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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태자의 한과 꿈, 미륵리 석불앞에서

김포대두 정왕룡 2007. 3. 13. 22:02
마의 태자의 한과 꿈, 미륵리 석불앞에서
월악산 미륵리에서(2)
2007년 03월 13일 (화) 09:44:59 정왕룡 시민기자 kd6010@hanmail.net

   
 
   
‘천년왕국 신라의 종말 앞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방울을 흘렸을까?’
월악산 자락, 중원 미륵리 절터에 오게 되면 북쪽을 향해 우뚝 솟아있는 석불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마의태자의 전설이 서려있는 석불입상은 천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오면서 온갖 풍상에 시달렸을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얼굴 부분만은 티끌하나 없는 맑은 형상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에 신라를 바치려는 경순왕의 결정에 끝까지 반대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누이 덕주공주와 함께 금강산으로 향하던 마의태자 일행이 한동안 머물렀던 곳이라 합니다. 어느날 꿈속에서 미륵불을 만난 마의태자는 이곳에 석불을 세웠고 맞은편 월악산 영봉 인근에 덕주공주는 마애불을 새겨 서로 마주보는 형상을 이루었다 합니다. 월악산에 머물기를 고집하던 누이의 만류를 뿌리치고 신라재건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이 산속 어딘가에 덕주공주와 헤어지면서 흩뿌렸을 눈물방울이 스며들었을 것이고, 그것을 받아안고 자라난 수목들이 이 숲을 이루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잠시 주변 분위기가 숙연해집니다.

 

   
 
   
보통 극락세계가 있다는 서방정토를 향해 세워지는 방향과 달리 이곳 석불입상은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북쪽을 향해 서있다고 합니다. 이 석불의 시선이 향하는 일직선상에 덕주공주의 마애불이 있다하니 망국의 한을 삭이며 함께 흐느꼈을 오누이의 아픔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미륵리 절터는 그간 절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폐사지로 방치되어 오다가, 최근의 수차례 발굴작업으로 신라말 고려초로 추정되는 ‘미륵대원’이라는 명칭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이라는 명칭이 절을 뜻하기 보다 주요한 교통로 요충지에 숙박및 연락의 기능을 담당하는 성격이 강한지라 절 이름에 관해선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듯 합니다.

 

전체적 조형기법이 경주의 석굴암을 염두에 두고 축조한 인공석굴의 양식을 띠고 있지만 상층부를 이루던 목조부분은 불에타고 지금은 석불입상만이 외롭게 월악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경주 석굴암을 상상하며 이곳을 찾는 사람은 이곳에 발을 들여놓자 마자 실망감을 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엄격한 균형감각과 비례미를 강조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손색이 없는 석굴암에 비해 이곳의 석불은 언뜻 조형감각이 촌스러움의 극치를 달리는 듯 해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신라에서 고려로 향하는 시대적 변화상을 염두에 두고 바라보지 못하는 역사문화적 안목의 결핍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석굴암이 창건된 통일신라 시기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진골귀족문화의 융성기입니다. 이에 비해 지방문화를 이끌던 호족세력이 주축이 되어 후삼국의 혼란기를 통과하며 세워진 고려는 건국 초기에 전국 지방 곳곳에 거대한 석불이 세워집니다.

 

그 거불(巨佛)들은 한결같이 형식과 비례에 연연해 하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굴 표정은 동네 군밤장수 아저씨 마냥 익살스럽기까지 합니다.

중앙에 집중되었던 신라 귀족문화와 달리 이제 시대흐름의 중심지는 ‘지방’이라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면서 그 중심에 호족세력이 있음을 과시한 상징물이 바로 이 거불(巨佛)들인 것입니다. 주목되는 것은 ‘미륵불’ ‘미륵대원’ ‘미륵리’의 이름에 담겨있는 민중들의 염원입니다. 미륵불은 한마디로 희망의 새시대가 열리는 ‘미래의 부처’를 나타냅니다.  마치 기독교의 재림예수와 같은 성격의 존재입니다. 미륵불을 자처했던 궁예의 예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역사에서 ‘미륵신앙’은 격동기를 거칠때마다 새시대를 열망하는 민중들의 염원이 표출되는 상징체였던 것입니다.

 

‘마의태자가 꿈꾸던 세상은 천년왕국의 향수가 먼저였을까? 민중과 함께하는 새시대에 대한 열망이 먼저였을까?’
미륵 석불앞에서 질문을 던져보지만 그는 그냥 잔잔히  웃을 뿐입니다. 그에 대한 해답은 이곳을 찾는 현세의 인간들, 자신이 찾아야 할 과제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