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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에 올라 만파식적을 그리다 -감포 가는 길(4)-

김포대두 정왕룡 2007. 2. 2. 14:30
방파제에 올라 만파식적을 그리다 -감포 가는 길(4)-
2007년 02월 02일 (금) 09:20:38 정왕룡 시민기자 kd6010@hanmail.net

   
 
   
 
‘김포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감포가 되는......’
감포항에 가면서 대중가요 노랫말을 잠시 개사해서 읊어 보았습니다. 김포와 감포는 한반도 허리와 동남쪽 끝자락에 한참이나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지만 이름에서 느끼는 친숙함은 글자의 비슷함만큼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포구나 다 그렇듯이 감포항 포구 역시 어촌마을의 친숙함을 풍성히 느끼게 해줍니다. 행정구역상 경주시에 속해있으면서도 한때는 동해안 어업 전진기지로서 번성하였던 역사를 뒤로하고 지금은 새로운 생존의 길을 찾아 몸부림치고 있는  곳입니다.

 

감포항에 내리면서 이곳에서 약 10㎞ 지점에 있는 대왕암이 떠올랐습니다.
‘죽어서도 동해바다의 용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다 한가운데에 조성된 수중릉이 바로 ‘대왕암’입니다. 그 아들 신문왕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대왕암을 조성하고 돌아오는 길에 용을 만나 얻게 된 대나무로 만든 피리가 만파식적입니다. 그 후 나라에 가뭄, 홍수가 들거나 우환이 있을 때 이 만파식적을 불면 근심거리가 사라졌다 합니다.

 

   
 
   
 

감포항은 요즘 여러 가지 고민에 많이 휩싸여 있습니다.


예전 같지 않게 자꾸만 줄어드는 어획량에다 최근에는 중국 선단 수천여척이 북한해역까지 올라가 남하하는 오징어 떼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통에 부둣가에는 찬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습니다. 현재 동해안 어획량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오징어잡이의 침체는 바로 감포항 경기에도 영향을 미쳐 지역민들을 고민에 휩싸이게 하고 있습니다. 수년간 끌어오던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경주에 확정할 때 한국수력 원자력 본사를 감포 인근에 유치하는 것을 강력히 요구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분위기의 반영입니다.

 

만일 아직까지 만파식적이 남아있다면 감포항 방파제에 올라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구성지게 한가락 뽑고 싶은 기분입니다.

 

대마도 인근에서 올라오는 난류와 멀리 함경도 인근에서 강원도 연안을 따라 흘러내려온 한류가 교차하는 조경수역이 바로 감포항 인근의 해역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풍부한 어장을 형성하는 조건을 마련하여 1920년 감포항이 개항할 때는 수백 명의 일본인들이 대거 건너와서 수산업에 종사했다 합니다. 이로 인해 근대적인 대규모의 어업이 이루어지면서 이곳 어업도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일본인들은 감포항을 어업전진기지로 삼았습니다.
  
 1937년에는 인천광역시의 전신인 제물포읍과 같은 해 읍으로 승격할 정도로 '잘 나가던 지역'이었다 하니 과거의 영화와 현재의 쇠락이 교차하면서 씁쓸함이 밀려옵니다.

부둣가를 걷다보니 여기저기서 부지런히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분들에게 저 같은 길손들의 모습은 한가한 나그네들이 소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모습으로 비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바닷가건 농촌이건 도시이건 간에 삶에 대한 진지한 모습은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물을 매만지는 손가락 하나하나에 희망을 일구어내고자 하는 진한 열정이 느껴지면서 마음 한구석이 잠시 숙연해졌습니다. 그분들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희망의 만파식적을 연주하는 마술사로 새롭게 탄생하길 빌어보았습니다.

 

 

방파제에 올라 동해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동해바다의 용이 되어 호국신으로 부활하겠다던 문무대왕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왜구를 막는 호국신이 되고자 했던 그의 영향력도 신라천년의 역사와 함께 힘이 다했던지 일제침략까지 막아내지는 못했나 봅니다.

갈매기 한 마리가 근처에 날아와 잠시 날갯짓을 합니다. 보이지도 않는 거창한 용을 연상하며 상념에 젖기보다 자기와 같은 친구들과 잠시 어울려 보는 게 어떠냐고 손짓하는 듯합니다.  감포에 인간이 몰려오기 수만년 전부터 이곳을 지켜온 진정한 주인은 바로 갈매기와 같은 자연의 친구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