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온달 이름 앞에서 | |||||||||||||||||||||||||||
월악산 미륵리에서(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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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리 석불앞을 돌아 나오다 거북모양의 커다란 암석위에 얹어져 있는 둥근 바윗돌에 시선이 멈추었습니다. 커다란 ‘지구의’ 처럼 생긴 바윗돌은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금새 아래로 굴러 내릴 것 같은 생동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앞에 서있는 안내판 글귀에 눈이 갔습니다. ‘온달장군 공기돌’이 바윗돌의 이름이었습니다. 온달장군이 신라군과 싸우기 위해 주둔하던 중 고구려 군사들 앞에서 힘자랑을 하기위해 갖고 놀았다 하여 그렇게 불린다 하였습니다.
‘그렇지, 온달산성이 인근 단양에 있었지!’
하지만 기억을 찬찬이 떠올려보니 이곳 하늘재 역시 온달과 결코 무관한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온달은 평원왕의 뒤를 이은 영양왕에게, 출전에 앞서 비장한 각오로 ‘계립령과 죽령지역 서쪽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을 합니다. 온달이 말한 계립령이 바로 이곳 미륵리 너머 하늘재 였으니 삼국시대에 이 지역을 놓고 고구려와 신라가 얼마나 치열한 쟁투를 벌였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바보 온달과 온달장군이란 말 중 어느 쪽이 그의 정체성에 더 어울릴까?’ 문득 온달에 대한 호칭을 떠올리다 혼자서 반문해봅니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 누구나 한번쯤 읽게 되는 ‘평강공주와 온달’의 이야기에서는 ‘바보 온달’의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느껴집니다. 평강공주의 결단이 없었다면 온달은 여전히 ‘바보’로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관련 기록을 보면 온달이 ‘바보’로 불린 이유가 ‘못생긴 얼굴과 남루한 행색’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은 ‘가난’의 굴레에 허덕이면서도 병든 어머니를 홀로 봉양하던 효심지극한 사내였습니다. 온달이 갖고 있던 맑은 심성과 잠재적 능력이 평원왕 시대의 개방적 분위기와 결합하여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는 발자취를 남겼던 것입니다.
온달은 평강공주를 만나 생활의 안정을 찾으면서 무예를 익힌 뒤 무사대회에 나갔다가 왕의 눈에 띠게 되고 드디어는 구국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 당시 남북조 시대 막바지를 치닫던 중국의 최강자 북주의 침략을 앞장서 막아내었던 것입니다. 이 북주의 실권자 양견이 수나라를 열고 중국을 통일하였으니 온달은 을지문덕에 앞선 구국의 장군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온달은 ‘바보’가 아니라 대고구려 평원왕의 사위로서 민중의 영웅이었습니다.
비록 계립령과 죽령서쪽을 회복하지 못하고 전장터에서 삶을 마감하였지만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후인들에게 많은 상징성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광개토왕 장수왕 문자왕으로 이어지는 최전성기를 구가하다 지배층의 분열로 내리막길을 치닫던 고구려에 평민출신인 온달의 출현은 새로운 활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보통 한 사회의 위기는 지도층의 분열이나 부패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힘의 바탕은 신분, 계급간 폐쇄성을 뛰어넘어서 사회적 단합을 이룰 수 있는 통합력의 확보 여부일 것입니다. 세인들에게 ‘바보’라 불리웠던 온달이 훗날 입지전적 성공을 이루지 못하였다면 그 이름은 역사에 남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바보’라는 호칭은 ‘구국의 영웅’으로까지 도약한 그의 발자취와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온달의 상징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민중들은 온달에게 ‘바보’라는 호칭을 부여하여 오히려 그의 성공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천 오백년 전에 만주 요동벌에서 한반도 남한강 유역까지 광활한 지역을 말달리며 민중의 영웅으로 이름을 떨쳤던 온달의 모습이 월악산 자락에 서있는 지금, 더욱 그리워집니다. 얼마든지 평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음에도, 출전을 자청하여 광야에서 삶을 마감한 그의 생이었기에 ‘바보온달’ 이라는 이름앞에 더욱 숙연해지는지도 모릅니다.
‘21세기에 온달이 부활한다면 그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젊은 날의 열정이 자꾸만 식어가는 내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바보’라는 두 글자를 머릿속에 여러번 되뇌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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