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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도라산 평화여행 참가기(3)-

김포대두 정왕룡 2007. 11. 8. 09:53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도라산 전망대에 올랐다. 안개비가 흩뿌리기 시작한 탓으로 시야가 그다지 밝지않다. 전망대 내부에 착석하여 군관계자의 설명을 듣는데 시야가 흐리다보니 설명하는 사람이나 듣는사람이나 서로 애를 먹는다. 군사작전지역이라는 특징 때문일까? 설명이 단조롭고 투박하여 아쉬움이 남았다. 해설이 끝난 후 야외망원경이 있는 장소로 나오는데 독일인 관광객 수십명이 입장한다. 똑같은 분단국 처지에 있다가 통일을 완성한 그들이 이곳 분단의 현장에서 받는 느낌은 무엇일까? 2차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 였다는 점에서 독일이 겪어야 했던 분단이라는 고통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전쟁의 피해자이자 수십년동안 식민통치를 받았던 한민족의 분단은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마지막 남은 지구상의 분단 현장이 세계인들의 관광지화 되어가는 현실을 보는 느낌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야! 보인다. 보여” “어디? 어디?”
희뿌연 안개비사이로 인공기가 펄럭이는 대성동 마을을 망원경으로 발견한 아이가 소리치니 여기저기서 친구들이 방향을 묻는다. 사람이 사람을 구경하며 신기한 듯 소리친다. 이쪽마을에서 저쪽마을을 경계선 너머로 바라보며 대단한 발견인양 저마다 환호한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자신의 2세들에게 이런 느낌을 또다시 전달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다시 도라산 역으로 내려왔다. 이제는 평양가는 기차표를 끊는 가상체험시간이다.


“한반도 남단은 휴전선으로 인해 그간 대륙과 단절된 섬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철도가 연결되어 비로소 한반도가 하나 되고 대륙의 중심으로 우뚝서는 날이 곧 올거에요.”


일일역장으로 위촉된 조진남 김포시 민주평통 의장이 행사에 앞서 의미깊은 인삿말을 했다.

 

“넌, 어디로 갈거니?” “파리가서 에펠탑 볼거에요.” “모스크바 갈거에요.” “올림픽이 열리는 북경갈거에요.” 개찰구를 통과하면서 일일 명예역장아저씨에게 확인도장을 받을 때 꼬마승객들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귀에 들려온다.

“평양가는 기차표 주세요.”
주로 유럽여행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중 어느 아이가 ‘평양행 기차표’를 주문한다. ‘평양가는 기차표’라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구절이다.
아! 그렇지, 문익환 목사님의 ‘잠꼬대 아닌 잠꼬대’에 나오는 싯구절!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 이건 진담이라고 (중략)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 있다고 생각하나 /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 >

 

 1989년으로 기억된다. 문목사님이 평양행을 결행하면서 남기신 시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시인의 직관력이란 참 대단하다. 그때는 통일운동 진영 내부에서조차 너무도 엉뚱한 소리로 들렸는데 이제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개성, 평양방면’이라 쓰여져 있는 출구를 통과하여 플랫폼에 들어섰다. 기차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철길에 침목따라 장대 수십개가 가지런히 놓여져 있다. 그옆에는 붓과 물감, 장갑, 깃발용 천들이 옹기종기 함께 모여있다. ‘솟대 만들기’ 작업을 한다고 한다. 지금이야 우리주변에서 익숙한 조형물이 되었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솟대는 시골 산간마을에서나 겨우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땅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새를 장대머리위에 얹어놓아 꿈을 비는 상징물로 시골동네 어귀에 세워놓았던 ‘솟대’가 도라산역 철길에서 제작된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아빠, 엄마까지 팔걷어 부치고 철길위로 내려섰다. 점점 굵어지는 가랑비도, 물감이 옷에 튀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여기저기서 형형색색의 솟대가 제모습을 갖추어간다. 깃발에다 글자를 새겨넣어 장대끝에 매달아 놓는 작업이 덧붙여진다.

 

‘백두산은 우리땅. 기차타고 평양가고 말거야. 한반도는 하나의 국가.......’
통일의 염원을 담은 여러 가지 글귀가 솟대 끝에 깃발이 되어 걸린다. 작업을 끝낸 팀들이 너도나도 철길 옆으로 달려가 솟대를 꽂아놓았다. 울긋불긋 형형색색의 깃발이 농익은 가을단풍같다. 장대끝의 새들은 북녘하늘을 향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하다. 가랑비 내리는 가을, 도라산역 주변은 이미 통일축하 잔치분위기다.