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만 잠들었을때 우리는 깨어.......*
6월의 함성이 되살아나는 10일 저녁, 마송국화 김규태님의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올드 솔져 네버다이’라고 명명한 블로그 일기모음집 출판을 기념하는 행사였습니다. 서울농대 80학번이라고 하니 저보다 3년 인생선배인 셈입니다.
“79년도 10. 26만 없었다면 저는 지금 얌전히 교편을 잡고 있었을 텐데요.”
김선배님이 초반 인사말 시간에 하신 말씀입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시고 형님이 대신 부모역할을 하시면서 어렵사리 들어간 대학인데 시국의 태풍은 김선배님에게까지 몰아닥쳤나 봅니다. 이념서클에 가입하였다가 학림사건에 연루되어 강제징집당하고 제대후 복학...그리고 농민운동에 투신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자기갈길을 올곧게 걸어 간 김선배님의 모습이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일면식도 없었던 탓에 블로그를 통해 ‘마송국화’ 아이디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저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김선배님의 블로그를 방문하면서 한마디로 입이 딱 벌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많은 내용들을 매일 매일 채워넣어가면서 부단한 자기와의 싸움을 그치지 않았던 축적물들이 이제 한권의 책으로 세상에 다른 형태가 되어 나오게 된것입니다.
2부순서시간이 참 독특했습니다.
김선배님의 삶의 굴곡마다 스쳐간 노래들을 엮어서 때로는 독창, 때로는 중창, 합창을 해가며 노래극 한마당이 펼쳐진 것입니다. 노래극이라고 해봤자 거창한 형식은 아니었습니다. 미리 나누어준 노랫말 책자를 손에쥐고 김선배님이 혼자서 독창을 하다가 몇몇이 호응하면 중창으로 바뀌고 마무리 시간에는 전체가 하나되어 자유롭게 합창을 했습니다.
‘와서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우리 승리하리라’등으로 시작한 노래들은 군대시절을 회상하며 군가를 부르는가 싶더니 백치 아다다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87년 6월을 연상하며 <벗이여 해방이 온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그날이 오면>등등의 노래가 불려졌습니다.
이 대목에선 저도 앞에 나가서 김선배님의 손을 잡고 함께 노래하였습니다.
“시의원이 이렇게 앞에 나와서 이런 노래를 불러도 되는거에요?” 노래 도중에 김선배님이 한말씀 던지시길래 웃으면서 “영광인걸요”라는 말로 답했습니다.
아주대 학생들이 마임을 엮어가며 ‘바위처럼’이란 노래를 불렀습니다. 요즘과 같이 학생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시기에 농활을 준비하러 먼저 온듯한 젊은 친구들이 안쓰럽기도 하도 믿음직 하기도 하였습니다. 농민회 가족분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농민가’가 빠질 수 없었습니다. ‘아침이슬’도 불려지고 마지막에는 ‘늙은 군인(농민)의 노래’로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뷔페식당 홀에서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허공을 향해 손을 내뻗으며 예전에는 숱하게 불렀던 노래를 지금은 약간 쑥스러워하며 부르는 기분이 복잡했습니다. 마음 한쪽이 찡하면서도 웬지 장롱속에 몇 년동안 묵혀두었던 옷을 꺼내입은 기분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흐른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나의 생활이 현장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아닌가 반성을 해보았습니다.
“외로운 분들끼리는 통하나봐요. 아이아빠를 통해 말씀 많이 들었어요. 많이 외로우실텐데도 굳건하게 견디시는 모습을 보면서 격려를 해드리고 싶었어요.”
출구에서 형수님과 작별인사를 나눌때 전해오는 덕담한마디가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두분의 살림살이가 빨리 나아지고 병마와 싸우고 있는 큰아드님도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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