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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올림픽 참가가 보장되지 않던 당시 야구계에서
아마야구의 최정상 자웅을 가리는 대회는 대륙간컵 대회와 세계야구선수권 대회가 있었다. (대회의 비중은 세계야구선수권 대회가 더 가치가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아마야구는 세계 올스타 쿠바가 최강의 전력으로 앞장을 서고 그 밑으로 프로 리그가 아마야구의 토양을
기름지게 만드는 미국, 일본...그리고 리틀야구가 강한 대만과 쿠바를 닮은 중남미의 니카라과 프에르토리코 등이 경쟁하는 체제를 구축했었다.
이런 경쟁속에서 한국은 77년 니카라과 대륙간컵에서 김응룡 사단을 주축으로 최초 우승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이 이런 야구
강국들 틈바구니에서 경쟁하여 좋은 성적을 올렸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서울로 유치하면서
최초 우승을 노리는 한국대표입장에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그 해 출범한 한국프로리그에 대표급 선수를 아마추어에 잔류시키는 초강수를
두었다. (세계최강 쿠바가 북한과의 입장을 고려하여 불참한 대회여서 한국팀의 우승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결국 최동원(한화
투수코치), 김재박(현대 감독), 장효조, 이해창, 심재원 등이 아마추어로 남아 대표팀을 지켰고 당대 최고의 좌완 이선희, 대도 김일권, 거포
김봉연, 김용희등이 프로리그로 빠져 나간자리엔 고려대의 선동렬(삼성 감독), 동국대의 한대화, 동아대의 김상훈, 인하대의 김진우등의 영파워들이
백업을 하였다.
선린상고 시절 최고의 야구천재라고 불리던 박노준(SBS 해설위원)이 고려대 신입생으로 대표팀의 막내가 되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어우홍 감독의 대표팀은 1차전에 복병 이탈리아를 만나 선발로 김시진(현대 투수코치)내세웠으나 결과적으로 1:2의
패배를 기록한다..(당시 국가대표팀은 종목을 망라하고 서울에서 대회를 개최하면 항상 첫경기를 죽쑨다.. 당시 박찬숙선수가 이끌던 여자농구
세계선수권 대회도 첫경기를 캐나다에게 졌다)
우승을 노리다 첫판을 넘겨줘 벼랑끝에 몰린 한국은 그뒤로 모든 운명을 미국과의
대전에서 맞추었는데 이때 국보급 투수 선동렬의 신화가 이루어 진다. 1회인가 2회인가 초반 1실점을 한 선동렬은 그뒤 미국타자를 완벽하게
제압하는데 무려 14개의 탈삼진을 잡아 미국팀과 메이져리그 관계자들을 경악시켰다.
150킬로대 직구와 140킬로대 슬라이더를 던지는 대학생 선동렬...
세상은 깜짝
놀랐다. 그뒤 선동렬은 대만전에서도 완투승을 거두어 한국 국가대표팀의 수호신이 된다. 선동렬은 최동원처럼 강한 어깨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체구에 비해 손도 작아 포크볼 같은 변화구도 가능하지 않았으나 그에겐 타고난 체력과 유연성이 있었다.
당시 경기를 앞두고 커다란
덩치의 선동렬이 몸을 푸는 체조를 할때 흡사 곡예단의 선스들처럼 자유자재로 허리를 구부리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허리를 숙이면
발끝에 가볍게 닫고 요가처럼 팔다리를 들어서 꼬기도 했으며 엄지손가락을 젖히면 팔목에 닫기도 했다.
첫판을 내주고 내리 7연승을
달린 한국팀의 마지막 경기는 일본전...사실상의 결승전이다. 역시 한국팀의 선발투수는 선동렬..동국대의 루키 한대화가 5번타순으로 올라온 것이
처음부터 심상치 않았다.
초반 2점을 실점한 선동렬이 그뒤 0의 행진을 이어가던 8회말...드디어 신화가 시작된다. 0:2의
스코어로 맞이한 8회말 공격..한국팀의 첫타자는 심재원이다.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로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리드를 자랑하던 심재원은
끈질긴 커트 속에 드디어 중전안타를 치고 1루에 나간다. 일본투수에 완전히 막혀있던 한국대표팀의 두 번째 안타다..
