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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진부령을 넘다 -누리네 ‘후다닥’ 동해안 여행기(1)-

김포대두 정왕룡 2006. 3. 8. 11:06
새벽에 진부령을 넘다
-누리네 ‘후다닥’ 동해안 여행기(1)-

 

정왕룡 시민기자 kd6010@hanmail.net

 

   
화진포행은 매번 동해안을 찾을때와 마찬가지로 그야말로 후다닥 결정되었다.

여름휴가철 끝무렵에 어렵사리 마련해낸 이틀 휴가는 너무 짧았다. 그런데 그중 첫날을 사소한 말다툼으로 반나절을 보낸 후 아이를 집에 놔둔 채 강화도로 길을 잡았다. 전등사 아니면 동막 해수욕장에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올 요량이었다. 그런데 대명포구가 가까워 올 즈음,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이 기어이 일을 저지르게 하고 말았다.

 

“우리 또 미친척 하고 동해로 가볼까?” “자기 피곤할텐데! ”

“무박2일 코스 어때?” “젊은날 기분내려고 또 무리하는거 아냐?”

“이번엔 금강산 가까운 곳 화진포로 가보는 거야” “누리가 따라 가려고 할까?”

아내의 염려를 뒤로한 채 바로 차를 돌렸다. 옷가지와 음식을 챙겨 밤 9시 넘어 동해로 출발했다.

“내일 11시에 친구와 접속하기로 했는데 그전까지 올 수 있어?”

   

딸아이가 따라 나오며 질문을 던진다. 부정적인 대답에 딸아이는 입이 삐쭉 튀어나온다. 가기 싫은 모습이다. 언제부턴가 컴퓨터와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딸아이는 자기일정을 고집한다. 엄마 아빠를 꼭 따라 나서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제법 컸다고 자기만의 시간이 더 좋다는 투다. 그래도 이번엔 할 수없다.  강압적이 되어야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여름내내 추억거리 하나 마련해주지 못한 못난 아빠의 투정이라 해도 상관없다. 이럴 땐 아내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행히 다른 때와 달리 아내도 내 편을 들어주며 아이를 다독거린다.

 

매번 동해안 여행은 그야말로 ‘후다닥 여행’이었다. 경차를 몰던 초보운전 시절, 춘천에 운전 연습겸 바람 쐬러 갔다가 ‘속초’라는 이정표를 보고 한번 가보자 싶어 페달을 밟았다. 물어물어 새벽녘에야 낙산 해변가에 도착했을 때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기분이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재작년의 속초여행도 그러긴 마찬가지였다. 사우동에서 점심먹다가 의기투합해, 딸아이 수업 끝나는 것을 기다려 납치하듯이 태우고, 후다닥 무박 2일로 동해안을 다녀왔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국토를 가로지르는 이런 식의  ‘후다닥 여행’이, 나이를 한살씩 더 먹어가면서  부담으로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올해엔 자제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병이 또 도졌나보다.

 

올림픽 대로를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탔다. 팔당대교를 건너 양평, 홍천, 인제를 지났다. 저녁부터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했다.

   
“나는 비내리는 바닷가 풍경이 너무 좋더라.”

비내린다는 소식에 아내가 옆에서 웃음을 띠며 말한다. 모처럼의 여행이 비 때문에 망가지지 않도록 분위기를 다지려는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만 하다. 툴툴거리던 딸아이는 어느새 잠들었는지 쌔근거린다.  시간은 새벽 3시를 넘어서고 있다. 빗방울이 후두둑 차창을 때리고 지나간다. 안개물결이 주변에 손님처럼 스며들어온다. ‘진부령’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아. 진부령이다!’

나도 모르게 신음을 토하듯 낮은 톤의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군시절 행군하면서 넘었던 곳, 휴가 나올 때, 그리고 복귀할 때 넘었던 고개마루다. 저 고개만 넘으면 2년 넘게 총을 들고 씨름했던 동해안 북단이다. 제대한지가 만 20년이 가까워 오건만 ‘군대’의 그림자는 여전히 내 뇌리 속에 강하게 박혀있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 자석에 이끌린 듯 이곳까지 딸려 온 느낌이다. 대관령을 관통하는 비교적 편한 영동고속도로를 놔두고, 굳이 밤길을 달려  구불구불 험난한 진부령 고갯마루를 올라서는 마음이 괜시리 설레인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중의 하나가 남자들 군대이야기라 하던데 20여년의 세월 속에서도 군시절은 아직도 강하디 강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음을 느낀다.

 

 

‘동고서저’라 했던가. 지리수업 시간에 꼭 따라 나오는 경동성 지형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역이 진부령이다. 서사면에서 오르면 완만한 언덕같은 지형이, 동해안에 내려서면  급경사 고갯길로 완전 탈바꿈한다. 군시절 처음 행군하여 이 고개를 넘을 때 숨바꼭질 하듯 끝없이 나타나는 커브길이 암담하다 못해 절망감을 안겨주던 일이 떠오른다.

 

‘여기 어디쯤일텐데?’

장신리를 지날 때 반사적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신병시절 고생하며 보냈던 부대막사를 떠올리며 어둠속을 응시하지만 찾기가 쉽지않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자동차는 간성을 지나 7번도로에 들어섰다. 이제부터는 북상길이다. 금강산이 바로 지척이다.

파도가 몰아치는 밤바닷가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머얼리 수평선쪽에 어선들의 불빛이 등대처럼 깜박인다. 마치 숲속 오두막집 호롱불 같이 정겹기만 하다. 후다닥 찾아왔건만 동해안은 넉넉한 고향의 품처럼 언제 찾아와도 포근하기만 하다.

   

 

입력 : 2005년 09월 01일 16:09:08 / 수정 : 2005년 09월 01일 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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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석
[2005-09-03]

참재미나게 잘쓰시네요.
정왕룡님 글 여러번 보지만 참 재미나게 잘 쓰시네요.
동해안 참좋죠. 저는 고향이 간성 이예요.
저도 항상 진부령을 밤에 넘죠. 매번 넘는길이지만 매번 신기해요. 벌써 20년도 넘게 다니는길인데..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부탁 드려요.

정왕룡
[2005-09-02]

피클님
안녕하세요. 피클님. 그간 잘 지내셨지요?
제 사진실력을 칭찬하셨는데 너무 쑥스럽습니다. 그냥 무작정 셔터 눌러대고 그 중 보기좋은것을 뽑아올린 것 뿐인데 말이에요.
피클님도 항상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고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피클
[2005-09-01]

우와... 이제 사진 잘 찍으시네요~
안녕하세요... 피클입니다... 저 기억 나시는지요?
동해의 일출사진... 정말로 잘 찍으셨네요...
이제 사진기술이 많이 늘으셨나봐요?^^

항상 번창하시고 정선생님의 가정과 앞날에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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