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다시 움직이는가 싶더니 임진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임진강’이라는 세 글자를 나지막히 중얼거려 보며 차창밖 아래로 강물을 내려다 본다. 그간 분단 그 자체를 상징했던 저 물결위로 얼마나 많은 실향민들이 망향의 한을 실어 보냈을까?
수많은 분들이 그 아픔을 부여잡고 이승을 떠날 때 분단의 아픔에 힘겨워했을 지난날을 회상하며 어떤 하직인사를 했을까? 짧디 짧은 순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는데 어느새 기차는 멈춰서 있고 ‘도란산역’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
담벼락 옆에 쓰여져 있는 문구가 여운을 남긴다.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란다. ‘끝’을 의미하는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첫 번째’ 역이란다. 그에 담긴 표현이 무한한 도전과 꿈을 상징하는 것 같아 어린아이처럼 괜시리 마음이 설레인다.
도라산역은 국제역사처럼 규모가 꽤 크다. 승강장 쪽에 ‘평양방면 타는 곳’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엄격히 출입이 제한되어 있고 거의 이용을 안하고 있지만 조만간에 저곳도 여행객으로 붐비는 날이 올 것이다. 아이들과 엄마들이 도라산 역사 앞 광장에 임시로 짐을 풀었다. 자리를 깔고 앉는가 싶더니 ‘평화3천’ 간사진들의 능숙한 안내로 각종 게임이 진행된다. 어느 전문 사회자 못지않게 좌중을 휘어잡으며 아이들의 정신을 쏘옥 빼놓는 진행솜씨가 눈부시다.
정오를 넘기면서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일요일 한낮 관광차 나온 시민들로 도라산 주변은 제법 붐빈다. 걔중에는 일본인 단체관광객도 보이고 서양인들도 간간이 눈에 띤다. 지구상에 남아있는 마지막 분단국가의 현장에 와서 저들은 어떤 느낌을 받고 갈까?
문득 ‘도라산’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관한 글 내용이 떠오른다. 신라 마지막왕 경순왕이 고려에 나라를 들어 바친 후 개성에 옮겨와 살게 되었다. 왕건의 배려아래 의식주야 모자랄 것이 없었겠지만 그 역시 인간인지라 남녘땅 고향인 경주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사무쳤나보다. 이를 보다못해 팔걷어 부치고 나선 사람이 낙랑공주다. 왕건의 딸로서 그와 결혼한 낙랑공주가 이곳 야산에 기거할 것을 마련해주어 경순왕은 그 이후 틈틈이 산에 올라가 경주쪽을 바라보며 시름을 달랬다 한다. 경주를 뜻하는 도읍지 ‘도’에다 ‘신라’의 뒷글자를 붙여서 명명된게 도라산 이름의 유래라니 이곳은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움’과 ‘망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운명을 타고 태어났나 보다.
역사안에는 부시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연설하였다는 현장이 보존되어 있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시대’ 2000년 9월 18일 역사 기공식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이 침목에 서명한 문구다.
'MAY THIS RAILROAD UNITE KOREAN FAMILIES'(이 철도가 한국의 가족들을 합쳐주길 기원합니다.) 2002년 2월에 이곳을 방문한 부시 미대통령이 써놓은 문구다.
일각에서 ‘전쟁광’으로 비판받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문구치고는 의외로 정감이 묻어난다.
고개를 숙여 대지위에 잠시 귀를 갖다 대보았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코리아가 온갖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되는 최종 고빗점에서 도약을 위한 가뿐 숨을 내쉬고 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도라산은 지금 희망을 향해 꿈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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