어우홍 감독은
이찬스에서 대타를 기용하는데 이 선수가 바로 교통사고로 작고한 고려대의 고 김정수 선수다..(나중에 MBC청룡에 입단)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방이 있는 김정수 선수가 일본 투수의 공을 제대로 받아쳤는데 잠실야구장의 가장 먼쪽 펜스인 중간 펜스를 맞추는 2루타였다. 심재원
선수의 홈인으로 스코어는 1:2... (보스기질이 다분하고 술과 친구 좋아하던 김정수 선수의 괴력을 제대로 보여준 한방이였다.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 김정수 선수의 명복을 빈다.)
다음 타자는 조성옥 선수..당근 번트를 대고 주자는 1사에
3루...이제 한국야구사에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이 펼쳐진다. 이른바 개구리 점프 번트사건..
김재박 선수는 이선희 투수와 더불어
77년 니카라과 대륙간컵 우승의 주역이고 한국 아마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다. 타격과 도루 수비등 야구 센스로 치면 거의 마이클 조던 급인 선수였다
이런 김재박선수가 등장했고 일본 투수는 스퀴즈를 막고자 초구에 피칫아웃으로 공을 뺏다. 그러나 방망이를 하늘로 던지다시피 날리며
공중점프를 한 김재박 선수의 배트에 공은 기적적으로 맞았고 하필이면 그 공이 3루라인을 따라서 졸졸졸 세이프티 번트처럼 흘러가다니....일본의
입장에선 악몽의 시작이다.
스코어는 2:2 동점...그뒤 이해창의 안타와 장효조의 땅볼로 이어진 2사 1,3루의 상황..이제
타석에 등장한건 5번타자 동국대 한대화 (삼성 타격코치)..
줄곳 9번에 기용되던 한대화를 왜 하필 5번에 기용했을까?..어눌한
어우홍 감독의 신기가 제대로 먹혔다고 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실야구장을 찾은 관중은 물론 전국의 시청자들도 이순간 모두 숨을
죽이며 한대화의 방망이에 기를 불어 넣었다. (물론 나도 포함)
일본 투수가 공을 던지고 한대화의 방망이가 돌았다...딱하는
소리와 함께 레프트쪽 하늘로 엄청난 함성과 더불어 하얀 공이 날아간다. 쭉쭉 뻗은 공은 계속 그리고 계속 날라가더니 왼쪽 폴대를 때리고
떨어졌다...
오마이 갓...쓰리런 홈런..5:2 대역전의 드라마 완성이다..
이렇게 82년 한국대표팀은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재패했고 그날의 그 경기만은 아직도 야구팬들의 마음속에 “최강의 승리
게임”으로 기억되고 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일전에서
감격적인 승리를 했다. 이진영, 이승엽, 구대성, 박찬호,이종범 전부 잘했지만 숨은 MVP를 꼽아보라면 주저하지 않고 포수 조인성을 꼽겠다.
너무도 냉철하게 투수와 수비 전체를 리드했기에 100점을 줘도 모자랄 지경이다. 김인식 감독의 믿는야구가 이래서 무서운거라고
본다.
이번 WBC에 한국대표팀이 든든한 건 두툼한 “메이저 리그의 선발투수진” 때문만은 아니고 이승엽, 최희섭 같은 거포 군단의
존재 때문만도 아니다.
물론 선수단의 자질과 능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큰 경기 일수록 더욱더 중요한건 경험이고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우승으로 이끈 김재박, 선동렬 같은 초울트라 베테랑이 코치진으로 참여하기에 이번 드림팀의 성적에 기대가 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이빙 캐치로 한국선수단을 살린 이진영 선수가 말했다. 경기가 진행될 수록 더욱더 경기에 집중하게 된다고..
당연한 것 아닌가.. 82년의 포스가 선수단 전체에 전해진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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