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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하나다-개성나무심기 행사 참가기(5)

김포대두 정왕룡 2007. 6. 23. 10:52

   
 
   
“어? 다들 어디갔지?”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안보인다. 개성박물관 소속 여성안내원의 열띤 해설에 이끌려 따라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광명시 팀에 끼여버렸다. 공민왕릉을 실제크기로 재현해놓은 모형실에 들어가 한참 설명을 재미있게 듣는데 김포식구들이 안보인다. 마음 한구석에 ‘혼자 되었다’는 불안감이 스친다. 마치 놀이공원에 가족따라 마실 나갔다가 한참 구경에 정신팔리다보니  다른 가족속에 끼여버려 미아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그래도 ‘공민왕’에 대한 호기심에 마음의 불안감은 아랑곳 하지 않고 두 눈의 시선은 석실내부를 여기저기 둘러보기에 정신없다.

 

‘수십명에 달하는 고려 역대왕들 중 하필이면 공민왕의 무덤을 이곳에 재현해 놓았을까?’
문화사적 가치로 보자면 공민왕릉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놓여있으면서도 훗날 조선시대 왕릉의 전형에 커다란 영감을 불어넣어 줄 정도로 뛰어난 양식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곳은 개성인근에 있는 실제 현장이 아닌 박물관 내부다. 그러다보니 왕릉외형이나 구조를 감상하기보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공민왕이라는 인물에 맞추어졌다.

‘혹시 원나라의 영향에서 벗어나 고려의 잃어버린 자주성을 회복하려 했던 공민왕의 모습이  북한사람들에게 매력을 준 것은 아닐까?’

 

공민왕하면 ‘반원자주’라는 말이 직감적으로 떠오를 정도로 그에겐 오로지 고려의 자주성 회복이 평생의 과업이었다.  변발의 풍습을 폐지하는 등 몽고식 풍습과 제도를 없앴을 뿐만 아니라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원나라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았다.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그 자리에 신돈을 중용하여 권문세족에게 집중된 토지문제를 해결하려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워낙 수구세력의 반발이 심하여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은 왕권의 위상뿐만 아니라 국가재정의 파탄을 가져왔다. 거기에 원나라 출신 왕비인 노국공주의 죽음은 공민왕에게 심적인 충격을 주면서 급기야는 그 역시 ‘암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공민왕의 자주와 북한식 자주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반원자주와 반미자주는 글자하나의 차이지만 그 속에는 6백여년을 뛰어넘는 세월의 간극이 존재한다. 북한에게는 공민왕의 ‘자주’라는 요소가 매력적으로 보일런지 모르나 사회주의식 계급적 관점에서 보면 그 역시 봉건왕조의 군주 중 한사람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공민왕의 개혁이 성과를 보지 못하고 결국 이성계의 역성혁명이라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던 상황만큼이나 현재 북한의 모습은 아슬아슬해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이 시각은 나를 비롯한 남측사람들의 주관적 시각인지도 모른다. 곳곳에서 마주치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은 체제유지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고난의 행군도 이겨냈는데 이러한 어려움쯤이야 뭐 대수랴’ 싶은 대범함도 느껴진다.

 

‘설마 나를 두고 먼저 출발하지는 않겠지?’
공민왕릉 내부를 빠져나와 시계를 확인해보니 아직 예정시간이 약간은 남아있다. 아까 지나쳤던 기념품 판매코너에 들렀다. 점심식사를 했던 ‘통일각’내 판매점에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물건을 고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지금은 나 혼자뿐이다. 함께 관람을 했던 광명시 사람들도 이젠 안보인다. 개성사람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차분하게 물건을 고를 수 있는 기분이 편안하다.

꼬마를 생각하며 장구를 치는 색동저고리 인형을 골랐다. 장모님을 떠올리며 놋수저 세트도 샀다. 북한산 담배, 작은 병풍도 골랐다. 지인들을 생각하며 개성인삼주까지 고르다보니 갖고있던 달러가 다 소비되었다.


‘북한식 작별인사는 어떤 것일까?’
박물관내 판매점을 빠져나오며 상점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려 하는데 순간적으로 망설여진다.

“조국은 하나다!”
나도 모르게 한손을 치켜들며 남측식의 ‘화이팅’ 자세를 취했는데 입에서는 갑작스레 구호성 어구가 툭 튀어나왔다. 대학시절 통일운동 하던 때 숱하게 외쳤던 말이다. 김남주 시인의 싯구절에 담겨있는 이 말을 읽을라치면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말이 개성박물관내 판매점 직원들과 짧은 만남 후 헤어지는 순간에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또 오시라요.”
나의 이 인사말에 개성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답례를 한다. 이 순간 누가 인공위성에서 내려다 보았다면 한반도 한복판에 통일의 기운이 자그맣게 솟구치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