사관입니다.”
오래 걸은 탓에 일행들이 더위에 지칠 것을 염려하여 설명만 하려던 강사를 채근질하여 기어이 러시아 공사관 언덕까지 올라갔다.
하얀벽을 올려다보니 고종황제의 모습이 창문너머로 보이는 것 같다. 바로 이곳이 고종이 세자를 데리고 피신하여 1년간 체류했던 소위 ‘아관파천’의 현장? 한 나라의 임금이 자기나라 수도내에서 타국 공사관으로 피신하여 안전을 도모하고자 했던 그 치욕의 현장에 서니 온갖 감회가 밀려온다.
고종은 이곳에서 어떤 심정으로 일년의 시간을 보냈을까? 명성황후 민씨가 살해당하고 국운이 급격이 기울어가는 상황에서 일본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선택한 아관파천이 고종에게는 그나마 차선이었을까?
“저쪽 아래 공원에서 사람들의 동선이 멈추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이곳 공사관건물 언덕에까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어낸다면 수많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토리 라인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아직까지 이곳 정동프로젝트는 미완성입니다. 좀더 많은 보완과정을 거쳐 근대시기 풍부한 상상력을 담아내야 합니다. 특히 이곳 러시아 공사관과 인접해 있는 덕수궁까지 통하는 길은 수많은 드라마나 추리소설의 소재로도 등장하는 곳이기도 해 의미가 남다른 곳입니다.”
러시아 공사관앞에서 수강생들과 강사의 질의 응답은 끝간줄 모르고 이어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리더십입니다. 지역정책을 결정하는 리더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현재 한강르네상스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지역에 돌아가셔서 작업을 진행할 때 이름있는 전문가들에 너무 의존하려 하지 마세요. 실력이 있고 실험정신으로 충만한 젊은 작가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도선생의 종강을 마무리짓는 열변에 길거리 수강생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늦은 점심을 들고 종강식이 진행되는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 건물로 돌아왔다.
희망제작소에서 준비한 2박 3일의 영상물이 상영되었다. 저마다 자기모습이 비쳐질 때 사람들의 표정에 환희와 아쉬움이 묻어난다. 수료증을 나눠받았다. 그런데 자기 것이 아닌 타인의 이름이 쓰여져 있다. 그것을 받은 사람이 그 이름의 주인공을 불러서 교실 안에서 직접 전달해주라 한다. 여기저기에서 수료증 수여식이 진행된다. 악수하는 사람도 있고 포옹하는 사람도 있다. 사진자료를 비롯한 동영상 및 각종 자료는 웹하드에 올려놓을테니 다운 받아가라고 한다. 프로그램은 체험위주의 아날로그 방식이 주종이었는데 자료배분 방식은 그 반대다.
‘살아있는 현장에서 직접보고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지역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공공디자인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열어갈 것입니다. 000님은 우리지역의 공공디자이너입니다.’
수료증에 써있는 글씨를 내려다보는 수강생들의 얼굴에 지역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일구어낼 ‘희망에 대한 의지’가 엿보인다. 폐현수막을 활용하여 만든 가방에 저마다 묵직하게 꿈을 담아 길을 나서는데 촉촉한 단비가 머리를 적셔준다.
▲ 수료식과 수료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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