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울어? 엄마한테 또 혼났구나.”
누리야.
TV를 보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아빠의 모습이 좀 이상했니? 그렇다고 아빠가 또 실수해서 엄마에게 야단맞는 장면을 연상하다니.......아빠는 맨날 실수만 하는 사람인감?
“누리가 좀 더 크면 아빠가 왜 우셨는지 이야기 해주실거야”라는 엄마의 해명이 없었다면 아빠는 또 꼼짝없이 누리에게 괜한 오해를 살 뻔했네.
누리야. 6월 10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니? 아빠의 두 번째 생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아빠에겐 진짜 소중한 날이란다. 아빠의 전화번호나 인터넷 아이디에 꼭 따라다니는 숫자 기억나니? ‘6010’이라는 숫자 말이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 숫자의 의미를 물어볼 때마다 씩 웃곤했는데 오늘 누리한테만은 이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바로 87년 6월 10일을 뜻하는 말이란다.
그때를 잊지 말자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는 의미로 ‘6010’, 이 숫자를 아빠의 전화번호, 이메일주소, 각종 아이디에 꼭 갖다 붙이기 시작했는데 벌써 20년이 흘렀구나.
오늘 TV에 87년 6월의 거리가 나오더구나. 걔중에는 아빠가 내달렸던, 지금도 눈에 선한 길거리가 나오기도 하구. 박종철, 이한열등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이름들이 스쳐갈 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솟구치더구나.
대학 1학년 마치자마자 군대에 갔던 아빠가 제대 후 2학년으로 복학한 때가 바로 87년이었으니 누리가 태어나기 10년 전이었네? 군대갔다온 학생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아빠도 복학하자마자 도서관에 틀어박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책과 씨름하는 모범학생이었단다. 하지만 87년의 거리는 아빠를 그냥 놔두지 않더구나.
지금이야 열정이 많이 식었지만 그때만 해도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라’던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했던 열혈 신앙인이었단다. 친구들과 이웃들이 죽어나가던 그 엄혹한 시절에 과연 ‘올바른 신앙인의 길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면서도 ‘그래도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자신을 채근하곤 했던 아빠가 나약함의 껍질을 깨버린 날이 바로 87년 6월 10일이었단다.
어떻게든지 장학금을 타야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절박한 처지였음에도 아빠는 그날 기말시험을 포기한 채 서울역과 시청 앞으로 최루탄을 뒤집어 쓰며 하루종일 내달렸단다. 흔히들 말하는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고 대학 입학 후에도 얌전히 공부만 했던 아빠가 정작 군대까지 갔다와서 늦깎이 데모꾼으로 들어섰던 기점이 바로 이 6월의 거리였으니...........
누리야.
요 며칠 아빠는 티비나 인터넷에서 그 당시 장면을 대하면서 ‘과연 그때의 정신을 잊지않고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을 많이 해봤단다. 종철이, 한열이의 사진을 보면서 코끝이 시큰거렸는데 문익환 목사님이 연설하시는 모습이 비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구나.
그순간 누리가 방에 들어와 아빠의 모습을 보았던 거란다.
방금 외할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단다.
평소처럼 오늘 역시 안부소식을 묻는 전화인줄 알았는데 “자네, 오늘 참 감격스러운 날이지? 그간 고생많았네. 앞으로도 그마음 변치말고 열심히 살게나”라는 말씀을 하시더구나.
박정희라는 사람을 구국의 영웅으로 아셨던 분이, 아빠가 여러번 설명했음에도 “설마 광주에서 그런 일이 있었을라구?” 하시던 분이셨는데, 지금도 비행기 소리만 들려도 한국전쟁의 기억에 몸을 웅크리시는 할머님이셨는데......
할머니는 어느새 울산 부산식구들을 상대로 97년 대선때 김대중씨 당선되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셨단다. 2002년 대선전날 정몽준이라는 아저씨가 사고쳤을 때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사위를 보며 안스러워하시던 할머님이셨단다. 노무현 아저씨가 대통령에 당선된날 저녁에 아빠 엄마와 함께 누리를 데리고 여의도 민주당사에 가서 함께 환호하시기도 했구.
“정서방, 나는 누가 뭐래도 자네가 하는 말은 다 믿네”
할머님이 하시는 이 말씀이 아빠가 힘들때마다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아니? 근데 오늘 아침에 6월 10일이라고 전화까지 주실줄이야.............
누리야.
아빠가 바라보는 세상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구나.
사람들의 마음문이 활짝 열리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차이를 인정하고 진심을 느껴가는 소통의 시대 말이야. 지역감정이 깨지고 남과 북이 하나되고 우리 겨레가 세계평화의 중심으로 우뚝서는 그날을 바라는게 아빠의 몽상일까?
누리야. 아빠 나이 벌써 40대 중반이네.
20년전만 해도 세상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것 같은 자신감과 열정이 철철 넘쳐났는데 이제는 자꾸만 소심해져가고 나약해져 가는 아빠의 모습이 부끄럽구나. 누리에게 핀잔을 듣지않는 날이 하루도 없는 상태이니까 말야.
“아빠가 그래도 자랑스럽긴 해”
얼마전에 엄마에게 누리가 했던 말이 기억나는구나.
엄마와 싸울때마다 언젠가부터 엄마편만 들어주는 누리에 대해 아빠는 약간 서운했는데 대화를 나누면서 툭 던진 말이 아빠의 마음을 찡하게 하더구나.
누리야.
아빠 열심히 살거다.
요즘 지역에서 자그맣게 준비하고 있는 모임이 있는데 많이 성원해주지 않을래? 그리고 아빠가 늦게 들어오거나 누리와 많이 놀아주지 못하더라도 이해해 주고 말이야. 12월이 다가오면서 아빠가 예전보다 많이 바빠질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누리는 아빠를 격려해줄거지?
오늘 이만 줄인다. 안녕.
87년 6월 10일 두 번째 생일을 자랑스러워 하는 아빠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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