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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민단체

김포대두 정왕룡 2006. 9. 12. 20:03
언론과 시민단체


빅그린(Big Green)은 역사가 50년이 넘는, 미국에서 이름이 있는 환경운동 단체다. 그동안 각종 사업을 벌여 자산이 30억 달러에 이르고 회원도 100만 명이 넘는다. 이 시민단체는 ‘양립 가능한 개발’을 내세웠다. 막무가내로 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존하면서도 개발을 추구할 수 있다는 온건한 태도를 줄곧 지켰다. 그래서 빅그린은 어느 시민운동 단체보다 합리적이라는 평판을 들어왔다.  

이름있는 미국환경단체의 비리, 탐사보도로 폭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그린은 2003년에 <워싱턴 포스트>의 일련의 탐사보도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 신문사 기자 조 스티븐스(Joe Stephens)는 동료기자 데이빗 오타웨이 등과 함께 빅그린을 취재해 이 단체가 그야말로 비리의 복마전임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빅그린은 텍사스만 연안에서 천연가스 개발사업을 벌인다며 수많은 시추공을 파 그렇잖아도 멸종 위기에 놓인 새가 떼죽음을 당하게 했고, 더구나 다른 업자의 천연가스까지 끌어다 팔아 결국 1천만 달러의 합의금을 물어냈다. 버지니아주 동해안에 숙박업소, 공장 등을 지으려다 실패해 2천4백만 달러를 손해를 보기도 했다. 환경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경치 좋은 곳에 땅을 사들였다가, 방침을 바꾸어 다시 개인에게 불하하면서 빅그린 간부들한테도 헐값으로 넘겨, 이들이 그 땅에 호화주택을 짓기도 했다. 빅그린은 지구 온난화 등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거나 아예 침묵했으며, 기업들은 빅그린에 기부금을 내거나 이사회에 자사 중역을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빅그린과 특수 관계를 맺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스티븐스가 밝혀낸 비리는 이밖에도 많다.  

빅그린 관계자들은 <워싱턴 포스트>의 취재를 집요하게 방해했다. “당신들의 부당한 취재로 고통을 받고 있다”며 다른 신문이 아닌 <워싱턴 포스트>에 전면광고를 내 항변하는가 하면, 소송을 내겠다고 협박도 했다. 그러나 2년 동안 치밀하게 증빙자료를 확보한 스티븐스 기자에게 빅그린도 마침내 두 손을 들었다. 빅그린은 자체적으로 내부감찰을 벌이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상원 재정위원회가 조사를 벌이는가 하면 국세청도 세무조사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빅그린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반대로 스티븐스의 이름은 하늘로 치솟았다. 스티븐스는 이 특종으로 가장 권위 있는 탐사보도 상인 IRE (Investigative Reports and Editors) 상을 받았다.  

학계나 시민단체와 언론, 건전한 상호비판 필요

스티븐스의 탐사보도는 누구도 차마 건드리지 않는 특별한 영역으로 남아있던 시민단체의 내부를 깊숙이 파헤친 것으로, 이로써 미국에서도 취재 금단의 마지막 성역이 허물어졌다. 스티븐스의 탐사보도는 미국 시민단체의 위상을 뿌리째 뒤흔들었지만 식자들은 스티븐스가 결과적으로 시민단체로 하여금 일제히 자기 성찰을 할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언론과 시민단체 간에 건전한 긴장관계가 형성되게 함으로써 시민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게 한 것도 사실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어느 메이저 신문은 그동안 언론민주화운동을 펴온 한 시민단체의 간부 교수가 논문을 표절한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마침 그 교수가 KBS의 이사로 임명된 직후이기는 하지만 사회통념에 따르자면 신문이 좀 심한 것 아니냐고 느끼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평교수에 대해서까지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당사자의 항변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더구나 언론학계에서 그 정도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세려면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란다. 그러나 이런 보도를 계기로 학계나 시민단체가 도덕성을 자체 점검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시민단체와 언론의 건전한 상호비판도 일상화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시민사회도 한 뼘은 더 훌쩍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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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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