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및 논평

준비된 이별, 준비 안된 이별.-김대중 대통령님의 서거에 부쳐-

김포대두 정왕룡 2009. 8. 21. 16:10

준비된 이별, 준비 안된 이별.

-김대중 대통령님의 서거에 부쳐-


‘왜 이리 분위기가 차분하지?’

시민회관 빈소에 앉아 조문객을 맞이하면서 스쳐 지나간 생각이다. 조문객의 많고 적음과 사람들의 애도하는 표정이나 분위기를 놓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 자신에게 던진 물음이다. 지금도 노무현만 생각하면 코끝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울렁거리는데 정작 김대중 전대통령 빈소에 서있으면서도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하다.


‘완료형 김대중, 미완성 진행형 노무현.’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진다는 소식에 5월달의 노무현 국민장을 떠올리며 한줄기 단상이 스쳐간다. 김대중을 반대했건 핍박했건 이제는 민족의 지도자로서 그를 받아 들이는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분위기인 것 같다. 세계가 이미 인정한 그의 삶의 궤적과 가치를 대한민국이 받아들이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느낌이다. 김대중 그 이름뒤에 느낌표를 찍는데 인색한 사람들이 아직 일부 있을지라도 이미 사회적 분위기는 지역과 남북을 뛰어넘어 전 세계로 그 이름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듯 하다.


반면에 노무현에 대한 평가, 그가 이루고자 했던 가치는 여전히 미완성이면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기에 준비안된 갑작스런 이별앞에 맞닥뜨린 당혹감과 상처는 아직도 수많은 국민들 마음속에 깊은 멍자국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김대중의 가치가 그를 따르느냐 마느냐의 고민을 안겨주었다면 노무현의 가치는 그와 함께 이루느냐 마느냐, 아니 당신 역시 노무현이 될수있냐 없냐의 다소 당돌하면서도 도발적인 문제제기였다는 느낌이다. 그것이 현충원이 아닌 봉하마을에 잠들어 있는, 아니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노무현의 외침이기도 한 것이다.


‘대통령, 선생님, 지도자, 경제 전문가, 평화, 인권, 통일운동가, 인동초, IT 강국 개척자’

김대중이라는 세글자 앞뒤로 따라 다니는 수식어는 참 많다. 여기에는 ‘3김, 빨갱이, 사형수, 전라민국 정치인’등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은 삶이었기에 그 거대한 생애를 한 단어로 압축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다.


21세기에 그가 태어났다면 과연 어떤 일을 하였을까?

추모하는 이들 중에는 서태지 안성기를 비롯, 유달리 문화 예술인들이 많은 것을 보면 21세기 한복판을 그가 살았다면 문화예술 분야에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것일까?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영웅의 시대는 그를 끝으로 마침표를 찍은 것 같다는 느낌이다. 분단과 전쟁, 독재와 민주화 투쟁, 빈곤과 경제개발등의 갈등을 거쳐오는 동안 어느덧 대한민국의 시계는 21세기의 10분의 1을 마감하고 있다.  여운형, 김구, 장준하, 문익환등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굵은 발자취가 김대중에 이르러 한 매듭을 짓고 이제 새시대를 향한 숨고르기로 들어간 느낌이다.


새롭게 다가오는 시대를 감당할 책임은 과거처럼 특정 지도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 시민들의 집단지성속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없이는 역사는 이제 한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을 노무현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그러기에 더 이상 시민들에게 정치는 관전의 대상이 아닌 주체적 참여의 공간이다. 참여냐 외면이냐의 갈림길속에서 헌법에 명시된 주권재민의 권리를 행사할 줄 아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존재여부가 그 사회의 희망의 질을 가늠해보는 척도가 될 것이다.


석달간격으로 준비안된 이별과 준비된 이별의 아픔을 동시에 겪어야 하는 현실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노무현과 김대중을 떠나보낸 시간의 간격을 가리키는 87일이라는 숫자의 상징성이 가슴을 후벼판다. 87년 6월의 거리에서 만났던 김대중 정신, 노무현 정신, 시민항쟁의 정신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앞날을 밝히는 등불이 되길 희망해본다.


평생 잊혀지지 않고 나를 채찍질 할 김대중 노무현의 어록이 눈앞을 스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